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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장환의 스포츠史說] 엘리트 스포츠와 '노메달 감동'
[손장환의 스포츠史說] 엘리트 스포츠와 '노메달 감동'
  • 이코노텔링 손장환 편집위원
  • inheri2012@gmail.com
  • 승인 2021.08.12 20: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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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승부 시각 달라졌지만 '메달 없는 올림픽' 받아 들일 수 있을까
문화 달라졌지만 지속성 의문…저변 얇은 양궁 '金4'는 엘리트의 성과
육상, 수영 선전은 '기적'…독일, 일본은 엘리트 체육 포기했다 된서리
엘리트 스포츠에서 탈피하려면 저변 확대가 필수다. 스포츠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한다는 것이다. 사진=대한민국배구협회,황선우 인스타그램,대한양궁협회,우상혁 인스타그램/이코노텔링그래픽팀.
엘리트 스포츠에서 탈피하려면 저변 확대가 필수다. 스포츠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한다는 것이다. 사진=대한민국배구협회,황선우 인스타그램,대한양궁협회,우상혁 인스타그램/이코노텔링그래픽팀.

도쿄 올림픽 여자배구는 2002년 한일월드컵 축구와 완전히 겹친다.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일본에 극적인 역전승을 거두고 8강에 오르더니 세계 4위인 터키마저 꺾고 4강에 올랐다. 김연경의 리더십과 희생정신에 국민이 열광했다. 미국과의 준결승, 세르비아와의 동메달 결정전에서 완패했지만 그걸 뭐라 하는 사람은 없었다. 이미 충분한 감동을 줬기 때문이다.

한일월드컵 때도 첫 승과 16강이 목표였는데 4강까지 가버렸다. 우리는 온 나라를 붉은색으로 도배하고, 선수들과 히딩크에 열광했다. 이후 독일과 터키에 졌지만 이미 한도 초과였다.

이번 올림픽에서는 여자배구 외에도 노메달이지만 감동을 전해준 선수들이 유독 많았다. 남자 높이뛰기 우상혁, 남자 수영 자유형의 황선우, 남자 다이빙의 우하람 등. 선수들은 경기를 즐기는 듯한 모습을 보여줬고, 국민은 그들에게 아낌없는 찬사를 보내줬다.

스포츠 기자로서 첫 올림픽 취재였던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한국 선수들은 은메달에도 울었다. 동메달을 따고도 침울했다. 동메달에도 펄쩍펄쩍 뛰며 기뻐하는 다른 선수들과 너무 대조되는 모습이어서 '금메달만 메달이냐'는 기사를 쓴 기억이 있다. 25년 만에 선수도, 국민도 달라진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그런데 뭔가 찜찜하다. 과연 이제는 메달에 연연하지 않고 경기를 즐기는 문화가 정립된 걸까. 한국은 이번에 금메달 6개로 종합 16위에 그쳤다. 금메달 7개 이상, 종합 10위 이내라는 목표를 달성하는 데 실패했다. 1988년 서울 올림픽 이후 10위 밖으로 밀려난 것은 처음이다.

이제 성적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엘리트 스포츠에서 탈피해야 한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그러려면 저변 확대가 필수다. 스포츠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한다는 말이다.

한 번 따져보자. 금메달 6개 중 4개가 양궁에서 나왔다. 안산의 3관왕, 김제덕의 2관왕에 환호했다. 양궁은 저변이 탄탄한가. 양궁을 즐기는 인구가 많은가. 아니다. 양궁은 소수 정예가 혹독한 훈련을 거쳐야 하는, 대표적인 엘리트 스포츠다. 다른 금메달인 펜싱과 체조도 저변은 형편없다. 과거 한국의 메달밭이었던 태권도와 유도, 레슬링, 배드민턴, 탁구 등은 이번에 노골드였다. 이들이 엘리트 스포츠를 포기하고 사회 체육으로 전환해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기초 종목인 육상에서 역대 최고 성적을 거둔 우상혁은 육상 인구의 증가에 따른 결과인가. 박태환의 올림픽 금메달 이후 수영 인구가 늘어서 황선우가 나타났을까. 아니다. 이들 모두는 요즘 말로 '갑툭튀'다. 개인의 능력과 피나는 노력의 결과다.

찬사는 보내되 착각하지는 말자. 이들은 자신의 최고 성적을 거뒀기 때문에 노메달이라도 즐길 수 있었다. 만일 금메달을 딸 실력인데도 노메달이라면 절대 즐기지 못한다. 그건 선진국 선수들도 마찬가지다.

사회 분위기는 오래전부터 엘리트 스포츠에서 사회 체육으로 바뀌는 추세다. 동네마다 근린공원이 있고, 운동 시설이 있다. 그런데 이곳에는 중늙은이들만 바글바글하다. 정작 사회를 이끌어갈 청소년은 보이지 않는다. 그나마 체력을 지탱해주던 학교 체육은 사라지고 있다. 노인들의 체력은 강해지고, 젊은이들의 체력은 약해지는 게 한국의 현실이다.

어린이와 청년들의 체력을 키우기 위한 사회 체육 정책은 꼭 필요하다. 그리고 엘리트 스포츠를 포기해서도 안 된다. 양궁에서 노메달이 나와도 '졌잘싸'를 외칠 수 있을까.

스포츠를 포기했다가 된서리를 맞고 다시 정신을 차린 독일과 일본이 좋은 사례를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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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텔링 손장환 편집위원
이코노텔링 손장환 편집위원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1986년 중앙일보 입사. 사회부-경제부 거쳐 93년 3월부터 체육부 기자 시작. 축구-야구-농구-배구 등 주요 종목 취재를 했으며 93년 미국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96년 애틀랜타 올림픽, 98년 프랑스 월드컵, 2000년 시드니 올림픽,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과 한일 월드컵,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등을 현장 취재했다. 중앙일보 체육부장 시절 '이길용 체육기자상'을 수상했으며Jtbc 초대 문화스포츠부장을 거쳐 2013년 중앙북스 상무로 퇴직했다. 현재 1인 출판사 'LiSa' 대표이며 저서로 부부에세이 '느림보 토끼와 함께 살기'와 소설 '파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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