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 공직을 맡은 그의 측근은 '오하이오 갱'이라 불리며 갖가지 부정부패 저질러
미국의 29대 대통령 워런 하딩(재임 1921~1923)은 미국 역사상 가장 멍청했던 인물로 꼽힌다. 한번은 그의 아버지가 "네가 딸로 태어나지 않아 좋다. 그랬다면 너는 '안 된다'는 말을 못하니까 늘 임신 중이었을 것이다"라고 탄식했을 때 가장 크게 웃은 사람이 하딩이었을 정도다. 그는 "배우의 얼굴과 존경할 만한 농기 거래상의 지능, 그리고 오두막집 목수의 상상력을 가진 3급 정치 일꾼"이란 평을 받기도 했다.
그런 하딩이 대통령이 된 데에는 기막힌 사연이 있다. 1920년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 후보 지명전은 쟁쟁한 인물들이 나섰기에 매우 치열했다. 9번이나 투표해도 후보가 결정되지 않자 각 계파 대표들이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제3자를 지명하기로 합의한 덕에 하딩은 대권 도전에 나설 수 있었다. 그러기에 하딩의 후보 지명은 '시가 연기가 자욱한 방(smoke-filled room)'에서 결정되었다고들 한다.
그러니 하딩이 제대로 국정을 이끌어갈 리 없었다. '오하이오 갱'이라 불린 그의 측근들은 고위 공직을 맡아 온갖 부정부패를 저질러 하딩은 '가장 부패한 행정부의 주인'이었다는 오명을 써야 했다. 오죽했으면 오하이오 갱의 리더인 법무장관 해리 M. 도허티는 불법 사면 등의 혐의로 재판에 회부되어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하딩의 후임인 캘빈 쿨리지 대통령의 압력을 받아 사퇴했을까. 물론 26대 대통령 시어도오 루스벨트의 딸인 앨리스 루스벨트 롱워스는 "하딩은 나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단지 얼간이였을 뿐입니다"라고 평했지만 말이다.
이는 대통령 후보로까지 나섰던 밥 돌 전 상원의원이 쓴 『위대한 대통령의 위트』(아테네)에 나오는 내용이다. 밥 돌은 미국 역대 대통령의 위트와 유머를 순위로 매겨 소개하는데 하딩 등과 더불어 '농담거리 신세'로 분류된 13대 대통령 밀러드 필모어(재임 1850~1853)의 일화는 웃음보다는 자못 진지한 생각거리를 던진다.
퇴임 후 여행을 즐기던 필모어는 1855년 영국 옥스퍼드대학을 방문했을 때 명예박사 학위를 주겠다는 제안을 받았다. 하지만 라틴어 분야 학위라는 것을 알고는 "저는 고전 교육 혜택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제 판단으로는, 아무도 자기가 읽을 수도 없는 학위를 받아서는 안 됩니다"라며 거절했다.
이 대목에서 본인 혹은 배우자의 학위 논문이 시빗거리가 된 우리 20대 대통령 선거전이 떠오르며, 유력한 대선후보들이 '국민 욕받이' 혹은 '국민 조롱거리'가 된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싶은 건 혼자만의 삐뚤어진 생각일까.
---------------------------------------------------
고려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정년퇴직한 후 북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엔 고려대학교 언론학부 초빙교수로 강단에 선 이후 2014년까지 7년 간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겸임교수로 미디어 글쓰기를 강의했다. 네이버, 프레시안, 국민은행 인문학사이트, 아시아경제신문, 중앙일보 온라인판 등에 서평, 칼럼을 연재했다. '맛있는 책 읽기' '취재수첩보다 생생한 신문기사 쓰기'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1884~1945' 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