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7-04 20:15 (월)
[김성희의 역사갈피]태종의 술치(術治)가 꿈 꾼 나라
[김성희의 역사갈피]태종의 술치(術治)가 꿈 꾼 나라
  • 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 jaejae99@hanmail.net
  • 승인 2021.12.13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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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어디까지나 도(道)가 아니라 술(術)로 펼쳐야 한다는 점 인식
한비자의 법가에 의존 … 사돈, 처남 목숨까지 거두며 통치기반 강화
우리 역사 최고의 명군 세종 탄생도 태종의 강력한 왕권 덕에 이룬 것
조선 3대 국왕 태종 이방원(오른쪽)은 정몽주를 격살하여 조선 건국의 단초를 열었고, 왕자의 난이란 골육상쟁을 치르고 권력을 잡았지만 그가 지향한 것은 유교적 이상국가였다. 사진=전주 경기전/이코노텔링그래픽팀.
조선 3대 국왕 태종 이방원(오른쪽)은 정몽주를 격살하여 조선 건국의 단초를 열었고, 왕자의 난이란 골육상쟁을 치르고 권력을 잡았지만 그가 지향한 것은 유교적 이상국가였다. 사진=전주 경기전/이코노텔링그래픽팀.

중국의 역대 왕조는 하늘을 대신한 명군, 성군이 인정(仁政)을 펼치는 유교적 이상국가를 지향했다. 적어도 명분상으로는. 하지만 실제는 달랐다. 황제와 천자들이 실제 통치에 의존한 것은 공자 맹자의 유가가 아니라 한비자의 법가였다.

정치는 어디까지나 현실, 효율적인 통치를 위해 필요한 것은 도(道)가 아니라 술(術)이었다.

우리 역사에서 이에 가장 전형적인 임금을 들라면 조선 3대 국왕 태종 이방원이다. 정몽주를 격살하여 조선 건국의 단초를 열었고, 왕자의 난이란 골육상쟁을 치르고 권력을 잡았지만 그가 지향한 것은 유교적 이상국가였다.

이를 적확하게 지적한 책이 정치학자가 쓴 『태종처럼 승부하라』(박홍규 지음, 푸른역사)로, 이방원이 권력을 쟁취하고는 권위를 창출해 태평성대로 이끄는 과정을 촘촘히 분석하고 있다. 그 태종의 통치술이 제대로 드러나는 장면이다.

1418년 즉 태종 18년 6월 3일 말썽 많고 탈 많았던 세자 양녕대군을 폐한 태종이 조계청에 모인 신하들에게 교지를 내렸다. "적실의 장자를 세우는 것이 고금의 법식"이라며 양녕의 다섯 살 난 맏이를 후사로 삼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그런데 태종의 속내를 모른 우의정 한상경 등이 "가하다"했다. 태종의 뜻에 거슬릴까봐.

그러자 태종과 교감이 있던 영의정 유정현이 비상한 상황임을 들어 '어진 사람'을 골라야 한다 주장했고, 이에 좌의정 박은이 동조했다. 이처럼 이른바 적장론(嫡長論)과 택현론(擇賢論)의 대립하자 점을 쳐서 정하자는 의견까지 나온 뒤 태종은 "양녕의 아들을 대신 세우는 것은 여러 대신들이 불가하다 하니 어진 사람을 골라 아뢰라"고 일렀다. 이에 신하들이 아들을 아는 것은 아버지만한 이가 없다며 태종더러 선택하라 하니 비로소 충녕대군으로 세자를 정했다. 신하들 역시 "신 등도 충녕대군을 가리킨 것입니다"하고 맞장구를 쳤다.

양녕을 11세에 세자로 책봉해 제왕 교육을 시켰음에도 실패했는데, 살아있는 아비를 폐했는데 그 아들을 왕세손으로 삼는다는 것은 애초에 말이 안 됐다. 그럼 왜 이런 '짜고 치는 고스톱'을 연출했을까. 태종은 이미 셋째 충녕을 마음에 두었으면서도 말이다.

책의 지은이는 이를 두고 태종이 공론정치를 실행하는 유교적 군주의 모습을 연출하려 했던 것이라 풀었다. 요즘으로 치면 "국민이 원한다면…"식이니, 속된 말로 폼도 잡고 실리도 챙기려는 속셈이었다는 설명이다. 우리 역사 최고의 명군 세종의 영광은 이처럼 형제의 피를 흘리는 걸 무릅쓴 권력의 화신이자, 왕좌에 올라서는 사돈, 처남을 쳐내고 술치(術治)를 감행한 철혈의 군주 태종이 있어서 가능했다고 보면 무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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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커리커처.
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커리커처.

고려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정년퇴직한 후 북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엔 고려대학교 언론학부 초빙교수로 강단에 선 이후 2014년까지 7년 간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겸임교수로 미디어 글쓰기를 강의했다. 네이버, 프레시안, 국민은행 인문학사이트, 아시아경제신문, 중앙일보 온라인판 등에 서평, 칼럼을 연재했다. '맛있는 책 읽기' '취재수첩보다 생생한 신문기사 쓰기'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1884~1945'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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