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여전 정몽진 KCC회장 등 3형제의 그룹 분할경영 교통정리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막냇동생인 정상영 KCC 명예회장이 30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4세. 이로써 '영(永)'자 항렬의 현대가 창업 1세대 경영 시대는 막을 내렸다.
현대가 1세대 6남 1녀 가운데 '왕회장'으로 불린 장남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2001년 타계했다. 이어 4남인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2005년), 3남 정순영 성우그룹 명예회장(2005년), 2남 정인영 한라건설 명예회장(2006년), 장녀 정희영 여사(2015년)도 세상을 떠났다. 동아일보 기자였던 5남 정신영씨는 30대 초반인 1962년 독일에서 교통사고로 세상을 등졌다.
1936년 강원도 통천에서 태어난 정상영 명예회장은 창업주로선 드물게 60여년 동안 경영 일선에 몸담았다. 22살 때인 1958년 스레이트를 제조하는 금강스레트공업이란 이름으로 오늘날의 KCC를 창업했다. 맏형 정주영 명예회장이 해외 유학을 권했지만, 전쟁 폐허 속에서 건축자재 사업에 뛰어들었다. 자동차공업사를 차린 형과 다른 노선을 택해 자립했다.
1974년 고려화학을 세워 유기화학 분야인 도료 사업에 진출했다. 1989년에는 건설사업 부문을 분리해 금강종합건설(현 KCC 건설)을 설립했다. 2000년 금강과 고려화학을 합병해 금강고려화학으로 출범시킨 뒤 2005년 KCC로 이름을 바꿔 건자재에서 실리콘, 첨단소재에 이르는 글로벌 첨단소재 화학기업으로 육성했다.
정상영 회장은 기본에 충실하고 국가 발전에 이바지한다는 '산업보국'이 기업의 본질임을 평소 강조했다. 다른 대기업 경영자와 달리 사업 다각화보다 '잘 할 수 있는 사업에 집중한다'는 경영철학을 유지했다. 이는 한국경제의 성장에 밑거름이 되는 핵심 기술의 국산화로 열매를 맺었다.
1987년 국내 최초로 D램 메모리 반도체를 메인보드에 붙이는데 쓰이는 접착제를 개발했다. 1996년에는 물에 희석해 쓸 수 있는 수용성 자동차 도료의 독자 기술을 확보했다. 2003년에는 전량 수입에 의존하던 실리콘 원료 중 하나인 모노머를 국내 최초로 독자 생산했다. 이로써 한국은 독일, 프랑스, 미국, 일본, 러시아, 중국에 이어 실리콘 제조 기술을 보유한 7번째 국가가 되었다.
고인은 지난해 말까지 매일 회사에 출근해 업무를 볼 정도로 창립 이후 60년간 업(業)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소탈하고 검소한 성격으로 평소 임직원에게 주인의식과 정도(正道)경영을 강조하며 모범을 보였다. 인재 육성을 위해 동국대, 울산대 등에 사재 수백억원을 쾌척하기도 했다.
고인은 2003년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이 사망한 뒤 조카며느리인 현정은 회장과 현대그룹 경영권을 놓고 분쟁을 벌이기도 했다. 고인은 "현대그룹 경영권은 정씨 일가의 것"이라며 당시 그룹 지주회사인 현대엘리베이터 지분을 매집했으나 결국 패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조은주 여사와 정몽진 KCC회장, 정몽익 KCC글라스 회장, 정몽열 KCC건설 회장 등 3남이 있다. 고인은 1년전에 이들 3형제에 대한 분재(分財)절차를 마무리해 KCC는 그룹 분할경영 체제를 갖췄다. KCC 측은 "장례는 고인의 뜻에 따라 조용하고 간소하게 치를 예정"이라며 "빈소와 발인 일정을 외부에 알리지 않기로 했음을 양해 바란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