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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희의 역사갈피] 명나라 멸망 부른 중과세
[김성희의 역사갈피] 명나라 멸망 부른 중과세
  • 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 jaejae99@hanmail.net
  • 승인 2021.05.03 1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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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 반란에 청나라군의 지방 유린에 국방강화한다며 730만 냥 더 거둬
세금압박에 시달린 백성들 반군에 합류하고 민심은 멀어지며 망국의 길
마지막 황제 숭정제는 자살 하루 전날 "모든세금 폐지한다" 뒤늦은 후회
청나라 태조 이자성, 20대 청년 때 일자리 뺏기자 반란군에 가담해 건국
ⓒ이코노텔링그래픽팀
ⓒ이코노텔링그래픽팀

중국 명나라는 청나라에 망한 게 아니다. 적어도 명의 마지막 황제 숭정제는 청나라 군사의 창검에 목숨을 잃지 않았다. 숭정제는 이자성이 이끄는 반란군이 북경을 포위하고 대포를 쏜 지 사흘 뒤 스스로 목을 매 자살했다. 1644년 음력 3월 19일 황위에 오른 지 17년, 그의 나이 33세 때 일이다.

숭정제는 자살하기 하루 전 모든 세금을 폐지한다고 선포했으니 자신의 죽음을 재촉한 것이 무거운 세금이었음을 알았던 모양이다. 여기서 되짚어 볼 일이 있다. 그가 죽기 20여 일 전 지금의 부총리 격인 장덕경이 세금을 지나치게 올린 이들의 책임을 물으라고 간언하다 관직을 잃은 일이 있었다. 망국의 시초는 세금이었던 것이다.

숭정 12년 봄, 황제는 전국적으로 730만 냥을 더 거둬 군사훈련과 군량미 마련에 쓰겠다고 결정했다. 이유는 있었다. 농민 반란이 잇따르고, 청나라 군대가 하북과 산동 지방을 유린하는 등 나라가 위태로웠기에 국방을 강화할 필요가 있기는 했다.

문제는 숭정제 즉위 후 이미 세 번에 걸친 증세로 백성의 부담이 거의 두 배로 늘어난 상태였다. 때문에 숭정제는 주변 신하들에게 증세 여부를 물었는데 병부상서 양사창을 비롯한 딸랑이들이 백성들의 조세 저항은 없을 것이라 단언했다. 세금은 토지에 부과되는데 토지는 모두 지역 토호들의 수중에 있으므로 백성들에게는 전혀 해롭지 않을 것이란 '합리적'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세금 부담이 누구에게 돌아갔겠는가. 게다가 5년 동안 국방을 강화한다 했지만 효과는 신통치 않았고 세금의 압력이 무거워질수록 반란군에 가담하는 백성은 늘어 반란의 규모와 강도는 커졌다. 여기에 반란군은 관아의 곡식을 풀어 굶주린 백성을 구휼하고 약탈을 엄금하여 민심을 얻었으니 명나라는 그야말로 바람 앞의 촛불 격이었다.

세금이 망국의 땔감을 제공했다면 여기 불을 지른 이는 이자성이란 청년 실업자였다. 이자성의 출신성분과 반란 동기를 두고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유력한 것은 지금의 우체국에 해당하는 역참(驛站)의 역졸이던 이자성이 요즘 말로 구조조정을 당해 실업자가 된 것이 결정적 계기였다. 숭정 2년 재정이 부족해진 중앙 정부가 감원을 감행하는 바람에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은 24살 젊은이가 가혹한 빚 독촉에 시달린 끝에 반란군에 투신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그리고 그의 지휘 아래 농민 반란군이 하늘 같은 황제가 자진하도록 몰아갔던 것이다.

이건 5천 년 중국의 숨겨진 부패의 역사를 파헤친 『잠재규칙』(우쓰 지음, 황매)에 실린 내용이다. 지은이는 이를 '숭정제 사망곡(死亡谷)의 규칙'이라 했는데 이른바 위정자라면 귀담아 들어야 할 교훈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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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커리커처.
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커리커처.

고려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정년퇴직한 후 북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엔 고려대학교 언론학부 초빙교수로 강단에 선 이후 2014년까지 7년 간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겸임교수로 미디어 글쓰기를 강의했다. 네이버, 프레시안, 국민은행 인문학사이트, 아시아경제신문, 중앙일보 온라인판 등에 서평, 칼럼을 연재했다. '맛있는 책 읽기' '취재수첩보다 생생한 신문기사 쓰기'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1884~1945'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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