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9 23:10 (금)
[손장환의 스포츠史說] '야생마 황희찬'의 업그레이드
[손장환의 스포츠史說] '야생마 황희찬'의 업그레이드
  • 이코노텔링 손장환 편집위원
  • inheri2012@gmail.com
  • 승인 2021.11.03 21: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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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야 넓어져 패스공간 잘 찾아내고 공격 기회 포착 능력도 향상
울버햄턴에서 임대 선수로 뛰고 있는데 '완전 이적 가능성'낭보
1995년 '배추' 감독, 선수시야 넓히려 시도한 ‘손 패스’ 떠 올라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울버햄턴에서 임대 선수로 뛰고 있는 황희찬이 완전 이적할 가능성이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사진,자료=울버햄튼 원더러스 FC,축구선수 황희찬 인스타그램/이코노텔링그래픽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울버햄턴에서 임대 선수로 뛰고 있는 황희찬이 완전 이적할 가능성이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사진,자료=울버햄튼 원더러스 FC,축구선수 황희찬 인스타그램/이코노텔링그래픽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울버햄턴에서 임대 선수로 뛰고 있는 황희찬이 완전 이적할 가능성이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뛰던 황희찬은 지난 9월 울버햄턴에 임대 선수로 오자마자 데뷔전에서 골을 터뜨리며 주목을 받았다. 10월에는 세 골을 넣는 등 총 7경기에서 4득점, 공격력을 인정받고 있다.

완전 이적 여부는 내년 1월이 돼야 알 수 있으나 현재는 울버햄턴이 황희찬을 원하고 있는 분위기다.

황희찬이 성공적으로 정착한다면 또 한 명의 자수성가 프리미어리거가 된다. 황희찬은 부모로부터 축구 유전자를 물려받지 않았다. 황희찬은 '황소'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뛰어난 체력과 돌파력을 자랑한다. 그런데 황희찬의 아버지를 만났을 때 솔직히 좀 놀랐다. 지극히 평범한 체격에 축구는 물론 운동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사람이었다. "어떻게 축구를 시키게 됐냐"는 질문에 "자기가 축구하고 싶다고 해서 그냥 하라고 했죠"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황희찬은 부모로부터 축구 유전자를 물려받지 못했을 뿐 아니라 가족의 전폭적인 지원도 없이 혼자 힘으로 여기까지 왔다는 얘기다. 어렸을 때부터 축구선수 출신 코치인 아버지의 개인지도를 받았고,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일찌감치 유럽에 진출했던 손흥민과는 여러모로 비교가 된다.

물론 최초의 프리미어리거 박지성도, 한국축구의 대명사 차범근도 모두 자수성가형이니 황희찬만 특별한 것은 아니다.

올 시즌 황희찬 플레이에서 가장 달라진 점은 시야가 넓어졌다는 것이다. 이전에는 별명 그대로 우직하게 돌파하는 게 전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빠른 스피드와 몸싸움으로 측면 돌파를 잘해놓고도 마무리가 부족했다. 앞만 보고 달리다가 패스하려고 돌아보면 줄 데가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이제는 드리블하면서 주위를 돌아보는 여유가 생겼다. 이것은 매우 큰 변화다. 즉 패스할 곳이 많아졌다는 의미다.

시야가 넓어지다 보니 공간을 찾아 들어가는 능력도 좋아졌다. 당연히 골 찬스가 많이 날 수밖에 없다. 라이프치히에서 무득점에 그쳤던 황희찬이 울버햄턴에 와서 7경기에서 4득점을 했다. 그것은 황희찬이 업그레이드됐다는 사실과 함께 동료와의 호흡도 잘 맞는다는 얘기다. 1996년생인 황희찬은 이제 만 25세다. 기본 피지컬과 스피드에 시야까지 넓어졌으니 본인은 물론 한국 대표팀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TV로 축구 중계를 보는 시청자들이 가슴을 치며 답답해하는 장면은 바로 반대편으로 패스만 하면 완벽한 찬스가 나는데 좁은 공간에서만 패스를 주고받을 때다. 내 눈에는 빤히 보이는데 오랫동안 공만 찬 축구선수들이 왜 그걸 못 보는지 답답할 뿐이다.

하지만 위에서 보는 것과 평지에서 보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시청자의 눈에는 보이는데 선수의 눈에는 안 보이는 게 어쩌면 정상이다. 그걸 볼 수 있는 선수가 뛰어난 선수다.

1995년, 올림픽대표팀 감독이었던 러시아의 비쇼베츠 감독이 생각난다. 선수들은 '배추 감독'이라고 불렀다. 배추 감독은 선수들에게 희한한 훈련을 하도록 했다. 핸드볼이나 농구 선수처럼 손으로 패스해서 상대 문전까지 간 뒤 마지막에는 헤딩으로 마무리하는 것이다.

생전 처음 하는 훈련에 선수들은 어리둥절하다가 곧 불평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애들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이게 무슨 훈련이야."

"그래도 대표선수들인데 감독이 우릴 너무 무시하는 거 아냐?"

선수들이 어색한 몸짓으로 설렁설렁하자 배추 감독은 똑바로 하라며 정색을 했다.

나 역시 왜 이런 훈련을 하는지 궁금해서 물어봤더니 배추 감독의 대답은 이랬다.

"한국 선수들 플레이를 보니까 드리블할 때 땅만 보고 주위를 보지 않더라. 상대 수비에 막히면 그때서야 패스할 곳을 찾으니까 공격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는다. 손으로 공을 패스하는 훈련은 시야를 넓히는 훈련이다."

축구선수들에게 '손 패스 훈련'은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지금이야 다양한 훈련법이 개발돼 있다. 하지만 '손 패스' 같은 유치한 방법이라도 필요하다면 도입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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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텔링 손장환 편집위원
이코노텔링 손장환 편집위원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1986년 중앙일보 입사. 사회부-경제부 거쳐 93년 3월부터 체육부 기자 시작. 축구-야구-농구-배구 등 주요 종목 취재를 했으며 93년 미국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96년 애틀랜타 올림픽, 98년 프랑스 월드컵, 2000년 시드니 올림픽,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과 한일 월드컵,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등을 현장 취재했다. 중앙일보 체육부장 시절 '이길용 체육기자상'을 수상했으며Jtbc 초대 문화스포츠부장을 거쳐 2013년 중앙북스 상무로 퇴직했다. 현재 1인 출판사 'LiSa' 대표이며 저서로 부부에세이 '느림보 토끼와 함께 살기'와 소설 '파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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