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나라에 대통령 둘이다"소문 번져…언론 "쓰루가 정치인 다됐다"며 등돌려
대통령은 자신의 뜻을 누구보다 정확하게 이해하고 거침없이 실천해가면서도 전임 장 부총리와는 달리 대통령이 부여한 권력의 한계를 분명하게 알고 처신하는 쓰루를 더할 나위 없이 신뢰하고 기꺼이 여겼다.
그는 그런 박통의 신임을 과시하는 언행을 자주 드러내 보였다. 나중에는 "지금 나는 대한민국 어느 장관이든 내 마음대로 다 할 수 있어"라고 큰소리를 칠 정도였다.
사람들이 그런 안하무인격 언행을 참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어느 장관이 '요새는 이 나라에 대통령이 둘이라는 소문도 있다더라'는 말을 했대요. 이 말이 결국 박 대통령의 귀에 들어간 모양이에요. 박 대통령은 그 양반을 불러다 '도대체 그게 무슨 말이냐. 어디서 그따위 쓸데없는 이야기들을 옮기고 다니느냐'며 호통을 쳤대요.
그러면서 '당장 김 부총리를 찾아가 사과하라'고 엄명을 내렸다는 거죠. 이 장관은 밤늦게 혜화동 우리 집엘 찾아왔어요. …… '나는 그런 뜻으로 이야기한 게 아닌데 대통령께서 오해하신 것 같다'면서 사과했어요. 그 사람이 돌아가자 박 대통령한테서 전화가 왔어요. '제대로 사과하더냐'고 물으시더군요."( 중앙일보 1991년 8월 16일 자ㆍ부인 김옥남 증언)
지나침은 모자람보다 못하다는 격언은 언제나 유효하다. 그가 대통령을 배경으로 호가호위(狐假虎威)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갈수록 늘어났다. 취임한 후 단기간에 그를 군림하는 부총리로 만든 대통령의 무한신임이, 임기 후반으로 가면서 그의 우군마저 적으로 돌아서게 만들었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쓰루에게 대통령의 신임은 더 이상 정치적 자산이 아니었다.
1971년 4월 대선과 5월 총선이 치러지는 동안, 그는 4대강 유역 종합개발, 항만 개발, 농업 투자 등 많은 공약사업으로 선거운동에 앞장섰다. '쓰루가 이제 정치인이 되어버렸다'며 실망한 언론은 선거가 끝나기도 전에 물가 불안 기사를 자주 쓰기 시작했다. 평소엔 기자들과 잘 지내는 그였지만 이런 '무식한 기사'들에 흥분하기 시작했다.
"선거를 앞두고 일부러 물가를 올려보겠다는 신문사가 있으면 나도 일전불사하겠다. 그럴 기백도 있고 머리도 있다"는 말까지 했다. "기사를 가지고 왜 그리 흥분하십니까?" 하고 물으니 "그동안 쭉 참았는데 너무 심하다. 명예훼손으로 고소할 감이다"라고 했다. 그렇게 혼자 흥분해놓고는 스스로 생각해도 좀 심했다 싶었는지 "미스터 김 흥분하다. 남자란 것은 흥분할 때도 있어야 한다.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하면 안 된다"며 웃었다.(최우석, 「경제개발시대 EPB 취재기」, 『경제풍월』 2016년 3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