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19:45 (금)
[독점 연재] 김학렬 일대기(67)조국 근대화 대장정
[독점 연재] 김학렬 일대기(67)조국 근대화 대장정
  • 김정수 전 중앙일보 경제 대기자
  • econopal@hotmail.com
  • 승인 2021.06.28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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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개발계획은 1차때와는 달리 민간 주도 방식으로 연평균 성장률 7% 추진
가난한 시절이어서 당장 소득과 복지가 아쉬웠지만 성장 후 과실 배분에 초점
첫 해 1967년과 마지막 해 1971년에는 총선과 대선 있어 朴정권의 명운 걸려
수출에 드라이브…언론반응 싸늘하고 세계은행의 부정적 시각에도 밀어붙여
김학렬 부총리의 22년 관료 생활의 여정은 오로지 '5천년 가난'에 경제성장의 씨앗을 뿌리는 역정이었다. 평소 김 부총리는 주변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기록 하기를 꺼려한 까닭에 그의 육필 자료는 거의 없다. 칠순이 된 그의 장남 김정수 경제 대기자는 지난 수년간 그의 발자취를 더듬고 국가기록원 등 정부 자료집과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보관중인 사진 등을 뒤져 그의 일대기를 정리했다.
김학렬 부총리의 22년 관료 생활의 여정은 오로지 '5천년 가난'에 경제성장의 씨앗을 뿌리는 역정이었다. 평소 김 부총리는 주변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기록 하기를 꺼려한 까닭에 그의 육필 자료는 거의 없다. 칠순이 된 그의 장남 김정수 경제 대기자는 지난 수년간 그의 발자취를 더듬고 국가기록원 등 정부 자료집과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보관중인 사진 등을 뒤져 그의 일대기를 정리했다.

2차 계획의 그 첫해(1967년)와 마지막 해(1971년)에는 대선과 총선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만큼 2차 계획은 박 정권의 안정적(장기적) 집권 여부가 걸린, 정치적으로 심대한 의미를 품고 있었다.

박통은 1965년 5월 방미 후 정부 여당 연석회의를 긴급 소집하여 1억 5000만 달러의 미국 차관, 5개년 계획에 대한 미국과 국제금융기구로부터의 지원 약속 등 방미 성과를 설명했다.

그 자리에서 그는 '향후 몇 해가 한국 경제가 재건되느냐 그대로 주저앉느냐를 결정할 중차대한 때인데, 2차 계획이 그 성공을 좌우할 것'이라며 계획에 대한 큰 기대를 내보였다. 민정 이양과 그 후 자유시장 경제화의 분위기를 타는 가운데, 2차 5개년 계획의 톤은 1차 계획에 비해 정부의 역할을 억제하고 시장과 민간기업의 역할을 강조하는 식으로 바뀌었다.

2차 계획은 내수보다는 수출이, 농업보다는 제조업이, 소비보다는 투자가 산업화를 주도하는 것으로 큰 맥락을 잡았다. 균형 개발이나 근로자 임금, 복지, 주택 등은 후순위로 미뤘다. '일단 투자를 하자, 일자리를 늘리자, 만들어서 해외에 팔자. 그러고 나서 훗날에 소득·복지 등 성장의 과실을 나누자'라는 생각이 2차 계획 기조의 큰 흐름이었던 것이다. 자료=국가기록원.

계획의 성격도 1차 계획이 '(정부에 의해) 지도되는 자본주의(guided capitalism)'였다면, 2차 계획은 '(정부가) 유도(하는) 계획(indicative plan)'으로 순화되었다.

2차 계획은 '산업 구조를 근대화하고 자립경제의 확립을 더욱 촉진'하는 것을 기본 목표로 삼았다.

1차 계획에 비해 '자립'보다는 '산업 근대화'에 방점을 찍음으로써 (수입으로부터 국내 산업을 보호 육성하는 방식의) 대내지향적 개발 전략에서 벗어나 수출 주도의 대외지향적 산업화 전략으로 일관했다.

2차 계획은 내수보다는 수출이, 농업보다는 제조업이, 소비보다는 투자가 산업화를 주도하는 것으로 큰 맥락을 잡았다. 균형 개발이나 근로자 임금, 복지, 주택 등은 후순위로 미뤘다. '일단 투자를 하자, 일자리를 늘리자, 만들어서 해외에 팔자. 그러고 나서 훗날에 소득·복지 등 성장의 과실을 나누자'라는 생각이 2차 계획 기조의 큰 흐름이었던 것이다.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가난한 시절이었던 만큼 당장의 소득과 복지가 아쉽고 절실했지만, 그것은 투자-생산-수출-성장의 선순환이 구축되고 나면 누릴 수 있는 것이니 그때까지는 절약하고 참고 기다리자는 것이었다.

2차 계획의 목표는 계획 기간(1967~1971년) 중 연평균 7% 성장률, GNP 50% 증가, 1인당 GNP 31% 증가였다. 성장률은 한국 경제가 도약 단계에 진입한 65년 즈음에는 이미 10%에 육박하는 수준이었다. 그런데도 성장률을 그토록 낮게 잡은 것은, 목표성장률을 7.1%로 잡았다가 중도에 하향 수정해야 했던 1차 계획과 같은 수모를 미연에 방지하고 '목표를 낮게 잡아두었다가 실행으로 그 목표를 초과 달성하겠다'는 정치적 고려가 작용했기 때문이었다. (결과적으로 2차 계획의 성장률 실적은 연평균 8.3%로 개도국 가운데 최상위를 차지하는 것이었다.)

1969년 12월 말, 경부고속도로 완공을 7개월 앞둔 시점에 대구~부산 고속도로 부분 개통식이 열렸다 고속도건설 현장에서 많은 근로자가 목숨을 잃었다. 이날 박 대통령은 수행원이 건넨 샴페인을 고속도로 여기저기 고루 뿌렸다. 조국근대화에 몸을 던진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한 것이다.사진=국가기록원.
1969년 12월 말, 경부고속도로 완공을 7개월 앞둔 시점에 대구~부산 고속도로 부분 개통식이 열렸다 고속도건설에는 난공사가 많아  많은 근로자가 목숨을 잃었다. 이날 박 대통령은 수행원이 건넨 샴페인을 고속도로 여기저기 고루 뿌렸다. 조국근대화에 몸을 던진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한 것이다.사진=국가기록원.

1차 5개년 계획을 수립할 때 연평균 성장률을 7.1%로 잡은 데에는 야담 같은 설명이 하나 있다. 당시 일본은 이케다 수상의 소득배증계획(10년 동안 경제 규모를 두 배로 늘린다는 경제발전계획)에 따라 연평균 7%의 성장을 목표로 하고 있었고, 당시 아시아 개도국의 총아 필리핀 역시 연 7% 성장률을 기본 전제로 하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채택한 상태였다. 그래서 그들보다는 한끝이라도 더 나아야 한다는 생각에 0.1%를 더했다는 얘기다. 목표를 정해놓고 앞뒤 안 보고 조직원을 몰아치는 소위 군사문화가 사회 곳곳에 뿌리내리고 있었던 당시 분위기를 생각하면, 충분히 일리가 있는 해석이다.

2차 계획은 투자율도 1차 계획의 22.6%에서 19%로 낮추는 한편, 국내 저축률은 9.2%에서 11.6%로 높이고, 해외 저축률은 9%에서 7.4%로 낮추었다. 개발 소요 재원의 자립도를 높이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었다. 또 2차 계획은 제조업 부문의 생산과 수출의 신장률을 크게 높여, 수출 주도의 성장 전략이라는 색깔을 분명히 했다.

그렇게 현실성을 감안해 작성했음에도 불구하고 1966년 2월 17일에 쓰루 차관이 2차 계획의 큰 가닥을 밝혔을 때, 국내외 전문가나 언론의 반응은 '달성 가능하다'(USOM의 견해)보다는 '너무 의욕적이며 실현 가능성이 희박하다'(세계은행), '내용이 엉성하다'(네이선 고문단)는 것이 주류였다. 7월 9일 관련 브리핑을 받은 경제과학심의회의의 반응도 일단 실현성에 대한 의구심이 지배적이었다.

쓰루는 스스로 '2차 계획의 아버지'라고 자처할 정도로 그 역할에 대해 자부심이 대단했다. 그래서 7월에 세계은행이 굴하티(Gulhati) 조사단의 보고서로 2차 계획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표명했을 때, 그는 바로 "세계은행의 권고를 수용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계획 관련 공공차관을 받아내야 될 국제금융기구에 대해 매우 이례적인, 그렇지만 그의 성격을 그대로 드러내는 반응이었다. (그 발표 후 바로 해임 내지 좌천을 당하지 않은 걸 보면, 그가 당시 한국 정부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이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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