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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쓰는 세계 경제위기사(13) 마부제박사⑪죽기 전에 봐야 할 영화
영화로 쓰는 세계 경제위기사(13) 마부제박사⑪죽기 전에 봐야 할 영화
  • 이코노텔링 이재광 대기자
  • jkrepo@naver.com
  • 승인 2021.10.25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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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성도 있지만 상업적으로도 크게 성공 … 러닝 타임은 세시간 넘어
화면이 흑백이고 무성영화인데다 범죄 스릴러물이어서 분위기는 칙칙
감독 프리츠 랑은 1차대전 참전해 한쪽 눈 잃어 … 병원서 영화에 빠져

1920년대 독일은 역사 상 유례없는 정치ㆍ경제ㆍ사회적으로 혼란기요 퇴행기였다. 그러나 문화ㆍ예술 분야만큼은 달랐다. 다다이즘, 바우하우스, 표현주의···. 독일의 문화ㆍ예술인들은 놀라울 정도의 상상력과 창의력을 발휘, 혼란기의 독일은 물론 세계 문화ㆍ예술계를 이끌었다. 영화도 마찬가지. 1920년대 독일 영화계에서는 '표현주의'가 꽃을 피웠다. 그리고 <도박사, 마부제 박사>도, 다른 영화들과 함께, 그 중심에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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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도박사, 마부제 박사(이하 마부제 박사)>를 만든 프리츠 랑(Fritz Lang) 감독은 1890년 생으로 초기 독일 영화계의 거장이자 상징으로까지 평가받는 인물이다.

<마부제 박사>는 1922년, 그러니까 그가 나이 서른둘에 만들었다. 독일 무성영화시대와 표현주의 영화를 대표하는 이 영화는 또한 '1920년대 하이퍼인플레이션에 고통 받던 독일 사회를 대표하는 영화'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영화 전문가 스티븐 제이 슈나이더(Steven Jay Schneider)가 편집한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영화 1001』에도 선정될 만큼 중요한 의미를 갖는 영화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작품성만 인정받는 것은 아니다. <마부제 박사>는 당시 상업적으로도 엄청난 성공을 거뒀다. '대중적 재미' 측면에서도 무시할 수 없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지금 우리가, 이 영화를 보고 즐기기란 쉽지 않다. 무엇보다 그 길이에 압도당한다. 러닝 타임이 무려 195분, 그러니까 3시간 15분이나 된다. 그것도 흑백이요, 무성영화다. 그리고 범죄 스릴러물이다. 어둡고 무섭고 무겁고 칙칙하다. 배꼽 빠지게 웃다가 콧물깨나 흘리게 만드는 찰리 채플린(Charlie Chaplin) 류(類)의 영화와 정반대에 서 있다.

여기에 '표현주의'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래서 어렵다는 느낌도 준다. 그런데 이상하다. 이 영화에는 '다큐 성격을 갖는다'라는 꼬리표도 달려 있다. '사실주의적 성격을 갖는 표현주의 영화'라는 얘기가 된다. 그런데 '표현주의'와 '사실주의'는 정반대 성격을 갖는다. 그래서 영화는 더 어려워 보인다. 왠지 주눅이 든다.

■ 전쟁에서 한쪽 눈 잃고 영화에 몰입

전쟁 중 오른쪽 눈을 잃은 프리츠 랑 감독. 젊은 시절에는그의 눈은 괜찮아 보였다.
전쟁 중 오른쪽 눈을 잃은 프리츠 랑 감독. 젊은 시절 그의 눈은 괜찮아 보였다.

그러나, 모든 게 그렇듯, 이해하면 재밌다. 영화 <마부제 박사>를 이해하기 위한 첫 걸음. 감독의 성장 과정과 초기 활동을 아는 것일 게다.

랑은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출생했다. 건축가의 아들이었다. 집안 내력 때문이었을까. 그는 고향 비엔나의 한 대학 건축과에 입학한다. 하지만 오래 못 간다. 적성에 맞지 않았다고 한다. 20세였던 1910년 그는 학교를 관두고 뮌헨과 파리를 오가며 미술을 공부한다. 그리고 중간 중간 중국과 일본 등 이질적인 아시아 나라들을 경험한다. 그러다 1913년 첫 직업을 갖는다. 파리의 한 신문에 그림을 그리는 만화가였다. 하지만 이 또한 오래 가지 못한다. 1914년 전쟁이 터지자 바로 입대한 것이다. 오스트리아군이 된 그는 독일과 함께 연합국 측과 싸웠다. 그런데 이 역시 오래 못 간다. 오른쪽 눈을 잃는 큰 부상을 입고 제대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도 그는 군 면제를 위해 갖은 짓을 다 했던 채플린과 비교된다.

그러나 리츠 랑 감독이 나이가 든 후에는 검은 안대로 눈을 가렸다.
그러나 프리츠 랑 감독은 나이가 든 후검은 안대로 눈을 가렸다.

그러나 '인생사 호사다마(好事多魔)에 새옹지마(塞翁之馬)'라 했다. 죽을 때까지 한쪽 눈으로만 살아야 했던 랑은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중 자기가 가야 할 평생의 길을 찾는다. 바로 영화였다.

병원에서 연기와 희곡, 시나리오를 쓰며 처음으로 영화를 깊이 있게 접했다. 건축과 미술을 공부한 만화가, 전쟁을 겪고 목숨을 살린 대신 한쪽 눈을 내놔야 했던 혹독한 삶의 체험,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중 연기를 하고 시나리오를 쓰던 예비 영화인. 이 정도면 그가 이미 영화, 그것도 깊이 있는 표현주의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자질을 갖췄던 것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는 병원에서 운명적 인물을 만난다. 바로 에리히 포머(Erich Pommer)다. 1889년 생으로 랑과는 한 살 차이였다. 하지만 그는 이미 독일 영화계에서는 꽤 잘 나가는 인물이었다. 1916년 스물일곱 나이에 데클라 영화사(Decla-Film-Gesellschaft Holz & Co.)를 설립한 영화사 CEO였던 것이다. 그는 이후 1920년대와 30년대 독일 영화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거듭난다. 당시 포머는 그에게 영화 시나리오를 써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고 한다. 랑은 이를 흔쾌히 받아들였고 비로소 직업 영화인으로서 영화계에 발을 들여 놓았다. 우리는 이때의 상황을 랑의 생생한 목소리로 들을 수 있다. 1968년 독일 영화감독 어윈 라이저(Erwin Leiser)와의 인터뷰(https://www.youtube.com/watch?v=BYk0qzqqjmQ)를 통해서다.

"병원에서 몸을 추스를 때 저는 연극 모임에서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독일군 병사 이야기) <히아스(Der Hias)>를 공연 중이었지요. 그런데 연극을 본 포머가 제게 와 말을 걸었습니다. 이후 우리는 영화에 대해 많은 얘기를 나눴지요. 그는 제가 내놓은 아이디어를 좋아했습니다. 그리고는 얼마 뒤 저는 그와 시나리오 작가 계약을 했지요."

1968년 독일 영화감독 어윈 라이저와 인터뷰 중인 랑 감독.
1968년 독일 영화감독 어윈 라이저와 인터뷰 중인 랑 감독.

퇴원 후 그는 베를린으로 갔다. 이후 포머의 영화사에서 시나리오 작가로서의 삶을 살아간다. 당시 그가 함께 일했던 감독은 조 메이(Joe May)였다. 그는 모험과 스릴러물을 표현주의 기법으로 만들고 있던 당대 최고의 감독 중 한 명이었다. 영화 역사에서 표현주의, 모험, 스릴러의 원조 중 하나로 꼽힌다.

전쟁이 끝난 뒤 그는 주목할 만한 영화를 만들어낸다. 역사 속 거짓을 까발리는 세 편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3시간 길이의 <진리는 승리한다(Veritas vincit, 1919)>와 중국 광저우(廣州)를 배경으로 한 모험활극 8부작 <세계의 안주인(Die Herrin der Welt, 1919>), 그리고 2부작 모험 영화 <인도인의 무덤(Das Indische Grabmal, 1921)> 등이다. 이중 랑은 <세계의 안주인> 일부와 <인도인의 무덤> 두 편의 시나리오 작가로 참여한다.

그러나 시나리오 작가로서의 그의 삶도 오래 안 갔다. <세계의 안주인> 작업 중 랑은 새로운 기회를 얻었고 기회를 잡은 그는, 비로소, 영화감독이라는 자신의 평생 직업을 갖게 된 것이다. 그는 1919년 자신의 데뷔작인 영화 <절반의 특권(Das Halbblut)>을 세상에 내놓게 된다. 이후 그는, 지금 알려진 대로, 세계 영화사에 길이 남을 여러 편의 영화를 만들어 냈고 '당대 독일 최고 감독'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라이저 감독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그때 상황에 대해서도 생생한 기록을 남겼다.

"저는, 제가 쓴 시나리오가 영화로 만들어지는 방식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영화사 데클라 비오스코프(Decla Bioscop)가 제가 쓴 대본 <절반의 특권>에 관심을 가졌을 때 제가 이렇게 말했지요. 좋습니다, 제가 이 대본을 영화를 만들 수 있게 해 주신다면 그 영화를 당신에게 팔지요. 다행히 회사 CEO였던 포머도 제 말에 동의해 줬습니다. 제 영화감독으로서의 커리어는 그렇게 시작됐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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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광 이코노텔링 대기자❙한양대 미래인재교육원 겸임교수❙전 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 특임교수❙사회학(고려대)ㆍ행정학(경희대)박사❙경기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뉴욕주립대 초빙연구위원, 젊은영화비평집단 고문, 중앙일보 기자 역임❙단편소설 '나카마'로 제36회(2013년) 한국소설가협회 신인문학상 수상❙저서 『영화로 쓰는 세계경제사』, 『영화로 쓰는 20세기 세계경제사』, 『식민과 제국의 길』, 『과잉생산, 불황, 그리고 거버넌스』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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