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일 청구권 자금으로 짓게 되자 박 사장 "조상 핏값으로 짓는데 실패하면 영일만 빠져 죽자"
조선 ㆍ자동차 등 산업 발전 이끌어 … 섭씨 1000도 불 끄는 종풍(終風)과 함께 역사속으로
한국의 산업화와 경제 발전을 견인했던 '포스코 제1고로(高爐=높다란 용광로)'가 48년에 걸친 자신의 벅찬 임무를 끝내고 올 연말에 퇴역한다.
30일 포스코 관계자는 "포항제철소 내 제1고로는 연내에 종풍식을 갖고 퇴역할 예정"이라며 "퇴역 후 포항 지역에 별도 철강역사박물관을 지어 옮길지, 현 위치에 그대로 둔 채 박물관 용도로 활용할지 등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여기서 종풍(終風)이란 '섭씨 1000도 이상의 고온을 유지해 온 고로의 불을 꺼 쇳물 생산 기능이 끝나도록 하는 일련의 은퇴 과정'을 말한다.
포항제철소 내에 위치한 1고로 종풍에 국내외의 관심이 쏠리는 이유는 이 고로가 20세기 후반 산업화를 통해 진행됐던 한국의 경제 발전 역사와 그 궤(軌)를 함께해 왔다는 사실 때문이다. 때문에 1고로에는 '민족 고로'니 '제철 보국(製鐵 報國) 고로'니 하는 수식어가 따라붙어 왔다.
포항제철소 제1고로는 지난 1973년 6월 9일 4년간의 힘든 공사 끝에 국내 최초로 현대식 제철방식을 통해 쇳물을 뽑아내 왔다. 이를 통해 조선, 자동차, 기계, 건설, 중화학 등의 발전을 견인해 한국이 산업국가로 도약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1989년 12월 발행된 '포항제철 20년사'에는 제1고로가 쇳물 생산에 성공하는 순간을 이렇게 적고 있다.
『1973년 6월 7일 본관 앞 광장에서 박태준 사장은 태양열로 원화(元火)를 채화하여 원화로(元火爐)에 보존하였으며, 6월 8일 상오 10시 30분 고로화입식(高爐火入式)을 통하여 제1고로 점화로(點火爐)에 불을 지폈다. 박태준 사장과 건설 요원 모두가 고로의 제2주상(鑄床)을 꽉 메우고 초조히 지켜보는 가운데 화입 후 21시간 만인 6월 9일 상오 7시 30분 마침내 우리 손으로 만든 이 나라 최초의 일관제철소 고로가 쇳물을 쏟아 내었다. 이 순간 박태준 사장을 포함한 임직원들과 건설 요원들은 일제히 기쁨과 환호의 만세를 불렀으며 모두의 얼굴은 감격의 눈물로 뒤범벅이 되었다.』
1960년대부터 추진된 포항제철소 건설은 초기에 자본, 기술, 경험 등 3 無 상태에서 진행됐다. 외자 도입이 여의치 않자 대일청구권 자금을 투입하는 등 숱한 곡절 끝에 마침내 '영일만 철강 신화'가 탄생했다. 박태준 사장 등 당시 건설 멤버들이 내세웠던 '우향우 정신'은 그 후 널리 회자됐다. "조상의 핏값으로 짓는 제철소 건설에 실패하면 우리 모두 '우향우' 해서 영일만에 빠져 죽어야 한다."
이렇게 탄생한 1고로는 1973년 첫 출선 이후 최근까지 무려 3400만t의 쇳물을 뽑아내 한국 산업 발전의 토대를 구축했다. 내부에서 섭씨 1000도 이상의 고온을 견뎌야 하는 고로는 통상 15년 이상 수명을 유지하기 힘들다. 포스코 1고로는 1979년 1차 개수공사, 1993년 2차 개수공사를 거치며 가동 연한을 늘려 세계 최장수급 고로로도 부각됐다.
당초 포스코는 5년 전인 2017년 1고로의 종풍식을 할 생각이었다. 9개로 늘어난 고로 중 연산 500만t 이상의 초대형 고로가 여럿이었던 포스코에서 연산 130만t에 불과한 1고로는 경제성이 한참 떨어졌기 때문. 하지만 1고로의 역사성과 철강 수요 회복이 고려돼 퇴역이 미뤄졌다.
이번에 퇴역을 결정한 것은 세계적으로 펼쳐지고 있는 탄소 중립 및 탄소 제로 운동 등과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역사성이 있고 쓸모도 남아 있다지만 워낙 오래된 고로라 상대적으로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많은 점이 포스코의 결단을 촉구했다는 풀이다.
제1고로는 곧 퇴역하지만 처음 태어난 고로 옥동자로서 한국 산업사에 자신의 존재감을 오랫동안 과시할 것이 틀림없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