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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쓰는 세계경제위기史(12)더 본드⑤1차 세계대전의 총성
영화로 쓰는 세계경제위기史(12)더 본드⑤1차 세계대전의 총성
  • 이코노텔링 이재광 대기자
  • jkrepo@naver.com
  • 승인 2021.04.12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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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칸의 세르비아 청년이 오스트리아ㆍ헝가리 제국의 황태자 부부 암살
보스니아 병합에 '슬라브 민족주의'의 항거 … 발칸반도는 열강 각축장

1914년 6월 28일은 역사에 깊이 각인된 날이다. 그날 오전 10시 50분경이었다. 보스니아・헤르체코비나의 수도 사라예보 시내 한 복판에서 울려 퍼진 두 발의 총성이 전 세계를 900만 명의 사망자와 2700만 명의 부상자를 낸 제1차 세계대전의 불구덩이로 끌고 들어갔다.

이 전쟁으로 600만 명의 장애인과 400만 명의 전쟁미망인, 그리고 800만 명의 전쟁고아가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전쟁의 참상을 더 깊이 알게 된다. 영국의 참전 시인 로버트 그레이브스(Robert Graves)는 "학교에서 우리 세대의 3 분의 1 이상이 죽었다"며 자서전에 『모든 것과의 이별(Good-Bye to All That)』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총성을 낸 주인공은 세르비아의 한 청년이었다. 군중 속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이 청년의 이름은 가브릴로 프린치프(Gavrilo Princip). 나이는 겨우 열아홉이었다. 10년 전 오스트리아ㆍ헝가리 제국이 병합한 보스니아 내 슬라브족의 독립을 주장하는 '세르비아 민족주의자'로, 그는 '검은 손'이라는 테러 조직의 조직원이기도 했다. 그날 그가 총을 쏜 상대는 오스트리아ㆍ헝가리 제국의 왕위 후계자 프란츠 페르디난트(Franz Ferdinand) 대공이었다. 보스니아의 새로운 점령자였던 오스트리아ㆍ헝가리 제국은 발칸의 여러 나라들을 복속시키려는 야욕을 보였으니 반도 내 슬라브 민족주의자들에게는 독립의 최대 장애물이자 증오의 대상일 수밖에 없었다.

■ 대학생의 총탄, 세계를 전쟁으로

그가 쏜 두 발의 총탄은, 우연인지 필연인지 알 수 없지만, 정확했다. 황태자와 황태자비에게 각각 한 발씩 명중되며 둘 모두를 동시에 절명시켰다. 추후 총알 한 발은 황태자의 가슴, 또 한 발은 황태자비의 인후(咽喉) 부분을 관통한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 황태자의 나이 50세, 황태자비의 나이 43세였다. 오스트리아ㆍ헝가리가 받은 충격은 컸다. 졸지에 왕위계승자, 그것도 부부를 동시에 잃은 것 아닌가.

게다가 총격이 있었던 날은 마침 부부의 결혼기념일이기도 했다. 오스트리아ㆍ헝가리에게 발칸의 슬라브 민족주의자들은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후 그들의 증오와 미움은 전대미문의 전쟁으로 세계를 이끌었다. 역사는 이를 제1차 세계대전으로 기록한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제1차 세계대전은 발칸의 지배자 터키의 약화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터키가 힘을 잃자 러시아와 오스트리아・헝가리, 이탈리아 등 유럽 각국들이 그 빈틈을 헤집고 들어왔던 것이다. 오스트리아ㆍ헝가리가 선두주자였다. 1908년 오스트리아ㆍ헝가리의 프란츠 요세프 1세가 일방적으로 "발칸의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를 합병한다"고 선언했던 것이다. 여기에는 터키와의 뒷거래가 있었다. 터키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를 내주는 대신 오스트리아ㆍ헝가리로부터 220만 리라를 받기로 했던 것이다.

사라예보 사건의 한 장면. 황태자 부부 피격 직후의 혼란스러운 상황을 담고 있다.
사라예보 사건의 한 장면. 황태자 부부 피격 직후의 혼란스러운 상황을 담고 있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에 대한 오스트리아ㆍ헝가리의 합병 선언에 대해 유럽 열강들이 분노한다. 도대체 누구 마음대로 발칸 지역을 자기 마음대로 가져간다는 말인가.

하지만 큰소리로 반대 의견을 내기가 어려웠다. 오스트리아ㆍ헝가리의 뒤에는 유럽의 맹주 독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독일과 오스트리아・헝가리는 이미 동맹을 맺은 형제나라였다. 오스트리아ㆍ헝가리의 합병 소식이 나자마자 독일이 바로 이를 인정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이로써 이를 저지하려는 세르비아의 민족주의자들이나 러시아 등 유럽 열강들의 반발을 막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는 일시적이었을 뿐이다. 이 사건은 결국 발칸과 그 주변 나라 전반의 위기를 불러왔다. 1911년 이탈리아는 트리폴리를 합병하며 터키와 개전(開戰)했고, 다음해인 1912년에는 혼란한 틈을 타 러시아를 등에 진 불가리아, 세르비아, 그리스, 몬테네그로 등 발칸의 국가들이 발칸 동맹을 결성해 터키에 선전(宣戰)했다.

이것이 이른바 '1차 발칸 전쟁'이다. 이 전쟁은 '유럽의 약자' 터키의 패배로 끝을 맺는다. 터키가 발칸에 대한 지배권을 모두 포기하면서 전쟁이 종결됐던 것이다. 터키와 발칸동맹국들은 일단 휴전(休戰)을 선언하며 전후 처리를 논하게 된다.

하지만 이 상태는 오래 가지 않았다. 이번에는 터키와의 강화 과정에서 발칸 동맹국들 간 이견(異見)으로 문제가 터졌다. 터키가 포기한 마케도니아를 차지하기 위해 불가리아가 그리스와 세르비아를 침공했던 것이다. 물론 이 전쟁 역시 단기간에 막을 내리며 하나의 해프닝으로 끝이 난다. 불가리아를 제외한 발칸 동맹국들이 불가리아를 상대로 선전포고했고 불가리아는 몇 달 버티지 못 한 채 꼬리를 내렸던 것이다. 이것이 '제2차 발칸전쟁'이다. 발칸 여러 나라들은 두 차례나 전쟁을 치르며 영토분쟁을 마무리 지으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전쟁은 아직 완전히 종결되지 않았다.

두 차례의 발칸 전쟁은 발칸 제국(諸國)에 깊은 상흔을 남겼다. 그중 최대 피해자는 세르비아였다. 세르비아는 그 가해자로 오스트리아・헝가리를 꼽으며 이를 간다. 1차 전쟁에서 알바니아를 얻었지만 오스트리아・헝가리의 지원으로 알바니아가 독립해 버렸고, 2차 전쟁에서는 아드리아 해의 출구를 획득했으나 이 역시 오스트리아・헝가리의 간섭으로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오스트리아・헝가리에 대한 세르비아의 증오심은 이해할 만했다. 그리고 그 분노는 마침내 거대한 총성과 함께 불을 뿜었다. 사라예보를 방문한 오스트리아의 황태자 페르디난트에게 그 분노의 총탄이 날아갔던 것이다.

'사라예보의 총성' 한 달 뒤인 7월 28일. 오스트리아는 마침내 세르비아에 전쟁을 선포한다. 이 문제가 단지 오스트리아와 세르비아 둘만의 관계였다면 문제가 쉽게 풀렸을 수 있다. 하지만 상황은 간단치 않았다. 두 차례 발칸 전쟁에서 보듯 발칸 지역에 대한 강대국 간 그리고 발칸 지역 내 국가들 간 이해관계가 심각했다. 앞서 말했듯 구 제국 터키의 세력 약화의 빈틈을 비집고 열강들이 헤집고 들어왔다. 여기에 터키의 압제에 신음하다 독립을 갈구하던 나라들의 영토분쟁도 해결이 쉽지 않았다. 터키가 떠난 '주인 없는 땅' 발칸을 두고 열강과 발칸 지역 나라들의 땅따먹기가 복잡하게 전개되고 있었던 것이다.

 세계전쟁으로 끝난 식민지 경쟁그러나 더 중요한 사실이 있다. 열강들의 식민지 전쟁이 발칸에서만 이뤄진 게 아니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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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광 이코노텔링 대기자❙한양대 미래인재교육원 겸임교수❙전 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 특임교수❙사회학(고려대)ㆍ행정학(경희대)박사❙경기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뉴욕주립대 초빙연구위원, 젊은영화비평집단 고문, 중앙일보 기자 역임❙단편소설 '나카마'로 제36회(2013년) 한국소설가협회 신인문학상 수상❙저서 『영화로 쓰는 세계경제사』, 『영화로 쓰는 20세기 세계경제사』, 『식민과 제국의 길』, 『과잉생산, 불황, 그리고 거버넌스』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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