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8-09 13:40 (화)
영화로 쓰는 세계 경제위기사(14) 모던 타임스⑬ 대공황 가상논쟁
영화로 쓰는 세계 경제위기사(14) 모던 타임스⑬ 대공황 가상논쟁
  • 이코노텔링 이재광 대기자
  • jkrepo@naver.com
  • 승인 2022.01.10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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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와 엥겔스"지배받는 계급 '맘껏 소비'는 없어…과잉생산이 원흉"
케인스 "경기가 나빠질 것 같아 기업과 개인이 씀씀이를 확 줄인 탓이 커"

대공황을 두고 벌이는 마르크스ㆍ엥겔스와 케인스가 벌이는 논쟁. 생각만 해도 짜릿하다. 마르크스ㆍ엥겔스는 케인스를 향해 "자본주의 체제의 특성인 과잉생산과 수천 년 동안 한결같았던 과소소비도 구분 못하는 천박한 애숭이"라 욕했을 것이다. 이에 대해 케인스는 "과학으로서는 일고의 가치도 없는 영혼의 질병 전파자"라 맞받아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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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잉생산 또는 과소소비. 케인스까지 포함한 진보 진영의 경제위기 원인론이다. 당연히 대공황에도 적용된다. 다시 묻자. 대공황의 진정한 원인은 무엇이었나? 과잉생산이었나, 아니면 과소소비였나? 흥미롭게도, 현상적으로는, 이 둘 모두가 문제였다.

일단 과잉생산을 보자. 1914년 전쟁이 터지면서 전쟁 내내 미국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특수를 누렸다. 그리고 전쟁이 끝난 뒤에도 지속적인 호황을 기대했다. 그러니 기업은 새로운 설비투자에 나섰다. 그 결과 1921~29년 사이 공업생산이 90%나 늘었다. GNP도 마찬가지. 1921년 740억 달러에서 1929년 1040억 달러로 약 30% 증가했다. 투자는 GNP의 20%를 상회했다. 결국 1923~29년 사이에 미국 전체의 생산설비는 총수요를 상회하는 수준에 이르렀다는 평가가 나온다. 여기에 테일러리즘과 포디즘까지 가세, 1920년대 생산성은 무려 47%나 향상된 것으로 추계된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과잉투자, 과잉설비, 그리고 과잉생산이었다.

과소소비 문제는 두 시기로 나눠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선 주가 폭락 전까지의 문제다. 이 시기 주목할 것은 빈부격차로, 최상위 부유층 5%가 차지하는 소득의 비중이 1920년대 25.8%에서 31.9%로 늘었다는 점이다. 또한 이 시기 실질임금이 거의 늘지 않거나 오히려 줄었다는 점도 중요하다. 1920년 0.55달러 수준이었었던 시간 당 임금은 1929년 0.56달러 수준으로 거의 같은 수준이었으며 1주당 평균 수입은 같은 기간 동안 26.3달러에서 25.0달러로 오히려 줄었다. 이 두 가지는 평범한 미국 시민의 소비력을 절감시키는 주요 요인이 됐을 것이다.

과소소비 문제는 주가 폭락, 즉 대공황 시작 이후 더 심각한 문제로 부각됐다. 주가 폭락 이후의 과소소비 경향이 불황의 골을 더욱 깊게 만들었다는 해석이 주류다. 우선 1929~33년 사이 실질임금이 25~33% 줄었다는 게 문제로 지적된다. 실업자도 큰 폭으로 늘었다. 1930년 300만 명 수준이었는데 1933년에는 1300만 명이나 됐다. 실업자가 3년 사이 4배가 폭증했던 것이다. 지속적인 물가하락은 이 같은 '과잉생산-과소소비'의 좋은 지표가 될 것이다. 1920년 103이었던 도매물가는 1929년 61.9로, 1933년에는 42.8로 줄어들었다.

■ 애송이 케인스와 고리타분 마르크스ㆍ엥겔스

마르크스(1818~1883)
마르크스(1818~1883)

이처럼 1929년 주가 폭락 전후 미국에서는 과잉생산과 과소소비 징후가 뚜렷하다. 이를 근거로 마르크스ㆍ엥겔스와 케인스 모두 맞는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니 둘이 악수하고 화해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아니다. 마르크스도 엥겔스도, 그리고 케인스로 결코 그럴 위인들이 아니다. 지는 걸 죽기보다 싫어한다. 그들은 결코 서로의 입장을 철회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대공황을 포함해 경제위기에 대해 어떻게 말할까? 이참에 가상논쟁을 한 번 만들어 봤다. 격렬하고 인격 모독까지 서슴지 않는 그들의 논쟁은, 가상이라 해도, 귀담아 들을 만할 것이다.

엥겔스(1820~1895)
엥겔스(1820~1895)

▶ 마르크스ㆍ엥겔스="존, 대공황의 원인이 과소소비라고? 이 봐 애송이, 아니야, 틀렸어. 대공황의 원인은 과잉생산이야. 그걸 아직도 몰라? 소비부족은 계급이 생긴 이래 늘 있었던 거야. 지배받던 계급이 맘껏 소비할 수 있었던 시대가 있었어? 대공황기에는 과잉생산 뒤에 위기에 따른 불황이 심화되자 소비부족이 더 심화된 것일 뿐이라고. 게다가 자본주의의 체제 위기는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심해지게 돼 있어. 그러다 결국 망하는 거지. 프롤레타리아 혁명은 그 시기를 앞당기기 위해 필요한 것일 뿐이야."

▶ 케인스="구닥다리 얘기는 그만 하시죠, 늙다리 선배님들. 경제공부 좀 더 하셔야겠어요. 결론부터 말씀 드릴게요.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일반적인 과잉생산은 없어요. 공급과 수요 사이 개인의 저축 때문에 과소소비가 생기는 것이고 그게 위기를 가져오는 거지요. 대공황이 벌어진 이유는 경기가 나빠질 것 같아 기업과 개인이 씀씀이를 확 줄인 탓이라고요. 그러다 대공황이 터지고 실업이 만연해지면서 소비는 더 줄고 그에 따라 불황의 골도 더 깊어진 거죠. 그러니까 정부가 돈을 써서 개인에게 일자리를 주고 돈을 쓸 수 있게 만들면 불황은 사라지는 거예요."

그람시(1891~1937)
그람시(1891~1937)

▶ 마르크스ㆍ엥겔스="그래? 정부가 돈을 쓰면 불황이 사라진다고? 루즈벨트가 돈을 안 썼나? 오히려 펑펑 썼잖아? 그래도 불황을 못 이겼어. 불황은 결국 전쟁으로 해소됐다고. 전쟁으로 생산시설이 파괴되며 과잉생산이 멈췄던 거지. 하지만 그것도 일시적일 뿐이야. 자본주의는 또 생산과잉에 몰리고 또 위기를 맞고 결국 망하게 돼 있어. 자본주의는 탄생 때부터 그렇게 프로그래밍 돼 있어, 운명이라고."

▶ 케인스="무슨 얘깁니까, 늙다리 선배님들. 루즈벨트가 돈을 써서 불황은, 일시적이지만, 어느 정도 해소됐어요. 계속 돈을 썼으면 마침내 대공황을 이겨냈을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다만 불황이 끝나기 전에 전쟁이 났고 그 결과 우리는 정부가 대공황을 이겨내는 것을 보지 못했을 뿐이에요. 그뿐 아니에요. 보세요, 자본주의는 아직도 생존해 있잖아요. 위기 때마가 중앙은행이 금리를 낮추거나 돈을 풀어 투자와 소비를 진작시킨 덕이에요. 망한 건 오히려 공산주의라고요. 그건 어떻게 설명할 건가요? 선배님들의 주장이나 예측과 정반대잖아요."

케인스(1883~1946)
케인스(1883~1946)

▶ 마르크스ㆍ엥겔스="그래, 프롤레타리아의 피로 세워진 공산주의 소련의 붕괴는 안타까운 일이야. 그래서? 우리 이론이 틀렸다고? 당연히 그건 받아들일 수 없지. 거기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아. 하지만 우리 대신 그 얘기를 해 줄 다른 사람을 소개하지. 이탈리아 공산당의 창시자 안토니오 그람시야. 사랑하는 애제자 안토니오, 존의 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 그람시="대공황 때 선배님들의 후학들은 대부분 크게 들떠 있었습니다. 마침내 자본주의가 붕괴되는 것 아니냐고 생각했었지요. 50년 주기의 장기순환을 말했던 콘드라티예프 정도가 예외였습니다. 그는 대공황을 장기순환의 한 파동 정도로 생각했지요. 그래서 그는 결국 숙청당하고 말았습니다. 저도 대공황으로 자본주의 체제가 붕괴될 줄 알았어요. 하지만 아니더군요. 자본주의는 그냥 허물어지지 않습니다. 강력한 생명력을 갖고 있어요. 바이러스처럼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지요."

▶ 마르크스ㆍ엥겔스="그래, 맞아.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그냥 주저앉아야 하나?"

▶ 그람시="물론 아닙니다. 우리는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합니다. 저는 그 답을 헤게모니에서 찾았습니다. 피지배자의 동의를 얻은 권력, 그게 헤게모니지요. 사실, 부르주아의 프롤레타리아 지배는 교묘해요. 통치를 위한 동의를 얻어내는 겁니다. 그러니 프롤레타리아는 혁명을 생각할 수 없어요. 이제 자본주의 타도는 경제뿐 아니라 문화영역에서도 그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특히 언론과 영화 등 대중매체가 중요합니다. 그것은 대중의 동의를 만드는 데 강력한 힘을 발휘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반(反)언론 반(反)문화를 구축할 필요가 있습니다. 부르주아가 퍼뜨리는 자본주의 체제의 우월성 이데올로기와 노동자도 잘 먹고 잘 살고 행복해질 수 있다는 거짓 희망과 기대를 깨부숴야 한다고요. 이를 위해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진지전이지 기동전이 아닌 이유입니다."

▶ 케인스="문화? 헤게모니? 이데올로기? 진지전? 도대체 무슨 말들을 하시는 거죠? 여전히 말도 안 되는 거짓 논리와 구닥다리 논리로 인간의 영혼에 독극물을 뿌리고 있잖아요. 더 이상 대화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겠습니다."

▶ 마르크스ㆍ엥겔스="그래, 우리는 영원한 평행선을 가는 것 같군. 자네와의 토론은 이것으로 끝내기로 하지. 하지만 존, 명심하게. 20세기 초ㆍ중반은 자네의 이론이 각광받았지. 그러나 그 결과를 봐야 해. 정부가 돈을 풀고 그것도 모자라 가계에 소비를 부추기며 빚을 지게 했어. 21세기 들어 이 행태는 더 심해지고 있네. 모두 터무니없는 빚으로 버티는 거라고. 그리고 그들은 그 행태의 정당성을 자네에게서 찾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해. 어쩌면 21세기 자본주의의 위기 또는 붕괴의 원인은 자네가 제공한 것인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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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광 이코노텔링 대기자❙한양대 미래인재교육원 겸임교수❙전 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 특임교수❙사회학(고려대)ㆍ행정학(경희대)박사❙경기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뉴욕주립대 초빙연구위원, 젊은영화비평집단 고문, 중앙일보 기자 역임❙단편소설 '나카마'로 제36회(2013년) 한국소설가협회 신인문학상 수상❙저서 『영화로 쓰는 세계경제사』, 『영화로 쓰는 20세기 세계경제사』, 『식민과 제국의 길』, 『과잉생산, 불황, 그리고 거버넌스』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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