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유리 지갑'의 23년전 반란…세금정산 늦췄다
어느 '유리 지갑'의 23년전 반란…세금정산 늦췄다
  • 양재찬 이코노텔링 편집고문 (언론학 박사 · 경제저널리즘)
  • 승인 2019.05.08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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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의 연말정산 불합리’ 민원 내… 정산시기 2월말로 늦춰져 추가 세금공제 길 터
5월은 종합소득세 신고의 달 … 2017년 근로자 1200만명이 6조6천억원 돌려 받아

5월은 종합소득세 신고의 달이다. 대다수 일반인들은 ‘종합소득세 신고’ 하면 사업가나 자영업자, 수입이 많은 연예인들이나 하는 것으로 안다. 특히 봉급생활자들은 자신과 상관없는 일로 여기는데 그렇지 않다. 근로소득세 연말정산을 마쳤어도 미처 공제받지 못한 지출 증빙이 있을 경우 추가적인 세금정산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봉급생활자들은 5월 종합소득세 신고 때 근로소득 관련 공제도 추가로 신고해 적용받을 수 있다는 점을 잘 모른다. 그저 2월 봉급 받을 때 연말정산을 통해 몇 푼 환급받는 것을 ‘13월의 월급’이라 칭하며 감지덕지할 따름이다.

그나저나 근로소득세를 공제받는데 필요한 영수증이나 서류를 2월 초까지 회사에 제출하고, 2월 봉급 받을 때 더 낸 것을 환급받거나 부족한 세금을 토해내는데 왜 ‘연말정산’이라고 하는가? 여기에는 소득이 투명하게 드러나 ‘유리지갑’으로 통하는 봉급생활자가 과세관청으로부터 푸대접받아온 길고도 슬픈 흑역사가 숨어 있다.

자신이 받은 월급에 세금이 얼마나 붙고 공제가 얼마가 되는지를 꾀고 있는 근로자들은 얼머나 있을까. 내라고 하는대로 내는 사람이 아마 더 많을 것이다. 그래서 소득이 투명하게 드러나 ‘유리지갑’으로 통하는 봉급생활자가 과세관청으로부터 푸대접받아온 길고도 슬픈 흑역사가 숨어 있다/이코노텔링 그래픽팀
자신이 받은 월급에 세금이 얼마나 붙고 공제가 얼마가 되는지를 꾀고 있는 근로자들은 얼머나 있을까. 내라고 하는대로 내는 사람이 아마 더 많을 것이다. 그래서 소득이 투명하게 드러나 ‘유리지갑’으로 통하는 봉급생활자가 과세관청으로부터 푸대접받아온 길고도 슬픈 흑역사가 숨어 있다. 어느 봉급생활자의 급여명세서(왼쪽)/이코노텔링 그래픽팀

알다시피 봉급생활자는 매달 급여를 탈 때 세금을 떼고 받는다. 속이고 말고 할 여지도 없이 한 달 일한 대가(근로소득)에서 뚝 떼어 거둬간다고 해서 ‘원천징수’다. 이때 월급을 주는 회사가 따르는 지침이 간이세액표다. 이는 급여 수준과 부양가족 수 등에 맞춰 이만큼 떼라고 기획재정부가 만들어 돌린다. 간이세액표에 따라 1년 동안 원천징수한 금액이 근로소득자가 실제로 내야 할 세금보다 많으면 돌려주고, 적으면 토해내도록 하는 절차가 연말정산이다.

22년 전인 1997년까지만 해도 11월 말, 늦어도 12월 초까지 증빙자료를 제출해야 12월 봉급 탈 때 근로소득세 정산이 가능했다. 이처럼 다달이 봉급에서 떼어간 세금을 더 냈는지 덜 냈는지 따지는 작업을 12월, 연말에 한다고 해서 ‘연말정산’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이 제도에 허점이 많았다.

대다수 회사에서 업무 편의상 직원들에게 11월 안에 서류를 내라고 재촉했다. 이 때문에 11ㆍ12월 연말 두 달 동안 평소보다 많은 지출을 하고서도 공제받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세법상 이듬해 5월 종합소득세 신고 때 추가로 증빙을 제출하면 공제받을 수 있다지만, 근로자들은 이를 잘 몰랐고 회사는 귀찮아서 알리지 않았다.

예나 지금이나 세금은 부담하는 사람이 불합리나 불공평을 체득하는 국가 제도다. 12월에 실시하는 근로소득세 정산이 불합리하다는 민원이 1996년 국세청에 제기됐다. 연말 두 달에 쓴 경비 중 공제받지 못하는 세금이 당시 금액으로 395억원이라는 추산과 함께. 쉬쉬하던 것을 당시 재정경제원(현 기획재정부)에 출입하는 기자였던 필자가 취재해 보도하자 정부가 소득세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해 통과됐고 정산 시기가 늦춰졌다.

1997년 소득분부터 이듬해 1월에 정산했다가 1월 정산도 공제에 필요한 증빙 자료를 제출하는데 촉박하다고 해서 다시 2월로 변경했다. 1996년 당시 납세자의 민원 제기가 없었다면 아마 지금도 12월 봉급 탈 때 정산함으로써 봉급생활자들이 해마다 적어도 수백억원을 합법적으로 절세할 수 있는 권리를 박탈당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행정편의적이고 근로소득자를 무시하는 세금제도와 징세행정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변호사나 의사 등 고소득 전문직과 연예인, 자영업자들이 내는 사업소득세는 전년 소득을 이듬해 5월 한꺼번에 따져 낸다. 이와 달리 근로소득세는 매달 미리, 그것도 뭉텅 떼어 가져가 나라살림 예산으로 쓰다가 나중에 더 거둔 것을 돌려주면 그뿐이다. 자동차세는 연초에 1년분을 내면 10% 깎아주는데, 근로소득세는 길게는 13개월(1월분 원천징수), 짧게는 2개월(12월분 원천징수) 앞서 거둬가면서 시치미를 뚝 뗀다.

미리 거두면 이자에 해당하는 만큼 세액을 공제해주든지, 이듬해 2월 더 거둔 세금을 돌려줄 때 적어도 은행 보통예금에 해당하는 이자를 붙여줘야 옳다. 양도소득세의 경우 예정신고를 하면 10%를 공제해주는데 근로소득세는 그런 것도 없다.

게다가 정부는 2015년 7월부터 다달이 떼는 세금을 간이세액표 대로(100%) 낼지, 간이세액표의 80% 또는 120%로 낼지를 봉급생활자더러 정하도록 했다. 연말정산 절차를 ‘납세자 맞춤형’으로 개편했다고 홍보했다. 하지만 속내는 소득공제에서 세액공제로 전환한 소득세법 개정으로 세금 부담이 늘어나면서 야기된 그해 2월 연말정산 파동과 같은 문제를 덮자는 꼼수이자 면피행정이었다.

사실 미리 얼마를 떼어가든 해당 봉급생활자가 부담하는 연간 근로소득세는 변함이 없다. 80%를 선택해 매달 덜 떼면 이듬해 2월 정산 때 토해낼 확률이 높다. 다달이 120%씩 떼면 더 낸 만큼 돌려받을 테고. 상당수 봉급생활자들이 120% 적용을 선택하는데, 이 경우 정산 때 환급금은 많겠지만 다달이 가처분소득이 줄어드는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

2017년 근로소득에 대한 정산 결과 더 낸 세금을 환급받은 근로자는 1200만명, 환급액은 6조6277억원이었다. 근로소득세 총액(34조7338억원)의 19.1%에 해당하는 금액을 근로자 봉급에서 더 떼어갔다가 이자는커녕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이 돌려주고 만 것이다. 사정이 이럼에도 언론은 연말정산 환급금을 ‘13월의 월급’이라 칭하고, 봉급생활자들은 공돈이 생긴 것으로 여기며 좋아하니 어이없다.

납세가 국민의 의무이긴 해도 국가가 납세자를 고맙고도 미안하게 생각하며 세금제도를 운영해야 조세저항이 일어나지 않는다. 연간 세금총액의 5분의 1을 미리 더 거뒀다가 이자도, 사과도 없이 환급하고 마는 식이어선 곤란하다. 정부는 근로소득자의 추가납부도, 환급금도 최소화하도록 간이세액표부터 보다 정교하게 만들어 적용해야 마땅하다.

​단순히 급여 수준과 부양가족 수에 따른 일률적 공제에 머물지 말고 보험료·교육비·의료비·신용카드 사용액 등에 따른 특별공제도 반영해 봉급생활자의 유리알 지갑에서 대충 원천징수해온 그릇된 관행을 바로잡아야 한다. 연도별 연말정산 결과를 토대로 연령대와 직군별, 성별, 혼인상태별 특성 등을 분석하면 보다 세밀한 간이세액표 작성이 가능할 것이다. 방대한 ‘근로소득세 빅데이터’를 묵혀두지 말고 적극 활용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