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2-02 01:45 (목)
영화로 쓰는 세계 경제위기사(14) 대공황'모던 타임스' ➂채플린은 투자 귀재?
영화로 쓰는 세계 경제위기사(14) 대공황'모던 타임스' ➂채플린은 투자 귀재?
  • 이코노텔링 이재광 대기자
  • jkrepo@naver.com
  • 승인 2021.11.15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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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실업자 1400만 명에 달한다는 보고서 나오자 갖고 있던 채권과 주식을 모두 팔아
대공항 피해서 벗어나…친구이자 작곡가 어빙 벌린은 낙관하다가 투자금 모두 날려
채플린, ' 사회신용론 '에 심취해 칼럼이나 언론 인터뷰에서 불황 타개책 제안하기도

채플린은 '사회신용론'의 창시자 클리포드 휴 더글러스에 많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언론 인터뷰나 자서전, 전기 등을 통해 본 그의 경제관에서 더글러스의 흔적을 찾는다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또한 채플린은 그의 이론을 실생활에 적용시키기도 했다. 경제에 관한 한, 더글러스는 채플린의 가이드였음이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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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앞으로도 계속 번창하려면 미국인의 소비력 역시 유지돼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계속해서 현재 상황을 불가피한 것으로 파악할 경우 문명 구조 전체가 와해될 수도 있습니다. 현재의 개탄할 만한 상황을 일할 각오가 돼 있고 일하고 싶어 하면서도 일자리를 얻을 수 없는 500만의 실직자 탓으로 돌릴 수는 없습니다."

1931년 2월 채플린이 뉴욕의 일간지 '뉴욕월드(New York World)'와의 인터뷰에서 했던 말이다. 여기에도 더글러스의 흔적이 있다. "미국인의 소비력이 유지돼야 한다"고 하지 않나. 또한 그는 이 인터뷰에서 "우리의 신용 체계에 뭔가 잘못된 점이 있다고 생각한다"는 말도 했다. 이 인터뷰에서 채플린은 더글러스의 이름과 그의 이론을 거론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소비력 유지'를 위한 '신용체계 문제 개선'이라는 화두는 더글러스의 결론을 유추하기에 어렵지 않다. 즉, "사회신용을 창출해야 한다"는 말과 다름 아니다.

"기계는 인류에 이바지해야 합니다. 그것이 비극을 초래하거나 실직을 야기해서는 안 됩니다. 노동 절약 장치와 여타의 현대적 발명품들은 이익 추구 때문이 아니라 인간에게 행복을 추구할 수 있게 하려는 목적에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 뭔가 잘못 돼 있습니다.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기 때문에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에서 500만 명씩이나 일자리를 잃고 있습니다."

같은 인터뷰에서 했던 이 말에도 더글러스의 흔적이 보인다. '기계'와 '실업'은 더글러스 이론의 핵심 중 하나이다. 더글러스에게 '기계'는 인류 진보의 상징이며 문화적 유산이다. 인류가 존재하는 한 피할 수 없는 당연한 귀결이라는 의미다. 문제는 이 '유산'이 인간을 일터에서 쫓아낸다는 점이다. 일하고 싶어도 일할 곳이 없는 사회, 실업이 만연한 사회. 이런 사회에서는 실업자만 문제가 되는 게 아니다. 물건을 사 줄 소비자가 준다. 자칫 사회 전체가 망가질 수도 있다. 해결 방법? 역시 같다. "사회신용을 창출해 국민에게 돈을 주라"는 것이다. 그는 이를 '국민배당'이라 부르고 요즘 우리는 '국민기본소득'이라 부른다.

■ 경제전문가 채플린?

인터뷰를 보면 채플린에게는, 시쳇말로, 뭔가 있어 보인다. 영화뿐 아니라 경제에 대해서도 아는 게 많고 그래서 유식해 보인다. "근무 시간을 줄이는 일이 실직자를 없앨 것이라고 확신한다"거나 "포드 씨는 노동시간 감축과 신용체계혁신을 촉구했다"며 "나는 그런 변화가 장차 국가에 닥칠 심각한 파국을 피하게 해 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고도 했다. 자칫 정계 입문 선언으로 오해받을 수도 있다. 결론적으로 당시 그에게는 경제에 대한 모종의 확신이 있었을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물론 그것은 더글러스에게 배운 것일 게다.

1929년 10월 29일 월가에 모여든 군중. 채플린은 ‘사회신용론’을 공부한 덕에 대공황을 알리는 주가 폭락 직전 주식ㆍ채권 모두를 처분했다고 밝혔다.
1929년 10월 29일 월가에 모여든 군중. 채플린은 '사회신용론'을 공부한 덕에 대공황을 알리는 주가 폭락 직전 주식ㆍ채권 모두를 처분했다고 밝혔다.

자신감이 생겼던 것일까? 채플린은 한 걸음 더 나간다. 다음해 6월 그는 언론에 경제 해결책에 대한 칼럼까지 기고했다. 글은 꽤 어려워 보인다.

유럽경제의 활성화 방안을 논했고, 전쟁 배상금에 따른 독일 경제의 불황 타개책도 언급하고 있다. 연합국 측이 공채를 발행하고 이를 근거로 새로운 국제 통화를 만들면 이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 했다.

거의 전문가 수준의 얘기다. 원문 내용이 무척이나 궁금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아쉽게도 필자는 이 글의 원문을 찾지 못했다. 로빈슨의 전기를 통해 어느 정도 내용 탐색만 가능한 상황인데, 따라서 경제에 대한 그의 지식수준이나 의견에 대한 타당성 등은 진단하기 어려워 보인다.

그럼에도 여러 자료를 검토해 보면 경제에 대한 그의 지식수준을, 대충은, 알 수 있을 것 같다. 결론적으로 경제에 대한 그의 지식수준은 높아 보이지 않는다. 그에 대한 전기나 자서전, 관련 문헌 등에서 그 근거를 찾을 수 있다. 우선 그의 일상을 보자. 더글러스의 사회신용론에 감명을 받았다고 했다. 그래서, 일상에서, 그가 새롭게 한 일은 무엇이었을까? 정치운동? 사회운동? 아니면 이론의 전파? 아니다. 가장 먼저 했던 일은, 뜻밖에도, 자신의 자산관리였다. 채플린은 자서전에서 이렇게 썼다.

"영화를 촬영하는 동안 주식시장이 붕괴됐다. 다행히 나는 C. H. 더글러스의 『사회신용론』을 읽고 준비하고 있던 터라 큰 피해를 입지는 않았다. 『사회신용론』은 ··· 이윤이 기본적으로 임금에서 나온다는 것을 역설했다. 따라서 실업은 이윤 손실과 자본 감소를 의미했다. 1928년에 이 책을 읽은 나는 그의 이론에 크게 공감했다. 특히 그해는 미국의 실업 인구가 1400만 명에 달한다는 보고가 나온 해였다. 나는 갖고 있던 채권과 주식을 모두 팔아 현금화했다."

"대공황이 일어나기 하루 전날, 나는 작곡가 어빙 벌린과 저녁식사를 했다. 그는 주식시장에 대해 상당히 낙관적인 전망을 하고 있었다. ··· 나는 이쯤해서 주식을 팔고 빠지는 게 좋다고 충고했지만 ··· 그는 오히려 역정을 냈다. ··· 하지만 다음날 주식시장이 50포인트나 급락을 했고 ··· 투자금을 모두 날렸다. 그는 내 스튜디오에 찾아와 내게 사과했다. 그리고 어디서 그런 정보를 얻었는지 알고 싶어 했다."

결국 더글러스의 '사회신용론'에 감명 받은 채플린이 한 일은 보유 중인 주식과 채권을 파는 일이었다. 왜냐하면 "기업의 이윤은 임금에서 나온다"는데 "미국 실업인구가 1400만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그리고 작곡가인 지인 어빙 벌린(Irving Berlin)에게 주식을 팔라 권유했고, 이를 거절했던 벌린은 이후 자기에게 사과하고 정보를 얻은 비결을 가르쳐 달라고 했다며 자신의 혜안을 과시했다.

채플린의 친구인 작곡가 어빙 벌린. 주가 폭락으로 큰 손실을 본 그는 미리 주식을 매도한 채플린을 부러워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채플린의 친구인 작곡가 어빙 벌린. 주가 폭락으로 큰 손실을 본 그는 미리 주식을 매도한 채플린을 부러워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벌린의 사례를 통해 자신을 과시한 행위는 별 것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사회신용론』을 읽고 자산을 팔았다"는 내용은 그냥 넘어가기 힘들다. 짧은 이 단락 하나에 중요한 실수가 두 개나 들어 있기 때문이다.

우선 그가 말한 실업자 수다. 그는 『사회신용론』을 읽은 해가 1928년이고 그해 미국 내 실업자 수가 1400만 명이라고 말했다. 이 수치는 우선 1931년 2월 '뉴욕월드(New York World)'와의 인터뷰에서 나왔던 수치 500만 명과 다르다. 하지만 500만이든 1400만이든 이는 실제와 거리가 너무 멀다. 권위 있는 역사 데이터로 많이 인용되고 있는 B. R. 미첼(Mitchell)의 『국제역사통계(International Historical Statistics)』에 따르면 1928년 미국 실업자 수는 200만 명 수준이었다. 대공황기 최대 실업자 수도 1933년 1300만 명이어서 채플린의 인용 수치보다 작다. 물론 대공황기에는 비공식 실업자 통계가 많지만 그럼에도 '1400만'이라는 숫자는 너무 크다.

통계 수치의 오류는 중요하다. 하지만 너무 심하게 몰아붙일 수는 없어 보인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이 같은 착오는 적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업의 이윤은 임금에서 나온다"는 얘기는 다르다. 채플린이 어떤 의미로 이 말을 했는지 명확하게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이 말은 "상품의 가치는 오직 그 상품을 생산한 노동만이 만들어 낸다"는 '노동가치론'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노동가치론'은, 흔히 마르크스를 떠오르게 만들지만, 아담 스미스나 데이비드 리카도 등 고전경제학자들도 주창했던 이론이다. 그렇다면 과연 더글러스는 다른 경제학자들처럼 '노동가치론'을 받아들였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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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광 이코노텔링대기자❙한양대 미래인재교육원 겸임교수❙전 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 특임교수❙사회학(고려대)ㆍ행정학(경희대)박사❙경기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뉴욕주립대 초빙연구위원, 젊은영화비평집단 고문, 중앙일보 기자 역임❙단편소설 '나카마'로 제36회(2013년) 한국소설가협회 신인문학상 수상❙저서 『영화로 쓰는 세계경제사』, 『영화로 쓰는 20세기 세계경제사』, 『식민과 제국의 길』, 『과잉생산, 불황, 그리고 거버넌스』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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