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10:25 (금)
[김성희의 역사갈피] 망국병 '지역감정'과 강성범
[김성희의 역사갈피] 망국병 '지역감정'과 강성범
  • 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 jaejae99@hanmail.net
  • 승인 2021.05.25 12: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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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맨의 '대구·화교' 발언과 제1야당 '영남당'의 '해묵은 논란' 파장
美인종차별 잔혹사 다룬 『누가 백인인가?』 증조부까지 따진 감별 기록
ⓒ이코노텔링그래픽팀
ⓒ이코노텔링그래픽팀

1904년 11월 한 조선인 소년이 하와이에 발을 디뎠다. 이름 차의석, 나이 열 살. 평양에서 미국 선교사를 보고 자신도 의사가 되어 가난한 동포들을 돕겠다는 푸른 꿈을 안고 350여 명의 한인 노동자들과 함께 태평양을 건너온 것이었다.

8년여 동안 사탕수수 농장 등에서 고생을 한 차의석은 한 목사의 후의로 파크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다.

꿈 같은 몇 년을 보내던 그에게 1918년 징병 통지서가 도착한다. 제1차 세계대전 탓이었다. 미국 시민이 아니었으므로 징병 대상은 아니었지만 차의석은 8개월 복무한 뒤 제대했다.

그러자 낭보가 들려왔다. 참전했던 일본계에게 시민권을 부여한다는 소식이었다. 자신도 같은 혜택을 보리라 기대한 그는 귀화청원서를 냈으나 1921년 법원은 "현행법상 귀화 자격이 없다"는 결정을 내렸다. 당시 귀화법은 오직 '백인'만이 미국 시민이 될 수 있다고 규정했는데 차의석은 "명백히 몽골계"로 "상식적으로나 사실적으로 자유 백인"이 아니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 후 차의석이 빌딩 청소 등 비시민권자의 비애를 뼈저리게 느꼈다거나 1932년 그의 아내가 추방 명령을 받았다든가 재향군인회 등의 도움으로 결국 1936년 시민권을 얻게 되었다는 이야기는 젖혀두자.

그의 이야기를 좇아가노라면 차의석이 "평화와 풍요의 안식처"라 여겼던 미국에서,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인종차별이 횡행했다는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그중 '혈통분수법'이라는 기막힌 인종감별법이 나온다. 흑인의 피가 절반 섞이면 '물라토mulato', 4분의 1이 섞이면 '콰드룬Quadroon', 8분의 1이 섞이면 '옥토룬Octoroon'이라 해서 백인과 구별했다. 이에 따르면 증조할아버지 대까지 혈통을 따져야 '백인'임을 증명할 수 있었다.

이건 1920년까지 약 70년간 존속했는데 1910년 테네시주 의회가 채택한 '피 한 방울의 법칙'은 더욱 엄격했다. 흑인의 피가 한 방울이라도 섞였으면 예외 없이 흑인으로 간주해 '이등시민' 처우를 받아야 한다는 원칙이었다. 이게 1967년 연방대법원이 위헌 결정을 내릴 때까지 반세기 동안 유효했다.

이건 미국의 인종감별 잔혹사를 파헤친 『누가 백인인가?』(진구섭 지음, 푸른역사)에 실린 내용이다. 다소 뜬금없어 보이는 이 책을 끄집어낸 것은 개그맨 강성범의 '대구·화교' 발언 여파, 제1야당의 '영남당' 여부 논란 때문이다. 이런 사태는 우리 안에 잠들어 있는 출신 지역에 따른 차별의 한 자락임이 분명해서다.

한데 '00사람'이란 지역 차별의 기준은 무엇인가. 그곳에서 태어난 사람인가, 그곳에 사는 사람인가, 거기서 자란 사람인가 혹은 부모 고향이 그곳인 사람인가 등등 따지고 보면 부질없다. 그러니 정치적 목적으로 가히 '망국병'에 가까운 지역감정을 부채질하기 전에 이제는 '00사람'이란 누구인가부터 차분히 물어야 하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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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커리커처. 
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커리커처. 

고려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정년퇴직한 후 북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엔 고려대학교 언론학부 초빙교수로 강단에 선 이후 2014년까지 7년 간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겸임교수로 미디어 글쓰기를 강의했다. 네이버, 프레시안, 국민은행 인문학사이트, 아시아경제신문, 중앙일보 온라인판 등에 서평, 칼럼을 연재했다. '맛있는 책 읽기' '취재수첩보다 생생한 신문기사 쓰기'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1884~1945'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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