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3-06 14:40 (토)
[손장환의 스포츠史說 ] 서울 올림픽의 추억 (1)도핑테스트와 소변
[손장환의 스포츠史說 ] 서울 올림픽의 추억 (1)도핑테스트와 소변
  • 이코노텔링 손장환 편집위원
  • inheri2012@gmail.com
  • 승인 2021.02.05 15: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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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메달 딴 김영남 소변 안나와 도핑데스트 늦어져 자정 넘겨서 기자회견
유도장서 연일 승전보 … 현장 취재기자들도 녹초 … "질려면 빨리" 한숨
미국ㆍ유럽의 시청자 위해 주요 경기는 저녁에 시작해 기자들 새벽 귀가
사진=서울 올림픽 홈페이지,대한레슬링협회/이코노텔링그래픽팀.
사진=서울 올림픽 홈페이지,대한레슬링협회/이코노텔링그래픽팀.

우려했던 대로 도쿄 올림픽 개막에 대해 계속 잡음이 나오고 있다. 코로나로 인해 1년 연기됐지만 그마저도 확실하지 않다.

기억의 흐름은 자연스레 1988년 서울 올림픽으로 이어진다. 내가 처음 현장에서 취재한 올림픽이다. 서울 올림픽에 대해서는 할 이야기가 너무나 많다. 벌써 33년이 지났으니 대한민국 국민 절반 정도가 체험하지 못했거나 기억하지 못하는 역사다.

당시 나는 사회부 기자였다. 하지만 한국에서 처음 개최한 올림픽인 만큼 내근 기자 몇 명 빼고는 거의 모든 기자가 올림픽 취재에 동원됐다.

나는 오전에 사회부 기사를 송고한 뒤 오후에는 경기장으로 갔다. 종목이 정해진 게 아니라 그 날 기사가 많이 나올만한 곳으로 투입됐다. 한국의 첫 금메달은 레슬링에서 나왔다. 경기는 체육부 선배의 담당이었고, 나는 주변 취재와 기자회견을 커버했다.

성남의 상무 체육관에서 벌어진 그레코로만형 74kg급 경기에서 김영남 선수가 금메달을 땄다. 나는 메달리스트 기자회견장에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30분이 지나고, 한 시간이 지나도 선수들이 나타나지 않았다. 내외신 기자들이 모두 아우성이었다. 지체되는 이유도 알려주지 않았다. 자정을 넘기고 난 시각에 선수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서울 올림픽은 미국과 유럽의 시청자들을 위해 주요 경기가 모두 저녁에 시작했다.

화가 잔뜩 나있는 기자들을 향해 김영남 선수가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오줌이 나오지 않았어요."

기가 막혔다. 메달리스트는 의무적으로 도핑테스트를 해야 한다. 그런데 경기 중에 너무나 많은 땀을 흘린 탓에 물과 주스를 아무리 마셔도 오줌이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거의 두 시간 만에 성공(?)했다고 했다.

다음에는 한국의 메달밭인 유도 경기가 벌어지는 장충체육관으로 갔다. 첫날, 남자 60kg급의 김재엽이 예상대로 금메달을 땄다. 기자회견이 끝나고 기사 작성을 마치니 새벽 2시였다.

다음날, 크게 기대하지 않았던 65kg급의 이경근도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연이은 금메달 소식에 기뻤지만 몸은 피곤했다. 그 다음날도 유도장으로 가라고 했다. 71kg급 박정희. 전망 자체가 메달권 밖이었다. 매일 아침부터 새벽까지 녹초가 된 기자들 사이에서 "이왕 지려면 아예 1회전에서 져라"는 말이 나왔다. 바람대로(?) 박정희는 2회전에서 졌다. 그런데 유도는 패자부활전이 있다. 박정희를 이긴 일본의 고가 선수가 결승에 오르는 바람에 박정희는 패자부활전에 나섰다. 하지만 패자부활전에서도 첫 경기에서 졌다.

한국 기자들이 모두 "만세"를 외치며 "오늘은 빨리 집에 가서 쉬자"고 했다. 그 순간 등 뒤에서 날카로운 음성이 들렸다.

"이제 보니 기자님들 모두 비애국자들이예요."

뒤를 돌아보니 자원봉사자들이 우리를 째려보고 있었다. 자기들은 열심히 응원하고 있는데 기자들은 이구동성으로 빨리 지라고 했으니 그럴만했다. 창피해서 자원봉사자들의 눈을 피했던 기억이 있다.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이었던 그들도 이제는 50대 초중반의 중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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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텔링 손장환 편집위원
이코노텔링 손장환 편집위원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1986년 중앙일보 입사. 사회부-경제부 거쳐 93년 3월부터 체육부 기자 시작. 축구-야구-농구-배구 등 주요 종목 취재를 했으며 93년 미국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96년 애틀랜타 올림픽, 98년 프랑스 월드컵, 2000년 시드니 올림픽,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과 한일 월드컵,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등을 현장 취재했다. 중앙일보 체육부장 시절 '이길용 체육기자상'을 수상했으며Jtbc 초대 문화스포츠부장을 거쳐 2013년 중앙북스 상무로 퇴직했다. 현재 1인 출판사 'LiSa' 대표이며 저서로 부부에세이 '느림보 토끼와 함께 살기'와 소설 '파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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