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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장환의 스포츠史說 ] 서울 올림픽의 추억 (3) 안재형-자오즈민의 키스
[손장환의 스포츠史說 ] 서울 올림픽의 추억 (3) 안재형-자오즈민의 키스
  • 이코노텔링 손장환 편집위원
  • inheri2012@gmail.com
  • 승인 2021.03.02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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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폐막 다음날 올림픽선수촌에서 공연취재하다가 커플의 비밀데이트 현장 포착
사진기 없어 발동동…요즘같은 휴대폰없어 증거불발…기사 썼지만 ' 오리발 '에 당해
탁구 여자복식 결승엔 李씨 성 가진 ‘이 기자’ 5명만 취재하자고 의견투합 금메달 '약효'
올림픽 여덟번 취재한 외신기자와 만나…그 인연인지 나도 4번의 올림픽현장 지켜봐
자오즈민과 안재형의 아들(골프선수 안병훈)이 어렸을 때의 사진. 사진(자오즈민(왼쪽),자오즈민과 안재형의 아들 안병훈(가운데),안재형(오른쪽))=CJ.
자오즈민과 안재형의 아들(골프선수 안병훈)이 어렸을 때의 사진. 사진(자오즈민(왼쪽),자오즈민과 안재형의 아들 안병훈(가운데),안재형(오른쪽))=CJ/이코노텔링그래픽팀.

서울올림픽은 1988년 10월2일에 폐막했다. 다음날인 3일 저녁 선수촌 광장에서는 선수들을 위로하는 공연이 열렸다. 현재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선수촌 아파트가 당시 선수촌으로 지어진 것이다.

모든 경기를 마친 선수들이 가벼운 마음으로 공연을 즐겼다. 한 시간 정도 취재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이었다.

중국 여자탁구선수 자오즈민이 옆을 지나갔다. '자오즈민이 가네'하며 걸음을 재촉하는데 곧이어 한국 남자탁구선수 안재형이 지나갔다. 순간, 기자의 촉이 발동했다.

안재형과 자오즈민이 사귄다는 소식은 올림픽 개막 전에 타 신문에서 보도했으나 두 선수 모두 강력하게 부인하는 바람에 흐지부지 됐었다. 안재형의 뒤를 따라갔다.

한참을 걸어 선수촌 뒤편 탄천 쪽으로 돌아가자 둘이 손을 잡고 걷기 시작했다. 쾌재를 불렀다. 그런데 카메라가 없었다. 지금처럼 카메라가 달린 핸드폰이 없던 시절이라 사진을 찍으려면 카메라가 있어야 했다. 이미 한 번 부인했던 터라 기사로 아무리 자세히 써봐야 또 부인하면 그만이었다.

사진 한 장이면 완벽한 특종인데 카메라를 구할 방법이 없었다. 하도 답답해서 인근 경비초소를 지키던 경찰에게 "혹시 카메라 없나"며 애원하기도 했다. 두 사람은 벤치에 앉아 키스를 나눴다. 어느 순간 인기척을 느낀 둘이 서둘러 헤어졌고, 취재는 거기까지였다.

허탈한 심정으로 신문사로 돌아와 자세하게 기사를 썼지만 역시 둘은 사실을 부인했고, 임팩트는 약할 수밖에 없었다.

두 사람은 다음 해인 1989년 12월에 결혼했다. '한-중 탁구 커플'의 아들인 안병훈은 유명 프로골퍼다. 나중에 밝혀졌지만 선수들 사이에서는 이미 두 사람이 사귄다는 사실이 퍼져있었다. 묘하게도 여자 복식 결승 상대가 한국의 양영자-현정화 조와 중국의 자오즈민-첸징 조였다. 양-현 조는 세트스코어 2-1로 이겨 처음으로 세계최강 중국을 꺾고 금메달을 목에 거는 쾌거를 이뤘다. 경기 후에 양영자가 현정화에게 "연애 중이던 자오즈민이 안재형을 훔쳐보느라 스텝이 꼬였다"고 말했다고 한다.

서울대 체육관에서 벌어진 이 결승 경기는 다른 에피소드도 남겼다. 한국의 취재진도 간절하게 금메달을 원했다. 누군가 "'이 기자'만 남고 다 나가자"고 소리쳤다. 결국 '이 기자' 다섯 명만 풀 기자로 취재하고, 다른 기자들은 취재를 포기하고 경기장 밖으로 나갔다. 이들의 간절함이 통했던 것 같다.

올림픽에서 세계 각국 기자들이 모이는 곳이 MPC(Main Press Center)다. 기자들은 이곳에서 기사를 작성하고, 서로 취재하고, 소식을 나누기도 한다. 거기에서 머리가 백발인 기자를 만났다. 어느 나라 기자인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올림픽만 여덟 번째 취재"라는 말을 들었다. 올림픽이 4년마다 열리니까 최소 30년 이상 취재를 했다는 계산이다. 당시 한국에는 전문기자나 대기자 제도가 없을 때여서 '올림픽만 여덟 번'이라는 말이 한동안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런데 나도 어찌하다 보니 서울 올림픽을 시작으로 1996년 애틀랜타, 2000년 시드니, 2008년 베이징 등 네 차례나 올림픽을 취재한 기자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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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텔링 손장환 편집위원
이코노텔링 손장환 편집위원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1986년 중앙일보 입사. 사회부-경제부 거쳐 93년 3월부터 체육부 기자 시작. 축구-야구-농구-배구 등 주요 종목 취재를 했으며 93년 미국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96년 애틀랜타 올림픽, 98년 프랑스 월드컵, 2000년 시드니 올림픽,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과 한일 월드컵,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등을 현장 취재했다. 중앙일보 체육부장 시절 '이길용 체육기자상'을 수상했으며Jtbc 초대 문화스포츠부장을 거쳐 2013년 중앙북스 상무로 퇴직했다. 현재 1인 출판사 'LiSa' 대표이며 저서로 부부에세이 '느림보 토끼와 함께 살기'와 소설 '파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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