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을 만든 사람들⑫ 존레논과 오노요코
뉴욕을 만든 사람들⑫ 존레논과 오노요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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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4.16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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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즈 해체후 뉴욕에 둥지 틀어 정치색 짙은 예술활동 '합작'… '천국도 지옥도 없는세상' 상상
1980년 존 레논이 사망하던 해에 오노 요코와 찍은 사진. ⓒ잭 미첼
1980년 존 레논이 사망하던 해에 오노 요코와 찍은 사진. ⓒ잭 미첼

40년 인생을 짧고 굵게 살다 간 전설적인 팝 아티스트 존 레논. 그의 인생 전체를 한마디로 설명하기가 쉽지는 않지만 세계의 음악 팬들은 그를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오히려 그의 노래 때문에 존 레논의 삶이 가려질 정도다. 그는 완벽한 뉴요커였고 뜨거운 사회운동가였다.

그는 전성기 시절 대부분을 뉴욕에서 보냈다. 그의 마지막 10년간 거주한 곳이 뉴욕이었고, 그의 주요 활동 무대 역시 뉴욕이었다. 뉴욕은 그의 제2의 고향이었고, 마지막 죽기 전까지 그의 가족과 함께 살았다. 그의 부인 오노 요코와 아들이 지금도 그곳에서 살고 있다. 1970년 4월 폴 매카트니가 비틀즈에서 떠나자 사실상 비틀즈는 해체된다. 폴에 대한 존의 의지와 믿음은 절대적이었기에 상실감이 컸다.

천재 청년 존은 음악으로 세상사람들을 놀라게 했지만, 그의 마음은 뭔가 계속 허전했다. 그러던 중 오노 요코를 만나면서부터 인생에 결정적인 변화를 가져온다. 전위 예술적인 면도 보여줬다. 민주당 노선과 궤를 같이하는 정치적 행동과 퍼포먼스 등을 했다. 감미로운 노래와는 사뭇 달랐다. 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평가와 비난 등이 쏟아졌다. 그의 기상천외한 돌출적 행동의 근본적인 원인을 굳이 찾자면 그의 가족력에서 찾을 수 있다.

어릴 적 그의 가정 환경은 정상적이지 못했다. 존은 1940년 9월 영국 리버풀에서 태어났다. 그 당시는 2차 세계대전 중이라 수시로 독일군의 공습이 잦았다. 아버지 알프레드는 선박의 승무원으로 1년 중 대부분 바다에서 생활해 집에 없었다. 어머니 줄리아도 외로움 때문이었던지 다른 남자를 만난다. 그는 이모인 메리 부부 손에 길러졌다. 멀쩡하게 있던 부모님과 같이 살지 못하자 어린이 ‘존 레논’에겐 충격이었다.

1946년 아버지가 귀국하여 그를 함께 키우고자 하지만, 어머니의 반대로 어머니의 손에서 자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다시 그는 이모인 메리 부부집에 둥지를 틀어야 했다. 어려서 눈칫밥 적잖게 먹었던 것이다. 고생해야 큰 인물이 된다고 하면 그는 역설적으로 ‘훌륭한(?) 집안’에서 태어난 것이다.

비틀즈 해체 이후 결국 1971년 9월 존은 활동 거점을 미국 뉴욕으로 옮긴다. 그가 뉴욕으로 거처를 옮긴 결정적인 이유는 오노 요코와의 만남이다. 1966년 영국 런던에서 였다. 오노 요코는 이미 일본에서 대학 중퇴 후 20대초반인 1953년 뉴욕으로 건너와 소위 전위예술을 시작한 예술가 겸 음악가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런던에 관광 겸 행사 참석차 들렀다가 그 곳서 둘은 만났다. 이후 급속도로 가까워졌고 3년후인 1969년 결혼하면서, 자연스럽게 뉴욕에서 생활을 시작한 것이다.

지금도 오노 요코와 아들 션이 살 고 있는 뉴욕의 다코타 아파트는 관광 명소가 되었다.(뉴욕=곽용석 기자)
지금도 오노 요코와 아들 션이 살 고 있는 뉴욕의 다코타 아파트는 관광 명소가 되었다.(뉴욕=곽용석 기자)

오노 요코는 1933년 2월 도쿄 은행가의 딸로 태어났다. 아버지를 따라 미국 뉴욕으로 갔다. 그녀의 아버지는 은행가여서 적지 않은 자산가였다. 유복한 집안 딸인 것이다. 뉴욕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문학에도 몰두했으나 결국 뉴욕의 아방가르드 운동에 심취하게 된다. 1957년 24세 때 가난한 음악가 이치야나기 도시와 결혼했으며, 뉴욕서 ‘플럭서스(Fluxus)’라는 전위예술 운동에 활발히 참여한다.

오노 요코는 1962년 법적으로 이혼 절차를 마치지 않은 상태에서 앤서니 콕스와 결혼식을 올렸고, 7년 뒤인 1969년 존 레논과 결혼한다. 존이 세 번째 남편인 셈이다. 그 당시 연예인 매체들은 ‘순진한 존이 7년 연상의 괴상한 동양여자에게 낚였다”고 했을 정도였다. 나아가 비틀스 해체의 주범으로 몰려 비난을 받기도 했다. 1980년 12월 8일 존 레논이 암살당하자, 결국 존을 잡아먹은 ‘마녀’라는 질타까지도 받는다.

어쨌든 존은 요코와의 인연을 통해 정치, 반전시위, 행위예술 등에 관심을 갖게 됐고 존은 요코에게 음악적인 영향을 끼쳐 그녀의 숨겨진 음악적 재능을 발휘하게 해주기도 한다. 요코와 존은 함께 그 당시 패전의 암울한 그림자를 비친 베트남전쟁의 반대운동에 나선다. 미국사회에서 반전운동을 강하게 펼친 ‘반전운동가’로 활동했으며, “여성은 세상의 검둥이(노예)다”라고 외친 페미니스트이었다.요코의 영향으로 존은 대중가요로는 최초로 여성해방운동을 다룬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그래서 세상 사람과 비틀즈 팬들을 혼돈 속으로 빠뜨렸다.

이들은 전통과 역사를 중시하는 동네인 맨해튼 그리니치빌리지에 살면서 그는 많은 반체제 활동가와 뮤지션과 소통하며 정치적 활동에 적극 참여한다. 존은 공식으로 특정 정당을 지지한 것은 한번도 없었지만, ‘사람들에게 힘을, 민중에게 권력을’이라고 프레이즈를 내세워 데모 행진까지 벌인다. 결국 FBI의 감시 대상으로 되기도 한다.

1971년 대선 선거 당시에는 민주당에 우호적인 행동을 보여 공화당 정치인들에게 반감을 샀다.당시 닉슨 공화당 후보가 당선되자, 그는 난처한 일을 당한다. 영주권이 없었던 존은 비자 연장에 애를 먹었다. 더구나 존의 대마 불법 소지로 인한 체포 경력을 이유로 미국 체류 비자 재연장의 수속을 여러 번 할 정도로 곤욕을 치렀다.

이후 그는 꾸준하게 TV 프로그램과 유명가수와의 합동 콘서트를 통해 자선 콘서트를 하기도 했으며, 음악을 통해, 형무소에서의 폭동, 인종문제나 성차별 문제, 북 아일랜드 분쟁, 미국의 영주권에 관련된 내용 등을 빗댄 가사를 읊기도 했다.

뉴욕에서의 그의 음악활동은 단순한 사회문제의 개입을 넘어 인종문제, 성차별, 국제적인 정치적인 문제 등에 깊숙이 들어가는 소위 일종의 ‘정치적 운동’을 한 셈이다. 60년대 젊은 시절에는 순수함으로 노래했다면, 70년대는 정치색과 사회성이 강한 노래를 불렀던 것이다. 존은 죽기 전까지 정치 및 사상적으로 보수성을 띠면서도 어느 면에서는 급진주의적인 행위까지도 선보였다.

1980년 12월 8일 죽기 직전 존과 오노 부부는 라디오 프로그램 인터뷰를 한다. 이 최후의 인터뷰에서 “죽는다면 요코보다 먼저 죽고 싶다”, “죽을 때까지는 이 일을 계속하고 싶다” 등의 말을 한다. 결국 말이 씨가 되어버렸다.

그날 밤 스튜디오 작업을 끝낸 존과 요코가 탄 리무진이 아파트의 앞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렸을 때, 집 앞에 기다리고 있던 마크 채프먼이 어두운 곳으로부터 “레논 씨”라고 불러 세웠다. 동시에 권총이 불을 뿜었다. 5발을 발사하여 4발이 존의 가슴, 등, 팔에 명중했다. 그는 “총에 맞았다!(I’m shot!)”라고 두 번 외친 후 아파트의 입구에서 몇 걸음 더 나간 뒤 쓰러졌다.

경찰 도착 당시 그는 의식이 있었지만 이미 피를 많이 흘려 위중한 상태였다. 바로 인근 병원으로 데려갔지만 과다출혈로 인한 쇼크로 그날 밤 숨을 거뒀다.사망 당시 병원의 스피커에서 흐르고 있던 곡은 비틀즈의 <All My Loving>이었다고 한다. 사건 후, 채프먼은 현장에서 도망치지 않고 경찰이 도착할 때까지 <호밀밭의 파수꾼>를 읽으면서 안절부절한채로 머물렀다고 한다. ‘왜 죽였느나’고 묻자 그는 “비틀즈가 신보다 위대하다는 점이 싫었다”고 했다.

그의 피살에 대해, 그의 반전 운동이나 그 영향력을 싫어한 ‘CIA 관여설’ 등의 음모론도 나왔으나 공식적으로는 단독범행으로 결론 났다. 지금도 오노 요코와 아들 션은 센트럴 파크가 잘 보이는 고궁 같은 ‘다코타’ 아파트에 살고 있다. 이 집은 관광객이 몰려드는 관광코스가 된지 오래다. 길 건너 공원 초입에 스트로베리 광장에는 아직도 존의 마지막 명곡 ‘Imagine’ 노래가 들린다. ‘천국도 없고, 지옥도 없고, 국가도 없고 사회도 없고, 그런 곳을 상상해봐요. 어렵지 않아요. 모든 사람들이 바로 오늘을 위해 살아가는 곳을 상상해봐요.’ <곽용석 이코노텔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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