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1-24 14:55 (월)
[독점 연재] 김학렬 일대기(80)정무서 경제수석으로
[독점 연재] 김학렬 일대기(80)정무서 경제수석으로
  • 김정수 전 중앙일보 경제 대기자
  • econopal@hotmail.com
  • 승인 2021.12.28 09: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재무장관 낙마 직후에 정일권 총리가 영국 대사와 정무수석 두 자리 제안
대통령 곁에서 ' 국정 경험 쌓는 게 낫다 '라는 정 총리의 권유로 청와대로
朴통의 머리역할로 입지 넓어져 … 경부고속도로와 소양감 댐 건설 산파
김학렬 부총리의 22년 관료 생활의 여정은 오로지 '5천년 가난'에 경제성장의 씨앗을 뿌리는 역정이었다. 평소 김 부총리는 주변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기록 하기를 꺼려한 까닭에 그의 육필 자료는 거의 없다. 칠순이 된 그의 장남 김정수 경제 대기자는 지난 수년간 그의 발자취를 더듬고 국가기록원 등 정부 자료집과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보관중인 사진 등을 뒤져 그의 일대기를 정리했다.
김학렬 부총리의 22년 관료 생활의 여정은 오로지 '5천년 가난'에 경제성장의 씨앗을 뿌리는 역정이었다. 평소 김 부총리는 주변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기록 하기를 꺼려한 까닭에 그의 육필 자료는 거의 없다. 칠순이 된 그의 장남 김정수 경제 대기자는 지난 수년간 그의 발자취를 더듬고 국가기록원 등 정부 자료집과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보관중인 사진 등을 뒤져 그의 일대기를 정리했다.

재무장관 자리에서 물러나는 쓰루에게 정일권 총리가 다음 일자리로 영국 대사와 청와대 정무수석의 두 가지 대안을 제시했다.

영국 대사자리는 가문의 영광이었다. 그러나 경제관료로서는 커리어를 마감하는 것이었다. 청와대 정무수석 자리는 차관급 자리였을 뿐 아니라, 그의 생리에 맞지 않는 '비서' 자리였다.

그러나 경제정책을 계속 다룰 수 있는 자리였다. 그는 청와대를 선택했다. 그 선택에는 "그래도 대통령 곁에서 국정의 큰 경험을 쌓는 것이 낫다"는 정 총리의 권유도 작용했다.

그전에는 장관을 했던 사람이 청와대 수석으로 들어간 전례가 없었다. 당시 청와대는 비서실장 밑에 수석이라고는 차관급인 정무수석뿐이었다. 그가 정무수석으로 청와대에 들어가면서 그 자리는 장관급으로 올려졌다. 그 후 청와대 수석의 직급은 차관급이든 장관급이든 사전에 정해놓지 않고 대통령의 의향과 새 수석이 청와대에 들어가기 직전 직급을 고려하여 정했다.

쓰루는 정무수석이 된 후 평생 다니지 않던 가족여행을 하는 등 마치 모든 것을 내려놓은, 명예퇴직을 앞둔 사람처럼 행동했다. 이때의 좌절이 오히려 훗날 더 큰 도약의 발판이 될 줄은 그 자신도 몰랐던 것이다.

1967년 양대 선거가 치러진 후, 쓰루는 청와대가 확대 개편되면서 신설된 경제수석으로 자리를 옮겼다. 당시 수석의 역할은 지금과는 천양지차였다. 수석은 대통령의 수족일 뿐이었다. 대통령의 지시나 관심 사안을 챙겨주는 것에 그쳤다. 자기 생각이 있어도 대외적으로 자기 의견을 밝히면 안 되었다.

재무장관 자리에서 물러나는 쓰루에게 정일권 총리가 다음 일자리로 영국 대사와 청와대 정무수석의 두 가지 대안을 제시했다.  영국 대사자리는 가문의 영광이었다. 그러나 경제관료로서는 커리어를 마감하는 것이었다.
 재무장관 자리에서 물러나는 쓰루에게 정일권 총리가 다음 일자리로 영국 대사와 청와대 정무수석의 두 가지 대안을 제시했다. 영국 대사자리는 가문의 영광이었다. 그러나 경제관료로서는 커리어를 마감하는 것이었다. 연초 지방 초도순시에 나선 정 총리가 보고를 받는 모습. 사진=국가기록원.

자신이 무슨 거물인 양 나대는 것은 더더욱 금기였다. 박통이 수석에게 깊은 신임을 주지도 않았지만, 설령 그렇다하더라도 국정에 관해서는 특히 대외적으로는 함구가 기본이었다. 기자들도 청와대 수석에게 정책이나 권부의 내밀한 일 등을 묻지 않았다.

그도 수석을 하는 동안 대외적으로 발언을 자제했다. 그는 단순히 박통의 수족 역할에 그치지 않았다. 때로는 박통의 머리 역할을 했다. 그전까지 보지 못했던 새로운 수석의 역할이었다. 그에 대한 박통의 신임과 더불어 수석의 역할은 커지고 위상은 높아져갔다.

쓰루가 상정한 수석의 역할은, 대통령이 '사실에 입각한 올바른 결정(informed decision making)'을 내릴 수 있도록 국내외의 관련 자료와 전문가들의 의견을 집대성하여 대통령에게 적시에 정책 자료와 대안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이런 식으로 그가 박통을 도운 대표적인 국정과제가 경부고속도로와 소양강댐 사업이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서초구 효령로 229번지 (서울빌딩)
  • 대표전화 : 02-501-6388
  • 청소년보호책임자 : 장재열
  • 발행처 법인명 : 한국社史전략연구소
  • 제호 : 이코노텔링(econotelling)
  • 등록번호 : 서울 아 05334
  • 등록일 : 2018-07-31
  • 편집인: 임혁
  • 발행인 : 김승희
  • 발행일 : 2018-10-15
  • 이코노텔링(econotelling)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2 이코노텔링(econotelling). All rights reserved. mail to yunheelife2@naver.com
  • 「열린보도원칙」 당 매체는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고충처리인: 장재열 02-501-6388 kpb11@hanmail.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