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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쓰는 세계 경제위기사(14) 대공황'모던 타임스' ⑤기계는 인류 공동재산?
영화로 쓰는 세계 경제위기사(14) 대공황'모던 타임스' ⑤기계는 인류 공동재산?
  • 이코노텔링 이재광 대기자
  • jkrepo@naver.com
  • 승인 2021.11.22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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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지니어 출신 더글러스의 '기계論'은 일반 경제학자의 상상을 뛰어 넘어
채플린"발명품들은 이익 추구외에 인간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라며 이견
런던서 간디 만나 '기계의 노동단축' 설파…간디 "종속 벗어나려 脫기계"

특정 주제를 순식간에 포착하고 이해할 수 있는 능력! 채플린의 전기 작가 로빈슨은 채플린의 바로 이 능력을 강조한다. 이를 통해 채플린은, 비록 잘못 이해했지만, '사회신용론'을 기반으로 자산관리에 성공하고 세계경제 활성화 방안까지 내놓는다. 불세출의 영화 <모던 타임스>에서도 이 같은 채플린의 탁월한 능력이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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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식간에 사물을 이해할 수 있는 채플린의 능력은, 실상, 경제가 아닌 다른 영역에서 빛을 발했다. 그는 영화인이었다. 경제에 관한 한 어쩔 수 없이 잘못된 지식을 갖게 됐다지만 영화에서만큼은 그렇지 않았다. 순식간에 포착해 낸 경제지식을 순식간에 영화언어로 바꾸는 그의 능력을 누가 따라갈 수 있을까. 우리는 이 대목에서 새롭게 한 가지를 주목해야 한다. 채플린이 더글러스의 '사회신용론'에서 받아들인 것은, 잘못된 '노동가치론'이나 '과소소비론'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가 '사회신용론'에서 배운 '진짜'는 바로 '기계'였다.

더글러스는 엔지니어 출신이었다. 기계에 대한 남다른 이해가 있었다. 문과 출신 경제학자가 경제전문가는 따라가려야 따라갈 수 없었다. 기계에 대한 그의 생각은, 실제로, 일반 경제학자들의 상상을 넘어선다. ①현대 생산에서 기계가 차지하는 비중은, 네 번째 생산요소라 부를 수 있을 만큼, 절대적이다, ②또한 어떤 기계도 동시대의 몇 명이 만들 수는 없다, ③기계 하나에는 인류 역사 전체를 관통하는 '문화'가 들어 있는 것(바퀴의 원리 없는 기계는 없다!)이다, ④결국 기계는 인류의 '문화유산'이며 따라서 그 소유권은 인류 전체에 있고, ⑤그러니 기계에 의해 생산되는 부가가치는 인류 모두 나눠 가져야 한다는 얘기다.

간디와 채플린
간디와 채플린

일자리와 관련해서도 분명히 알아둬야 할 게 있다. 기계는 효율적이다. 열 명이 할 일을 한 명이 할 수 있게 만든다. 그러니 인간이 기계에게 일자리를 내주는 것은 피할 수 없다. 더글러스가 보기에, 기계는 인류 진화의 산물이다. 기계의 발전은 인류 진화의 척도라 할만하다. 그러니 인류가 진화하면 할수록 기계는 발달하고 기계가 발달하면 할수록 인간은 일자리에서 쫓겨날 수밖에 없다. 실업이 늘면 사회는 붕괴된다. 왜? 돈 쓸 사람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당연히 기업도 돈을 벌기 어렵다. 해결책? '사회신용'이다. 국가 또는 사회가 거저 돈을 주거나 무이자로 빌려줘야 한다. 그래야 구매력이 살고 경제가 산다.

그렇다면 채플린은, 기계와 관련해서는, 더글러스의 이론을 제대로 받아들였을까? 그렇지 않아 보인다. 1931년 2월 일간지 '뉴욕 월드'와의 인터뷰를 다시 보자. 그는 이렇게 말한다.

"문제는 ··· 실업입니다. 기계는 인류에 이바지해야 합니다. 그것이 비극을 초래하거나 실업을 일으켜서는 안 됩니다. 노동 절약 장치와 여타의 현대적 발명품들은 이익 추구 때문이 아니라 인간에게 행복을 추구할 수 있게 하려는 목적에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이 대목에서 알 수 있는 것은, 기계와 관련해서도 채플린은 더글러스를 잘못 이해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더글러스의 말에 따르면 기계는 인류 진화의 결과이며, 실업을 일으키는 것은 필연이다. 따라서 "실업은 경제 붕괴가 아닌 경제발전의 신호"가 되는 것이다. 더글러스의 이론을 쫓는다면 최소한 "기계가 실업을 일으켜서는 안 된다"는 말은 할 수가 없다.

물론 반론도 가능하다. 기계와 실업에 대한 채플린의 관점을 '사회신용론'과 관계없는 것으로 볼 수도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인터뷰 내용을 좀 더 본다면 그 같은 반론은 성립이 어렵다. 같은 인터뷰에서 그는 "우리 신용체계에 뭔가 잘못된 점이 있다"는 말과 함께 노동시간을 줄이고 신용체계에 혁신을 가져올 것을 촉구한다"는 말도 한다. 논리 전체가, 비록 틀리기는 했어도, 더글러스의 '사회신용론'의 맥락에서 읽히는 것은 어쩔 수 없다.

■ 채플린, 간디와 만나도 기계 애기만

인터뷰 일정과 장소도 주의해 볼 필요가 있다. 1931년 2월 뉴욕이었다. 채플린은 2월 6일 <시티 라이트> 뉴욕 개봉식에 참석했고 며칠 뒤 <시티 라이트> 홍보 차 세계 각국을 돌 계획이었다. 채플린이 가기로 예정됐던 나라는 많다. 유럽 여러 나라는 물론 싱가포르와 멀리 극동의 일본까지 있었다. 그는 장장 1년 반 예정의 세계 여행을 떠나기 직전 '뉴욕 월드'와 인터뷰를 했던 것이다. 또한 인터뷰 시점이 대공황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는 사실도 알아야 한다. 이 시점에서 인터뷰의 주요 주제 중 하나가 '기계'와 '실업'이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 크다.

그가 '기계'라는 주제에 빠져 있었다는 사실은 유럽여행길에서도 간파할 수 있다. 9월 22일 그는 런던에서 마침 그곳을 방문했던 인도의 귀인(貴人) 마하트마 간디를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는 이날 간디와 아주 짧은 만남을 가졌었는데, 그 짧은 만남에서도 그가 간디와 나눈 대화 주제는 바로 '기계'였다. 채플린의 자서전을 통해 그가 간디와 나눈 얘기 요점을 재구성해 보자. 이런 내용이었다.

▶채플린=자유를 위해 투쟁하는 인도에 대해 진심으로 공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기계를 몹시 싫어한다는 사실에 저는 다소 혼란스럽습니다. ··· 기계를 이타적 의미에서 세상을 이롭게 하기 위해 사용한다면 인간이 노예 상태에서 해방되고 노동시간을 단축하고 그 시간에 정신을 함양하거나 삶을 향유하는데 사용할 수 있다고 봅니다.

▶간디=저도 이해합니다. 그러나 그런 목표를 달성하기 전에 우선 인도는 영국의 지배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과거에 인도는 기계 때문에 영국에 종속됐습니다. 인도가 이런 종속관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기계가 만든 모든 제품을 불매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모든 인도인이 자신이 직접 실을 잣고 옷을 손수 만들어 입는 것을 애국적 의무로 삼은 것입니다. 이것이 영국과 같은 강대국에 맞서 우리가 선택한 공격 방식입니다.

채플린이 <모던 타임스>에 대한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이를 다듬기 시작한 것은 1932년 하반기에서 1933년 초 무렵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 계기를 마련해 준 것은 다름 아닌 여배우 폴레트 고다드(Paulette Goddard)였다. 세계여행을 마치고 돌아 온 직후인 1932년 7월 채플린이 그를 처음 봤을 때 그는 꽃다운 나이 스물 둘이었다. 그러나 그는 이미 결혼 경험이 있었던 이혼녀였다. 당시 채플린은 두 번째 부인 리타 그레이(Lita Grey)와 이혼 소송 중이었다. 힘들고 외로웠던 채플린은 활달했던 고다드에게 호감을 갖고 있었고 이윽고 둘은 연인으로 발전했다.

신혼여행 중 사진기자들에게 포즈를 취하는 채플린과 고다드
신혼여행 중 사진기자들에게 포즈를 취하는 채플린과 고다드

채플린은 단역을 제외하고는 연기 경험이 없었던 모델 출신 고다드에게서 연기 재능을 발견한다. 자서전에서 채플린은 우연히 그녀의 성대모사를 들은 뒤 "그녀가 연기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면서 "영화에 대한 아이디어가 떠오르기 시작했다"고 썼다.

또한 지난 날 한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나눴던 얘기를 떠올렸다고도 밝힌다. "내가 디트로이트를 방문할 예정이라고 하자 그는 내게 컨베이어벨트 시스템에 대해 이야기해줬다"며 "컨베이어벨트 시스템에서 4~5년 일하면 신경쇄약에 걸릴 정도라며 그 심각성에 대해 들려줬다"고 했다는 것이다. 채플린은 실제로 1923년 10월 디트로이트를 방문했고 포드 회장의 안내를 받아 포드사를 견학하는 기회를 가졌었다.

<모던 타임스>와 관련된 첫 작업 기록은 1933년 3월에 있었고 1년 반 정도의 준비 기간을 거쳐 1934년 10월 촬영을 시작한다. 1년 쯤 지나 영화가 완성됐고 1935년 12월 마침내 시사회를 가질 수 있었다. 그리고 1936년 2월 뉴욕에서 관객에 첫 선을 보인다. 이 무렵 둘은 부부가 된다. 고다드는 두 번째, 채플린은 세 번째 결혼이었다. 그러나 둘의 결혼에 대한 구체적인 자료를 찾을 수는 없다. 비밀리에 결혼했고 둘 모두 날짜를 밝히지는 않았다. 다만 <모던 타임스> 개봉 직후 신혼여행으로 세계여행을 떠남으로써 대략 이 즈음 결혼했을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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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광 이코노텔링 대기자❙한양대 미래인재교육원 겸임교수❙전 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 특임교수❙사회학(고려대)ㆍ행정학(경희대)박사❙경기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뉴욕주립대 초빙연구위원, 젊은영화비평집단 고문, 중앙일보 기자 역임❙단편소설 '나카마'로 제36회(2013년) 한국소설가협회 신인문학상 수상❙저서 『영화로 쓰는 세계경제사』, 『영화로 쓰는 20세기 세계경제사』, 『식민과 제국의 길』, 『과잉생산, 불황, 그리고 거버넌스』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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