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출판에 재갈 물렸지만 인쇄술 발달로 출판 늘어나자 '검열 목록'( 인덱스 ) 등장
로마 '금서 목록'이 인기를 끌자 독일 등의 인쇄업자는 목록에 실린 책 만들어 대박
검열은 권력이 등장해야 시행된다. 그러니 유럽에서 문자에 대한 감시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공식 종교로 정해진 니케아 공의회(325년) 이후다. 이때부터 '위험서적'은 쓰는 것은 물론, 읽는 것도 금지되면서 당국의 검인을 받기 위해 해당 지역 주교들에게 원고를 보내는 것이 관례가 됐다.
필경사들이 필사해서 책을 출간하던 시대에는 이런 체제가 유효했다. 세 권짜리 책을 출판하는 데 만 5년 걸렸던 시대였으니 설사 불온서적이라 해도 파급력은 미미했으니 말이다. 이런 상황은 구텐베르크가 활판인쇄술을 '발명'한 15세기 중반 이후 달라졌다. 인쇄업자가 2주일 동안 무려 400~500부를 찍어낼 수 있게 되었으니 그야말로 사상과 언로의 봇물이 터진 셈이었다.
교회는 이를 권위에 대한 직접적 도전으로 간주했다. 교황청은 모든 출판물과 출처를 감시하고, 출판 가능 여부를 미리 판단하는 특별심사부를 설치했다. 교황청 검열위원회는 '금지된 지식'을 담은 책의 목록을 이따금 출판했는데 이것이 그 유명한 '인덱스Index(금서 목록)'의 기원이다. 요즘에야 '찾아보기'란 뜻으로 더 많이 통용되지만.
교황청 검열위원회는 오래지 않아 현실의 벽에 부딪쳤다. 1453년에서 1500년까지만 해도 4만 종 이상의 책이 쏟아졌으니 위원회가 감당할 일이 아니었다. 신문과 잡지, 팸플릿의 홍수 속에서 '이단'을 가려내려면 수년이 걸려도 불가능한 일이라는 게 드러났다. 결국 종교개혁 바람을 타고 '인덱스'가 오히려 호기심을 북돋아 눈 밝은 이들이 금서 목록에 실린 책을 찾아 읽는 데 참고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17세기에 접어들면서 독일과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등 신교도들이 많은 지역에선 '금서 목록'이 상업적으로 이용되기도 했다. 이들 나라의 출판업자들은 교황청이 자리하고 있던 로마에 '금서 목록'을 사전에 알아내는 특별 사무소를 두었다. 이들이 금서 목록의 견본을 손에 넣으면 전령을 통해 급히 본국에 전달하고, 독일과 네덜란드 인쇄업자들은 목록에 실린 책을 만들어 팔아 막대한 이익을 챙겼다. 심지어 가제본된 금서들을 다른 나라로 운반하는 전문 서적밀수업자들이 생겼을 정도다.
『무지와 편견의 세계사』(생각의 길)에서 이런 이야기를 전한 미국 작가 헨드릭 빌렘 반 룬은 로마 역사가 타키투스의 말을 소개한다. "저자에 대한 탄압은 그냥 두면 아무 관심도 끌지 못할 것을 오히려 광고해서 널리 알려주는 어리석은 짓"이라 했다던가.
아울러 20세기 초까지 금서 목록제도가 유효했던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이 유럽 각국의 '진보의 경주'에서 뒤처진 이유를 생각해 보라고 권한다. 권력자의 오판이 부작용을 낳은 것이 어디 검열뿐일까. 아니, 옛날 먼 나라 이야기일 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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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정년퇴직한 후 북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엔 고려대학교 언론학부 초빙교수로 강단에 선 이후 2014년까지 7년 간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겸임교수로 미디어 글쓰기를 강의했다. 네이버, 프레시안, 국민은행 인문학사이트, 아시아경제신문, 중앙일보 온라인판 등에 서평, 칼럼을 연재했다. '맛있는 책 읽기' '취재수첩보다 생생한 신문기사 쓰기'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1884~1945' 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