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0-19 21:55 (화)
[독점 연재] 김학렬 일대기(74) IMF총회서 2차개발계획 세일즈 앞장
[독점 연재] 김학렬 일대기(74) IMF총회서 2차개발계획 세일즈 앞장
  • 김정수 전 중앙일보 경제 대기자
  • econopal@hotmail.com
  • 승인 2021.10.05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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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원이 할 일을 자임 … 美원조 당국과 세계은행 등 상대 ' 2차 계획 ' 설득에 올인
"미국 정부와 국제금융기구가 거의 극찬에 가까운 평가했다"며 기자들에게 자랑해
국내언론 등 '자화자찬' 경계 … 월남 파병 댓가로 美존슨 대통령 2차계획 공식 지지
김학렬 부총리의 22년 관료 생활의 여정은 오로지 '5천년 가난'에 경제성장의 씨앗을 뿌리는 역정이었다. 평소 김 부총리는 주변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기록 하기를 꺼려한 까닭에 그의 육필 자료는 거의 없다. 칠순이 된 그의 장남 김정수 경제 대기자는 지난 수년간 그의 발자취를 더듬고 국가기록원 등 정부 자료집과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보관중인 사진 등을 뒤져 그의 일대기를 정리했다.
김학렬 부총리의 22년 관료 생활의 여정은 오로지 '5천년 가난'에 경제성장의 씨앗을 뿌리는 역정이었다. 평소 김 부총리는 주변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기록 하기를 꺼려한 까닭에 그의 육필 자료는 거의 없다. 칠순이 된 그의 장남 김정수 경제 대기자는 지난 수년간 그의 발자취를 더듬고 국가기록원 등 정부 자료집과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보관중인 사진 등을 뒤져 그의 일대기를 정리했다.

취임 다음 날 그는 워싱턴으로 날아갔다. IMF 총회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한국은 통화 팽창, 평가절하, 물가 앙등을 고질병처럼 달고 있었다.

IMF는 2대 통화가치의 안정, 즉 환율과 물가의 안정을 기조로 삼고 있었다.

따라서 IMF 총회에서 재무부 장관의 주 임무는 '한국은 나름대로 환율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물가 안정 기조를 유지 가능한 수준에서 통화 공급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이해시키는 것이었다. 그러나 쓰루의 안중에는 미국 원조 당국과 세계은행 등 국제금융기구를 상대로 한 2차 계획 세일즈밖에 없었다. 자기가 봄에 마련한 2차 계획에는 막대한 외자가 필요했고, 그 재원의 확보에는 미국과 세계은행 등의 지원이 성패의 열쇠를 쥐고 있었다.

신문은 무언가 튀는 쓰루의 활약상을 열심히 국내로 타전했다. 첫번째 소식은 쓰루가 미국 정부나 국제금융기구로부터 "2차 계획에 필요한 외자(차관, 원조) 확보를 도와주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는 것이었다. 가우드 USAID 처장은 쓰루에게 "미국 정부가 모든 가능한 수단을 다해서 한국의 2차 계획을 도울 것"이며 같은 맥락에서 "대한국제경제협의체(IECOK) 구성을 지원할 것"이라는 점을 한국 정부에 전하라고까지 해 그의 기를 북돋웠다. 당연히 그는 그 소식을 언론에 크게 전했다.

사실 쓰루가 워싱턴에서 벌인 일은 재무부가 아닌 기획원의 소관 업무였다. IECOK 구성도 그렇고, 2차 계획의 수립과 집행에 관련된 일들은 모두 기획원의 일이었다. 그런데도 그가 특히 미국과 국제금융기구 등의 '장기' 공공차관 제공을 강조한 것은 '단기' 민간 상업차관에 몰두하는 왕초가 공공차관을 상대적으로 소홀히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왕초더러 자기 하는 걸 보라는 일종의 시위이기도 했던 것이다.

쓰루가 무엇보다 공을 들여 기자들에게 전한 또 다른 소식은, (그의 작품으로 자타가 인식하고 있는) 2차 계획에 대해 미국 정부와 국제금융기구가 거의 극찬에 가까운 평가를 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재무장관 쓰루는 미국 정부기관 또는 IMF 등 그가 만난 워싱턴의 경제 협력 커뮤니티 사람들 모두가 한국의 눈부신 경제 발전에 감탄하고 있고, 특히 그들이 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실현 가능성이 높은 우수한 계획으로 평가하고 있다는 사실에 한껏 고무되어 있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2차 계획이 성공적으로 추진되어야 정권이 순조롭게 유지될 수 있다고 보고 있었다. 그래서 1966년 11월 초 존슨 미 대통령의 방한을 2차 경제개발 계획에 대한 미국의 공개적 지원 약속을 받아내는 자리로 삼고자 했다. 정상회담에서 한국의 베트남 참전 합의를 받아낸 미국은 2차 계획에 대해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임을 공식적으로 약속했다. 사진=대통령기록관.

1966년 10월에 나온 세계은행 굴하티 조사단의 보고서는 '(2차 계획이) 가치 있고 잘 입안되었으며, 실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결론을 내리고 있다. 이에 기세가 오른 쓰루의 '자화자찬'은 더욱 노골적이 되어갔다. 급기야는 신문 가십에까지 그의 거센 자랑이 등장하게 된다.

"제2차 5개년 계획이 한국 경제사상 최고의 걸작품이라고 기회 있을 때마다 PR해왔고, 재무부 장관의 영광을 차지하게 된 것도 천하일품인 5개년 계획 때문이었다고 김학렬 재무장관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자가선전을 하고 있다. …… '로스토' 박사도 이번에 마련된 5개년 계획은 빈틈없이 잘 짜인 것이라고 감탄하더라고 자랑을 한 김 장관……진정한 평가는 집행 결과를 봐야 할 텐데, 김 장관의 자가도취는 아무래도 시기상조라는 것이 중론."

2차 5개년 계획에 대한 국내의 평가는 여전히 부정과 긍정이 50 대 50이었다. 10월 27일 중앙대에서 개최된 2차 계획에 관한 심포지엄을 보면, 당시 한국의 식자들이 얼마나 우물 안 개구리였는지, 그래서 왜 쓰루 같은 경제관료가 식자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는지 등을 짐작할 수 있다.

(주요한 경제과학심의회의 위원) "세계 어느 나라치고 경제계획이 숫자 그대로 달성된 예는 없다. 계획의 모든 목표가 비록 과도하더라도 하나의 정책 목표로 보는 전진적 자세가 필요하다."

(이열모 조선일보 논설위원) "2차 5개년 계획에는 목표가 없다. 그렇게 밝지도 않은 미래를 위해서 국민들에게 너무나 가혹한 인내를 요구하고 있다. 계획 하나하나는 잘되었고 논리적이지만 전체적으로는 초라한 모습의 계획이다."

(황병준 서울대 교수) "화학 및 자동차 공업의 발전이 오히려 국민경제의 소비성을 높이는 결과가 될지도 모른다."

(유인호 중앙대 교수) "높은 조세부담률(1971년도 14.2%)과 많은 해외 저축(13억 8000만 달러)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발전은커녕 국민경제의 악화와 대외 의존도를 높이는 결과를 초래할지 모른다."

자신이 '아버지'라고 생각하는 2차 계획에 대해 이런 수박 겉 핥기식의, 근거가 희박한 지적과 탁상공론에 쓰루가 조용히 넘어갈 리 없었다. 그는 외국 경제 전문가들의 한국 경제 발전에 대한 찬사를 장황하게 늘어놓은 다음, 국내 전문가의 비판을 하나하나 반박했다.

그러고는 "2차 계획의 성공을 위해서는 첫째 현명한 정치적 지도, 둘째 교육, 셋째 사회정의의 확립, 넷째 국민의 협조가 절대적 조건이다"라고 역설했다. 한마디로 '당신네들보다 똑똑한 국제금융기구까지 칭송해 마지않을 정도로 잘 수립된 계획이니 허튼소리 하지 말고 따르거나 받아들이라'는 얘기였다.

박통은 2차 계획이 성공적으로 추진되어야 정권이 순조롭게 유지될 수 있다고 보고 있었다. 그래서 1966년 11월 초 존슨 미 대통령의 방한을 2차 계획에 대한 미국의 공개적 지원 약속을 받아내는 자리로 삼고자 했다. 정상회담에서 한국의 베트남 참전 합의를 받아낸 미국은 2차 계획에 대해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임을 공식적으로 약속했다.

이는 바로 박통의 '군사정권'에 대한 미국의 지지로 나라 안팎에 널리 이해되었다. 대통령까지 나선 2차 계획 세일즈와 1965~1966년의 고도성장 앞에서 한국의 경제 발전과 그 정책에 대한 국내외의 부정적 평가는 수그러들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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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렬 부총리 일대기의 필자 김정수■ 1950년 김 부총리의 장남으로 출생했다. 김 부총리가 교편을 잡고 있다가 건국 후 처음으로 실시한 고등고시 시험을 치른 직후였고 합격 발표를 기다리던 중이었다. 그 해에 6.25전쟁이 터져 아버지의 고향인 경남 고성으로 피난 갔다.

필자인 경제학자 김정수(왼쪽)와 그의 아버지인 김학렬부총리의 일대기를 정리한 '내 이버지의 꿈'(덴스토리刊) 책 표지
필자인 경제학자 김정수(왼쪽)와 그의 아버지인 김학렬 부총리의 일대기를 정리한 '내 이버지의 꿈'(덴스토리刊) 책 표지

어린 시절을 거기서 보내다가 아버지가 서울서 관료생활을 하게 되자 서울로 올라왔다. 혜화초등학교,경기중,경기고등학교를 졸업 후 서울대에 들어가 경제학을 전공했다. 이후 줄곧 경제 공부를 이어갔다. 미국 존스홉킨스(Johns Hopkins) 대학원, 독일 킬(Kiel) 세계경제연구소, 산업연구원(KIET),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한국경제연구원, 미국 브루킹스(Brookings) 연구소 등에서 경제학을 연구했다.

1991년부터 두 해 동안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의 자문관을 지냈고, 1994년부터 18년 동안 중앙일보에서 경제전문기자로 활동했다. 수년간 고려대 국제대학원에서 한국경제정책사를 강의하면서 오늘의 우리 경제가 누구에 의해, 어떻게 일궈졌는지 관심을 갖게 됐다.

중앙일보에서 경제 전문 대기자로 활동할 당시 최우석 전 중앙일보 주필(삼성경제연구소 부회장역임 ·2019년 작고)의 권유로 '아버지, 김학렬 부총리'의 발자취를 정리하는 작업을 했다고 한다. 그 결과물로 2020년 2월 '내 아버지의 꿈'(덴스토리刊)이란 책을 펴냈다. 이코노텔링이 연재하는 '내 아버지 김학렬의 꿈과 시련'은 저자와 출판사의 동의아래 그 책의 주요 장면을 발췌한 후 저자의 감수와 가필로 편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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