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0-19 21:50 (화)
영화로 쓰는 세계 경제위기사(13) 마부제박사⑥베르사유 조약의 셈법
영화로 쓰는 세계 경제위기사(13) 마부제박사⑥베르사유 조약의 셈법
  • 이코노텔링 이재광 대기자
  • jkrepo@naver.com
  • 승인 2021.10.0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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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불전쟁에서 져 막대한 배상금 물고 '알자스-로렌' 빼앗겼던 프랑스 '복수의 칼날'
유럽서 프랑스가 강대해지는 것 원치 않던 영국은 독일이 부활해 균형추 역할 바라

"연합국과 연합국 정부는, 독일과 그 동맹국의 침략으로 연합국과 연합국 정부에게 강요된 전쟁에 의해 연합국과 연합국 정부, 그리고 그 국민이 입은 모든 손실과 피해가 독일 및 그 동맹국의 책임임을 확언하며 독일은 이를 받아들인다."

제1차 세계대전의 전후 처리를 위한, '독일과의 평화조약(Treaty of Peace with Germany)', 일명 '베르사유 조약(Treaty of Versailles)'의 231조 '전쟁배상'에 대한 내용이다. 문장이 길어 한 눈에 들어오지 않지만 요약하면 간단하다. "연합국 측이 입은 모든 손실과 피해가 독일 및 그 동맹국 책임"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뒤에 문장이 빠졌지만 "배상하라"는 말과 같다. '손해배상' '손실배상'이다. 개인도 이런 계약서에는 도장 찍기 어렵다. 하물며 나라 대 나라의 계약인 '조약'이다. 패전국으로서의 독일이 가질 참담함이야 말로 다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제1차 세계대전은, 잘 알려진 대로, 영국 중심의 '삼국협상(Triple Entente)'과 독일 중심의 '삼국동맹(Triple Alliance)'이 맞서 싸운 전쟁이다. 중간에 '삼국협상'에서 러시아가 빠졌지만 대신 미국이 가세함으로써 '협상' 측의 주요 '삼국'은 그대로 유지됐다. 여기에 이탈리아와 벨기에, 그리스, 일본 등이 이들의 우군(友軍)이었다.

반면 독일-오스트리아-이탈리아 등이 맺은 '삼국동맹'은 상황이 달랐다. 전쟁 발발과 함께 이탈리아가 빠져 나갔고 1년 뒤에는 연합국 측에 참여해 오히려 적이 됐다. 여기에 오스트리아는 국력이나 지도력 등에서 독일을 따르는 나라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조항에는 "연합국 측이 입은 모든 손실과 피해가 독일과 그 동맹국 책임"이라 명시돼 있다. 결국 독일이 '독박'을 쓰는 구조였다.

그때나 지금이나 이 조항에 대한 평가는 일관되다. 240쪽 가까운 분량으로 420개 조항과 다수의 부록으로 구성된 이 조약에서 가장 논란이 될 수 있는 조항이라는 것이다. 하긴 '연합국과 그 국민이 입은 피해'라는 것이 셈하기 나름이다. 여기에 영토 점령과 군사력 감축까지 규정돼 있었다. 주요 산업지역에 군사력까지 잃고 거기에 엄청난 배상금까지 물게 된다면 독일로서는 견디기 어려웠다. 자칫 이 배상금은 독일이 영원히 갚을 수 없는 빚이 될 수 있었고, 전후 독일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동력(動力)을 앗아갈 수도 있었다.

프랑스 및 독일의 최대 철광석 매장지 알사스-로레인 광산. 프랑스는 1870년 보불전쟁 때 독일에 빼앗겼던 이 지역을 1919년 베르사유 조약으로 되찾았다.
프랑스 및 독일의 최대 철광석 매장지 알자스-로렌 광산. 프랑스는 1870년 보불전쟁 때 독일에 빼앗겼던 이 지역을 1919년 베르사유 조약으로 되찾았다.

유사 사례도 떠오른다. 1870년 독일 통일 과정에서 프랑스와 벌인 일전(一戰)이 그랬다. 전쟁에서 승리한 독일은 아예 프랑스의 수족을 자를 심산이었다. 당시 프랑스 GNP의 25%에 해당되는 50억 프랑의 배상금을 요구했고, 동시에 프랑스 철광석의 90%가 매장돼 있는 알자스-로렌(Alsace-Lorraine) 지방을 가져갔다.

거기에 독일은 프랑스를, 외교적으로 고립시키기 위해 분투(奮鬪)했다. 경제와 외교 모두를 무력화시키려 했던 것이다. 하지만 독일의 이 전략은 실패한다. 배상금을 갚는 데에만 최소 5년이 걸릴 것으로 생각했지만 예상과는 달리 프랑스는 이를 1년 8개월 만에 갚았다. 게다가 프랑스는 비스마르크의 퇴진과 함께 외교적 고립에서도 벗어날 수 있었다.

■ 佛 "독일 죽이기" vs. 英 "독일 살리기"

물론 제1차 세계대전과 보불전쟁을 같은 선상에서 비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제1차 세계대전은 말 그대로 세계 주요국이 대부분 참전한 전쟁이었다. 반면 보불전쟁은 이름 그대로 독일(프로이센)과 프랑스의 1 대 1 전쟁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프랑스는 프랑스와 한 편이 됐던 연합국들로 인해 전후 처리를 독단으로 할 수 없었다. 전후 처리 과정에서, 특히 독일의 배상금 문제에 관한 한 연합국 측 입장은 나라마다 달랐다. 그 이면에 서로 다른 정치적ㆍ경제적 셈법이 깔려 있었다.

우선 프랑스를 보자. 가혹했다. 이유? 복잡했다. 무엇보다 전쟁에 따른 실질적인 피해가 컸다. 전쟁이 터진 곳은 주로 서부전전이었다. 프랑스와 벨기에 땅이었다. 프랑스에서 산업이 가장 발전된 북동부 지역 대부분이 폐허가 됐다. 프랑스 산업 생산이 전쟁 전의 60% 수준으로 떨어졌던 이유다. 프랑스 사상사가 특히 많았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800만 명의 젊은이들이 전장에 나가 130만 명이 죽고 100만 명이 다쳤다. 회의 중 조르주 클레망소(Georges Clemenceau) 프랑스 총리는 윌슨 대통령에게 "미국과 영국은 바다로 인해 보호받았지만 프랑스는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여기에 1870년 패전의 복수심도 가미됐다. 앞서 말했듯 당시 프랑스는 땅도 잃고 엄청난 배상금에 곤욕을 치러야 했다. 거기에 독일은 통일 후의 제국과 황제 출범식을 프랑스의 상징 베르사유 궁전에서 치렀다. 독일은 프랑스를 무력으로 완전히 제패했음을 세상에 알리고 싶었고 또 목적도 달성했다. 하지만 프랑스 입장에서 생각해 보라. 세계 곳곳에 자신의 벌거벗은 수치를 알린 꼴이 됐다.

프랑스는 이후 치를 떨었고 가혹한 복수를 원했다. 그리고 기회를 잡았다. 복수는 당연했다. 다시는 독일이 유럽의 강국으로 거듭나지 못하기를 원했다.

언뜻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David Lloyd George) 영국 총리도 강경파인 듯 보였다. 1918년 총선에서 그는 "독일의 배상금을 최대한 받아내겠다"고 공약했고 베르사유조약에 사인하지 않는 독일에게 협박의 포문을 열었다. 1919년 5월 31일 그는 독일 정부에 "베르사유에서 서명하지 않으면 다음에는 베를린에서 서명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내심 영국은 프랑스와 달랐다. 비교적 패전국 독일에 온유했다. 징벌적 차원의 과도한 배상금도 원하지 않았다. 독일의 해외 식민지나 영토에 대해서도 큰 욕심을 내지 않았다.

물론 거기에도 이유가 있었다. 무엇보다 영국은 바다 건너여서 전쟁의 실질적인 피해가 적었다. 독일의 육군이나 해군에게 본토를 공격받은 일은 없었다. 거기에 영국은 전후 독일이 다시 일어나 주기를 바랐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영국은 독일이 자국의 무역 파트너가 돼 주기를 바랐고, 유럽 대륙에서 프랑스가 지나치게 강대해지를 원하지 않았다. 독일에 비스마르크와 빌헬름 2세가 있었다면 프랑스에는 나폴레옹이 있었다. 영국 입장에서는 두 나라 간 세력의 균형이 최상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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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광 이코노텔링 대기자❙한양대 미래인재교육원 겸임교수❙전 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 특임교수❙사회학(고려대)ㆍ행정학(경희대)박사❙경기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뉴욕주립대 초빙연구위원, 젊은영화비평집단 고문, 중앙일보 기자 역임❙단편소설 '나카마'로 제36회(2013년) 한국소설가협회 신인문학상 수상❙저서 『영화로 쓰는 세계경제사』, 『영화로 쓰는 20세기 세계경제사』, 『식민과 제국의 길』, 『과잉생산, 불황, 그리고 거버넌스』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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