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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연재] 김학렬 일대기(62)타부처 장관 패싱은 다반사
[독점 연재] 김학렬 일대기(62)타부처 장관 패싱은 다반사
  • 김정수 전 중앙일보 경제 대기자
  • econopal@hotmail.com
  • 승인 2021.05.11 1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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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택 부총리의 신임 업은 김학렬 차관 부처 예산 전권 휘둘러
어떤 장관은 만나 주지도 않고 아예 무시하는등 '안하무인 차관'
외자도입과 물가안정 위해 美國과의 경협관계 복원에 전력투구
김학렬 부총리의 22년 관료 생활의 여정은 오로지 '5천년 가난'에 경제성장의 씨앗을 뿌리는 역정이었다. 평소 김 부총리는 주변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기록 하기를 꺼려한 까닭에 그의 육필 자료는 거의 없다. 칠순이 된 그의 장남 김정수 경제 대기자는 지난 수년간 그의 발자취를 더듬고 국가기록원 등 정부 자료집과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보관중인 사진 등을 뒤져 그의 일대기를 정리했다.

1963년 10월 선거를 통한 민정 이양 후 그해 12월 김유택 씨가 초대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으로 컴백했다. 그의 세 번째 기획원 장관 취임이었다. (2년 반 사이에 동일 인물이 동일 부처 장관을 세 번 취임할 정도로 당시 행정 체제, 특히 경제부처 간 팀워크가 정착되지 않은 상태였다.)

김 부총리는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아랫사람을 통해 조직의 권위를 세우는 것을 덕으로 삼는 스타일이었다. 그런 장관의 신임과 전폭적인 위임 아래 기획원 차관 쓰루에게 부여된 역할은 더욱 늘어났다. 그는 적어도 기획원의 영향력이 통하는 한, 자기가 바라는 대로 마음껏 나라 살림을 꾸려나갔다.

여느 장관 못지않게 그의 위상이 높아졌다. 그는 자신에게 맡겨진 더 큰 임무와 역할을 즐겼다. 기획원은 착착 '쓰루의 기획원'으로 변모하고 있었다. 더불어, 그의 안하무인도 장관급에 이르고 있었다.

어떤 장관이 예산 문제로 그를 만나고자 했다. 그가 탐탁잖게 생각하는 건이었다. 그래서 그 장관을 만나주지도 않는 등 대놓고 무시로 일관했다. 그런 차에 두 사람이 우연찮게 마주쳤다. 장관이 그에게 "이럴 수가 있느냐"고 볼멘소리를 했다. 쓰루의 대꾸는 쿨(cool)했다.

"장관께는 기분이 좋지 않아서 예산을 줄 수 없습니다."

어이가 없어진 장관이 "아니, 나라 예산을 당신 기분대로 책정하는 거요?"라고 항의했다. 쓰루는 바로 "내가 기분대로 판단해도 장관께서 수십 번 생각한 것보다 정확하니까요"라고 답했다고 한다.

문제는 미국이 쿠데타로 들어선 군사정권으로부터 거리를 두어왔다는 데에 있었다. 1963년 말 선거를 통해 명분상으로는 민정 이양이 되었지만, 손상된 한미 관계는 쉽게 복원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정치·경제적 제약 속에서 성장과 안정을 이루는 것이 '민정' 기획원에 맡겨진 일이고, 그 실무 총책이 쓰루였다.
문제는 미국이 쿠데타로 들어선 군사정권으로부터 거리를 두어왔다는 데에 있었다. 1963년 말 선거를 통해 명분상으로는 민정 이양이 되었지만, 손상된 한미 관계는 쉽게 복원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정치·경제적 제약 속에서 성장과 안정을 이루는 것이 '민정' 기획원에 맡겨진 일이고, 그 실무 총책이 쓰루였다. 사진은 울산 공업단지 설계도면을 보면서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오른쪽)와 이야기를 나누는 박정희 대통령.

당시 경제 상황 때문에 기획원이 심혈을 기울이고 있던 것은, 첫째, 어떻게 하면 경제개발 추진에 필수적인 외자, 특히 미국 원조를 지속할 수 있느냐와 둘째, 고질적 물가 불안을 어떻게 잠재울 것인가였다. 두 가지 모두 미국의 도움 없이는 근원적으로 해결될 수 없는 과제였다.

문제는 미국이 쿠데타로 들어선 군사정권으로부터 거리를 두어왔다는 데에 있었다. 1963년 말 선거를 통해 명분상으로는 민정 이양이 되었지만, 손상된 한미 관계는 쉽게 복원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정치·경제적 제약 속에서 성장과 안정을 이루는 것이 '민정' 기획원에 맡겨진 일이고, 그 실무 총책이 쓰루였다.

김유택 부총리는 미국이 쿠데타 이후 줄기차게 요구해온 정책 전환을 실천에 옮기기 시작했다. 우선, 목표성장률을 대폭 하향 수정한 제1차 5개년 계획을 1964년 초에 발표하였다.

1월 31일 쓰루는 미국 당국에 그 취지와 핵심적 내용을 설명하면서, 1차 계획의 성공적 추진을 위해 외자 확보 등에 미국이 협조해줄 것을 요청했다. 연이어 2월 1일에는 '(한미가 합의한 대로) 성공적으로 집행'된 63년 재정안정계획 실적을 공개했다. 특히 연말 외환 보유고 1억 2900만 달러는 63년의 위기적 외환 사정을 감안하면 놀라운 실적이었다.

기획원은 2월 20일 9개 주요 품목에 대한 가격 통제 해제를 중심으로 하는 가격 자유화 조치를 발표했다. 그 정책 배경에 대해서는 '물가는 정상적인 시장가격 기능에 맡긴다는 제3공화국의 기본 방침에 입각한 것'으로 설명했다. 가격 자유화는 미국의 정책적 요구에 대한 전폭적인 수용을 의미했다.

당일에 개최된 한미고위경제회담(김유택 부총리, 쓰루 차관, USAID 기획처장보, 킬렌 USOM 처장 참석)에서, 미국 측은 재정안정계획의 성공적 집행에 만족감을 표하면서 "수정 5개년 계획의 5% 성장은 충분히 가능하다"며 그에 대한 지원을 약속했다. 2년 반 만에 미국이 드디어 종래의 한미 간 경제 협력관계를 복원시킬 의향을 공개적으로 드러낸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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