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3-06 13:10 (토)
'辛라면의 전설' 경영무대서 떠난다
'辛라면의 전설' 경영무대서 떠난다
  • 이코노텔링 장재열기자
  • kpb11@hanmail.net
  • 승인 2021.02.05 23: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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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순 넘은 신춘호 농심 창업주, 56년만에 일선경영에서 퇴진
다음달 25일 열리는 농심 주총에서 사내이사서 물러나기로
형 신격호 전 롯데 회장 돕다가 1965년 라면공장 차려 독립
평생 라면·스낵과 씨름 … 작년 1조원어치 '라면수출' 기염
제품혁신에 올인해 제품이름도 직접 붙여 … 장남 경영승계
'辛라면의 전설' 신춘호 농심그룹 회장 (92)이 경영무대를 떠난다. 사진=농심/이코노텔링그래픽팀.
'辛라면의 전설' 신춘호 농심그룹 회장 (92)이 경영무대를 떠난다. 사진=농심/이코노텔링그래픽팀.

'辛라면의 전설' 신춘호 농심그룹 회장 (92)이 경영무대를 떠난다. 라면경영 56년만이다. 1965년 자본금 500만원으로 라면공장을 세워 세계적인 라면사업의 수직계열화를 이뤘다. 농심은 현재 35개 계열사를 두고 있다. 상장사는 농심홀딩스, 농심, 율촌화학(라면포장재 업체) 등 3곳.

농심은 4일 이사회를 열고 다음 달 25일 열리는 정기주주총회에서 신 회장을 사내이사로 재선임하지 않기로 했다.

이에 따라 신 회장의 장남인 신동원 부회장과 박준 부회장, 이영진 부사장을 사내이사로 선임하는 안건을 올려 자연스럽게 2세가 경영 승계가 이뤄진다.현재 신동원 부회장과 박준 부회장은 각자 대표이사를 맡으며 농심을 이끌고 있다.

신 회장은 9순을 넘긴 고령 경영인이지만 최근까지도 앞에서 회사를 이끌었다. 특히 지난해 농심이 매출 2조7천억원 규모에 1600억원(잠정집계)가량의 영업익을 올리는 사상 최대 경영실적을 냈다. 라면은 전형적인 내수 식품산업으로 분류되지만 신 회장은 처음부터 수출을 염두에 두고 라면 품질 개발에 역점을 뒀다. 그는 "라면 연구개발에는 어느 회사에도 뒷떨어져선 안된다"며 라면의 지속적인 업그레이드를 주문했다. 소고기라면, 너구리, 육개장사발면, 짜파게티, 신라면, 안성탕면 등 잇달아 히트제품을 내놔 소비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라면개발에 애착을 보인 신 회장은 라면제품의 이름을 스스로 붙였다. 농심은 지난해 1조원어치가 넘는 라면을 수출해 식품업계를 감짝 놀라게 했다.

사진=농심.
"식품도 명품만 팔리는 시대다. 까다로운 소비자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며 제품의 혁신을 늘 강조했다. 사진=농심.

1985년 국내 라면업계 선두에 오른 농심은 신라면을 앞세워 세계시장에서 'K푸드'의 대명사가 됐다. 알프스 융프라우 정상에 있는 카페에도 인기가 있다. 신 회장은 1980년대부터 "세계 어디를 가도 신라면을 보이게 하라"고 말하며 수출에 드라이브를 걸었다. 국내 식품회사 중 가장 먼저, 해외생산공장을 세웠다. 

고(故)신격호 롯데 창업주의 둘째 동생인 신 회장은 일본롯데 이사로 재직하다 형의 만류를 뿌리치고 라면 회사인 롯데공업을 차린 자수성가형 창업주다.

고등학교 재학중 장사를 했고 부산 국제시장과 자갈치 시장에서 묵은 쌀을 팔다가 실패하는 쓴맛도 봤다. 그래서 그런지 연구원들이 생산원가를 낮추기 위해 5년 묵은 통일미를 첨가재로 사용하려다가 신 회장으로부터 불호령을 들은 일화도 있다.  
2010년에 직원들에게 "식품도 명품만 팔리는 시대다. 까다로운 소비자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며 제품의 혁신을 늘 강조했다. 신춘호 회장은 라면산업을 품격있게 키워 '명품업종'으로 이끈 시대의 기린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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