2025-07-02 02:50 (수)
중국구석구석탐색 ㊱중국 古宅 교가대원
중국구석구석탐색 ㊱중국 古宅 교가대원
  • 홍원선 이코노텔링 대기자(중국사회과학원박사ㆍ중국민족학)
  • wshong2003@hotmail.com
  • 승인 2019.06.30 2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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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조의 재벌'이 기쁠 희(喜)자로 형태로 지어 … 대지 3천여평에 방이 313개 '궁궐 방불'

오늘은 산서성에서 매우 중요한 문화적 가치를 갖고 있는 대표적인 민간의 전통주택인 교가대원을 가기로 했다.

산서 치현의 ‘민간궁전’으로 일컬어지는 청조말기의 대저택 교가대원의 입구를 알려주는 패방. 패방의 규모가 자못 거대하다.
산서 치현의 ‘민간궁전’으로 일컬어지는 청조말기의 대저택 교가대원의 입구를 알려주는 패방. 패방의 규모가 자못 거대하다.

우선 아침에 타이웬 고속철역에 가서 3일후 북경으로 돌아갈 고속철도 기차표를 사다. 오전 11시 36분 출발 고속철 1등석이 288위안이다. 기차표를 산 후 젠남시외버스터미날로 이동해 교가대원이 자리잡고 있는 치현행 버스표를 샀다. 치현행 버스는 중간에 거의 정차하지 않고 달렸고 치현 터미널에 도착하기 이전 오늘의 주요 여행목적지인 교가대원 앞에서 하차했다.

교가의 사업영역을 표시한 지도. 낙타와 말이 주요 운송 수단이었던 청조말기에 사업구역이 중국대륙 전역을 커버하고 있다. 신강의 우르무치와 티벳의 라싸도 사업구역에 포함되었고  중국대륙을 넘어 몽골의 울란바타르와 시베리아까지 이들의 사업이 확장되었다. 몽골지역과 시베리아지역으로의 상품의 공급은 낙타에 의해 수행될 수밖에 없었고 한번 낙타대상이 출발하면 그 낙타수가 거의 천여마리로 일직선으로 고비사막을 넘는 모습은 장관이었다고 한다. 상인들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고..
교가의 사업영역을 표시한 지도. 낙타와 말이 주요 운송 수단이었던 청조말기에 사업구역이 중국대륙 전역을 커버하고 있다. 신강의 우르무치와 티벳의 라싸도 사업구역에 포함되었고 중국대륙을 넘어 몽골의 울란바타르와 시베리아까지 이들의 사업이 확장되었다. 몽골지역과 시베리아지역으로의 상품의 공급은 낙타에 의해 수행될 수밖에 없었고 한번 낙타대상이 출발하면 그 낙타수가 거의 천여마리로 일직선으로 고비사막을 넘는 모습은 장관이었다고 한다. 상인들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고..

교가대원은 산서성 기현 교가보촌에 위치해 있다. 이 건물은 북방 한족의 전통적인 가옥양식의 고택으로 전체 집은 喜(희)자형으로 구성되어 있고 크게 분류해 6개의 대원(大院), 20개의 소원(小院) 그리고 모두 313칸의 방으로 구성된 거의 궁궐에 비견할 만한 거대한 민간 고택이다. 대지면적은 10,642평방m, 건축면적은 4175평방m에 이르고 전체 건축물은 성루식으로 사방이 10여m에 이르는 높은 벽으로 둘러쌓여 있고 대문은 성문과 같은 모양이다. 멀리서 봐도 그 위용이 상당하고 규모가 왕궁을 방불케 한다.

교가대원의 정면 모습. 멀리서 봐도 그 규모가 보통의 민간 주택이 아닌 왕궁이 아닌가 할 정도로 규모가 크고, 그 내부 건축의 정교함이나 예술성 등은 가히 왕궁에 필적할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교가대원의 정면 모습. 멀리서 봐도 그 규모가 보통의 민간 주택이 아닌 왕궁이 아닌가 할 정도로 규모가 크고, 그 내부 건축의 정교함이나 예술성 등은 가히 왕궁에 필적할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중국의 속언에 ‘황제가 거하는 궁이 황궁이라면 민간의 궁은 교가대원’이라는 말이 있다. 이 대저택은 청대에 전국적으로 유명했던 상인 喬致庸의 저택으로 기세가 웅장하고 위엄을 갖춘 건물이다. 대문은 서쪽에서 동쪽을 향하고 있고 위에는 성루처럼 높은 누각이 있다. 대문의 안쪽엔 모든 사합원에서 볼 수 있듯이 조벽이 있고, 조벽엔 길상을 표현하는 壽자를 크게 조각하였다. 대원 내에는 돌로 깐 길들이 죽 이어져 있다. 교가대원은 청의 건륭연간에 건축되었고 이후 동치, 광서연간 및 민국 초기까지 여러 차례에 걸쳐 중건되어 현재의 모습을 보이기까지 2세기의 시간이 소요됐다. 1985년 치현정부는 이곳을 치연민속박물관으로 하고 1986년부터 민간에 개방하였다. 교가대원 내에는 현재 5000여점의 다양한 문물, 농업풍속, 의례, 세시풍속, 의식주행, 상거래 풍속, 민간공예 그리고 교씨 집안의 교가 사료, 교가 소장 보물 등을 진열, 전시하고 있다.

교가 대원 내부의 여러 공간에서 특히 눈길을 끈 곳이 바로 이 방이다. ‘관원과 교제하는 방’이라고 적혀 있다. 예나 지금이나 민간의 비즈니스에 관의 영향력은 막강했을 것이고 관의 힘이 강했던 과거가 더 심하지 않았을까?
교가 대원 내부의 여러 공간에서 특히 눈길을 끈 곳이 바로 이 방이다. ‘관원과 교제하는 방’이라고 적혀 있다. 지금도 그렇지만 예전에도 민간의 비즈니스에 대한 관의 영향력은 막강했을 것이고, 관과의 적절하고 적당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사업에서 아주 중요했을 것이다. 기업과 관의 관계를 여러 가지로 생각해보게 만든 방이었다.

치현 교가 집안의 창업자는 喬貴發은 비록 출신이 빈한했지만 자신의 운명을 새로 개척하기 위해 비즈니스세계에 뛰어들었다. 이곳에서 민간에 전해지는 말에 따르면 그는 특히 자손들의 교육과 훈련을 매우 중시했고 자주 자식과 손자들에게 정직, 근검, 절약을 가르쳤고 앉아서 남이 고생해서 얻은 것을 누리려 해서는 절대 안 되고 사치를 추구해서도 안 되고 사람을 대할 때는 성실과 신의로 대하고 선의로 남을 돕고, 가난한 사람을 모질게 대하거나 압박하여 돈을 벌어서는 절대 안 된다고 훈육하였다고 한다.

교가대원 내 박물관에 소장된 구룡병풍. 용은 특히 9마리 용은 바로 최고권력자인 황제를 상징하고 따라서 이 병풍은 궁정용품인데 이곳에 있는 것이 언뜻 이해가 안 된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아편전쟁이후 서양 8개국 연합군이 북경을 침공했을 때 궁정의 이 병풍이 유출되어 민간에 유전되고 결국 이곳으로 오게 됐다고 한다.
교가대원 내 박물관에 소장된 구룡병풍. 용은 특히 9마리 용은 바로 최고권력자인 황제를 상징하고 따라서 이 병풍은 궁정용품인데 이곳에 있는 것이 언뜻 이해가 안 된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아편전쟁이후 서양 8개국 연합군이 북경을 침공했을 때 궁정의 이 병풍이 유출되어 민간에 유전되고 결국 이곳으로 오게 됐다고 한다.

이러한 그의 가르침은 청조시기 거대한 부를 쌓아올린 교가 창업자가 세세대대 후손들에게 물려준 정신적 가치이자 가르침이었다. 이런 후손에 대한 교육은 비단 교가 가문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고 청조 시기 중국의 거상들의 후손에 대한 가르침이기도 하였다. 이런 정신이 중국인 상인, 화교들의 가치관의 일면을 이루고 있다고 생각된다. 교가대원의 일대 선조인 교치용은 당시 중국의 비즈니스계에서 혁혁한 부를 자랑하는 대자산가였지만 그가 집안을 다스리는 방식은 매우 엄격하였다. 그는 자식들이 부유한 집안의 자식들이 흔히 빠지기 쉬운 좋지 못한 습속에 빠져들지 않게 하기 위해 6개조의 가훈을 만들었다. 첫째 첩을 들일 수 없다. 둘째 하인을 학대해서는 안 된다. 셋째 창기를 상대해서는 안 된다. 넷째 아편을 피워서는 안 된다. 다섯째 도박을 해서는 안 된다. 여섯째 술주정을 해서는 안 된다 등의 가훈을 만들어 자손들에게 엄격히 이를 따를 것을 요구했다.

거상들이 당대가 아니고 여러 대에 걸쳐 그 거대한 부를 유지하고 증식시켜 올 수 있었던 것은 기업가정신을 부단히 교육하고 이를 자손에게 전수시켜 온 상인들의 정신에 있었겠다 싶은 생각이 든다. 공자의 말씀을 한구절 인용해야겠다. 見利思義 ( 금전적 이익을 두고 이것이 옳은 것인가 아닌가를 생각하다 ) . 불의한 돈은 그 수명이 길수도 없고 바로 패가망신의 길로 이어질 수 있다는 가르침일 것이다. 그런 정신을 지키고 전승하고자 했기 때문에 하늘이 내린다는 巨富가 되었을 것이다.

교가에서 후손들에게 경계하는 말일텐데 음미할만 하다고 생각된다. 오른 쪽은 먹고 싶다고 끝까지 먹어서는 안된다,  (옷을)입고 싶은 것이라고 모두 입어서는 안된다. 하고싶은 말이라고 모두 해서는 안된다. ( 衣食의 절제와 말의 절제 ) 왼쪽은 알고 ( 이해하고 ), 행동하고, 인내하라.
교가에서 후손들에게 경계하는 말일텐데 음미할만 하다고 생각된다. 오른 쪽은 먹고 싶다고 끝까지 먹어서는 안된다, (옷을)입고 싶은 것이라고 모두 입어서는 안된다. 하고싶은 말이라고 모두 해서는 안된다. ( 衣食의 절제와 말의 절제 ) 왼쪽은 알고 ( 이해하고 ), 행동하고, 인내하라.

이런 웅장하고 거대하고 화려한 교가대원을 보면서 그들이 쌓아올린 부라는 것이 요행도 아니고 일시적인 재주도 아니고 굳건한 바탕 위에 확고한 정신력으로 사업을 개척하는 과정에서 획득된 것이란 점을 생각하게 된다. 중국대륙과 몽골, 그리고 시베리아까지 사업지역에 포함시켜 국제적인 거상으로 발전한 晉商의 험난한 사업사와 그들의 불요불굴의 정신과 개척정신, 그리고 근검절약으로 쌓아올린 그들의 가치관과 문화가 바로 왕궁에 비해 손색이 없는 교가대원이라 생각된다. 이 경우 물질은 바로 정신(가치관)의 표현인 셈이다.

교가대원 내를 참관하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어느 건물하나 허투루 지은 것이 없고 최고의 장인이 정성을 다해 지은 건물이라는 것으로 방방마다 있는 목조 조각이나 벽돌조각에서 최고의 장인이 정성을 다해 만든 것임을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건물마다 돋을 새김으로 조각한 각종 석제와 목제 조각 그리고 처마의 다양한 장식과 채색은 보는 이의 찬탄을 금치 못하게 한다. 교가대원을 들어가기 전 넓은 공간에 세워진 청동부조물 가운데 교가 상단의 상인들이 러시아인들과 거래하는 장면을 표현하는 것이 있다. 아마도 이들 상인이 말 아니면 낙타를 타고 중국대륙을 지나 몽골로, 몽골에서 다시 러시아의 시베리아까지 가서 교역을 했을 것이다. 그 과정이 얼마나 험난했을까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청동부조물은 사업을 키우기 위해 온갖 고통을 감내하는 상단의 활동을 상징하는 것으로 뭉클한 감동이 전해져 온다.

교가대원 내부의 주산박물관에 소장된 특이한 주산의 모습
교가대원 내부의 주산박물관에 소장된 특이한 주산의 모습

이 대원 내에는 晉商들의 삶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지만 많은 실내공간에 중국의근세 민속용품을 다양하게 전시해두고 있어 근대 중국인들의 삶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다른 문화와 문명을 이해하고 인식을 넓혀 나간다는 것은 사유의 폭이 넓어지고 세상을 보는 안목을 변화시킨다는 점에서 아주 유용하다고 여겨진다. 작은 절구나 신선로 용기 그리고 떡이나 과자류 등을 만들 때 특정 모양을 찍어내는 나무틀 등 우리에게 낯익은 민속제품도 많았지만 우리의 생활에서 별로 보지 못한 생활용구도 있어 아주 흥미로운 참관거리였다. 대원 내에 마련된 주산박물관도 아주 흥미로운 공간이었다. 다양한 모양의 주산이 진열되어 있었는데 중국인의 다양하고 기발한 상상력이 흥미로웠다. 교가대원 안에 관원과의 교제를 위한 방이 하나있다. 예나 지금이나 아니 예전에는 더 했을지 모를 비즈니스와 관의 관계를 생각하게 만든다. 교가대원을 나서면서 재부를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화두를 안고 나오게 됐다. 부라는 것은 고통이고 땀이고 노력일 것이다. 그렇지 않은 경우도 현실적으로 많지만 제도적 장치로 그런 것이 자리잡지 못 하도록 하는 것이 바로 국가권력이 수행해야 할 과제이리라. 많은 돈을 버는 것, 교가상인들과 같은 자세로 돈을 버는 것은 인간의 삶과 문화에서 고양되어야 할 가치일 것이란 생각을 안고 다음 행선지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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