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과는 '케미' 안맞는 한국은행출신인데다 이권에 밝은 사람이란 선입감
밤 시간까지 회의하는 체력의 원천이 낮잠이란 점 알아채고 야전 침대 무장
왕초 장관과 쓰루 차관은 사이가 좋지 않았다. 쓰루는 공식 석상에서 대놓고 왕초에 대해 험한 표현을 서슴지 않았다.
부하들 앞에서 기회만 있으면 '무식한 ○', '돼지 같은 ○'이라는 표현을 쏟아냈다.
듣다못해 어떤 사람이 "장관과 차관은 한집안의 남편과 아내 같은데, 아내가 남편 욕을 그렇게 할 수 있느냐"고 타이르자, 쓰루는 대뜸 "남편이 남편 같아야 욕을 안 할 것 아니냐"고 했단다. 장차관 관계가 왜 이렇게 비틀어졌을까? 쓰루는 처음부터 왕초를 달갑게 생각하지 않았다. 입지전적인 왕초의 성장과 출세 배경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왕초는 그가 그때까지 겪어온 좋지 않은 경험과 경원시하는 대상의 집합체였다. 그의 뚱뚱한 체구는 '잘 모르는구먼' 한마디로 자신을 보직해임한 '무식하고 뚱뚱한' 송요찬 내각수반을 연상시키고, 왕초가 한국은행 출신이라는 점은 자기를 재무부 이재국에서 물러나게 한 한국은행 출신 김정렴 이재국 국장을 상기시켰다.
맨손으로 한국일보라는 언론사를 일으켰다는 점은 외자구매처 등지에서 공무원과 결탁하여 이권을 따내는 '도둑놈 장사꾼'을 떠오르게 했다. 정통 엘리트 관료 제1호로서 경제기획원 일을 누구보다 잘 안다고 자부하고 있던 쓰루의 입장에서 왕초 장관의 등장은 기획원 일에 '무식'한, 전형적인 낙하산 인사였다.
왕초 입장에서는 한일 관계 정상화에 따른 청구권자금 협상 타결을 계기로 삼아 한일 간 경제 협력을 본궤도로 올리는 한편, 수출 주도 산업화 전략으로 한국 경제의 발전에 박차를 가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자기가 데리고 있는 차관의 심리 상태는 우선 관심 사안이 아니었다. 양자 간의 껄끄러운 관계는 거의 일방적으로 쓰루의 불만에서 야기된 것이었다.
왕초가 부총리로 들어와서 생긴 변화 중의 하나는 장차관 간의 기 싸움이었다. 그 예의 하나가 늦은 오후나 저녁 식사 직전에 소집되는 간부회의였다. 느지막하게 시작되는 회의는 좀처럼 끝나지 않았다. (몇십 년이 지난 지금도 조직의 장으로 새로 들어와 아랫사람들을 휘어잡기 위해 그런 유치한 수법을 활용하는 사람들이 있다.) 저녁을 거르며 하는 왕초의 회의는 몇 시간이고 이어지기 일쑤였다.
쓰루는 그런 회의가 질색이었다. 장광설을 싫어하는 그는 여러 부처와 기관이 걸린 2차 5개년 계획 같은 게 아니면 본인이 주재하는 회의는 짧게 하는 게 습관이었다. 게다가 그는 운동 등으로 체력 관리하는 것을 있는 자들의 부도덕한 사치와 낭비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쓰루는 왕초의 저녁 회의가 끝나면 진이 다 빠져 귀가하곤 했다.
신기한 것은 쓰루뿐 아니라 모든 간부들이 지쳐 늘어져도 그들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왕초는 끄떡없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왕초가 스태미나가 넘치는 인물이라 하더라도 며칠이고 그런 회의를 이어간다는 건 상식으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 뭔가 있다고 판단한 쓰루 차관은 자기 비서에게 왕초의 마르지 않는 스태미나의 샘물이 무엇인지 장관실 비서에게 넌지시 알아보도록 했다. (비서끼리는 통한다!) 그 결과는 역시나였다.
왕초는 늦은 오후에 냉면 등을 배달시켜 집무실에서 이른 저녁 식사를 하고 내실에 몰래 비치해둔 야전침대에서 한숨을 자고 난 후 저녁시간 직전에 간부회의를 소집한다는 것이었다.
'그랬구나, 이 구렁이가!' 하고 무릎을 친 쓰루는 그날로 야전침대 하나를 구해 집에서 이불까지 챙겨 차관 집무실 내실에 비치해두었다. 그다음 날부터 아무리 왕초의 저녁 회의가 길게 이어져도 쓰루만은 쌩쌩했다. 며칠을 두고 '이쯤이면 지치겠지' 하고 회의를 끌고 가도 쓰루가 지치는 기색이 없자, 왕초가 은밀히 쓰루의 난데없는 스태미나의 비밀을 염탐한 것은 불문가지다. 그 후 왕초는 웬만해서는 저녁 회의를 소집하지 않았다고 한다. 지금 제3자 입장에서 생각하면 유치하기 그지없는 일이지만, 당시는 그런 것 가지고 상하 간에 기 싸움하기 일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