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6 15:30 (금)
[독점 연재] 김학렬 일대기(54)4.19혁명과 5.16쿠데타
[독점 연재] 김학렬 일대기(54)4.19혁명과 5.16쿠데타
  • 김정수 전 중앙일보 경제 대기자
  • econopal@hotmail.com
  • 승인 2021.03.16 1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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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당정권 몰락후 政黨 우후죽순…'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 '급진 통일구호 난무
병이 나 사세국장 단명한게 전화위복…군사정권 숙청 피하고 '기획원 예산국장'으로
김학렬 부총리의 22년 관료 생활의 여정은 오로지 '5천년 가난'에 경제성장의 씨앗을 뿌리는 역정이었다. 평소 김 부총리는 주변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기록 하기를 꺼려한 까닭에 그의 육필 자료는 거의 없다. 칠순이 된 그의 장남 김정수 경제 대기자는 지난 수년간 그의 발자취를 더듬고 국가기록원 등 정부 자료집과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보관중인 사진 등을 뒤져 그의 일대기를 정리했다.
김학렬 부총리의 22년 관료 생활의 여정은 오로지 '5천년 가난'에 경제성장의 씨앗을 뿌리는 역정이었다. 평소 김 부총리는 주변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기록 하기를 꺼려한 까닭에 그의 육필 자료는 거의 없다. 칠순이 된 그의 장남 김정수 경제 대기자는 지난 수년간 그의 발자취를 더듬고 국가기록원 등 정부 자료집과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보관중인 사진 등을 뒤져 그의 일대기를 정리했다.

'우리 손으로 부패 정권을 몰아냈다'는 시민혁명의 도취감은 너무 자주, 너무 많은 이들에 의해 남용되었다.

좌파 우파 할 것 없이 입이 있는 모든 (정치) 단체와 이익집단이 연일 거리로 뛰쳐나왔다. 전차가 다니는 서울 최대의 거리 종로대로는 플래카드를 든 데모대와 '자유'를 만끽하는 시민들로 차가 다닐 수 없을 정도였다. 해방 직후의 사회 혼란을 방불케 했다.

사회의 방종을 벌주기나 하듯 그해는 추수까지 좋지 않았다. -2%로 위축된 농업 생산은 GDP 성장률을 1.2%로 주저앉혔다. 1953년 휴전 이후 어렵사리 한발 한발 안정과 성장으로 발걸음을 떼어오던 경제는 다시 물가 앙등과 침체의 늪으로 빠져들어 갔다.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의 혼란과 무질서는 안정과 질서를 안겨줄 절대 권력을 불러오고 있었다. 일반 시민을 가장 불안에 떨게 한 것은 급진정치 단체의 등장이었다. 1960년 9월에 16개 진보 정당 및 단체가 결성한 민족자주통일중앙협의회(민자통)는 1961년 5월 13일 통일촉진궐기대회를 열고,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라는 구호를 외쳤다. 그 때문에 5·16 쿠데타로 박정희라는 일개 육군소장이 이끄는 군사정권이 들어섰을 때, 놀란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안도의 숨을 쉰 사람마저 적지 않았다.

1960년 9월에 16개 진보 정당 및 단체가 결성한 민족자주통일중앙협의회(민자통)는 1961년 5월 13일 통일촉진궐기대회를 열고,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라는 구호를 외쳤다. 그 때문에 5·16 쿠데타로 박정희(가운데)라는 일개 육군소장이 이끄는 군사정권이 들어섰을 때, 놀란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안도의 숨을 쉰 사람마저 적지 않았다.
1960년 9월에 16개 진보 정당 및 단체가 결성한 민족자주통일중앙협의회(민자통)는 1961년 5월 13일 통일촉진궐기대회를 열고,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라는 구호를 외쳤다. 그 때문에 5·16 쿠데타로 박정희(가운데)라는 일개 육군소장이 이끄는 군사정권이 들어섰을 때, 놀란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안도의 숨을 쉰 사람마저 적지 않았다.

군사정권이 공표한 혁명 공약은 첫째, 반공을 제1의 국시로 하여 반공 체제를 강화하고 둘째, 미국을 위시한 자유주의 우방과 유대를 공고히 하며 셋째, 나라의 부패와 구악을 일소하고 퇴폐한 국민 도의와 민족정기를 바로잡으며 넷째, 기아선상의 민생고를 해결하기 위해 자주적 국가경제 재건에 전력을 집중한다 등이었다.

군사정권은 반공 체제를 강화한다는 첫째 공약에 따라 급진 좌익 세력을 검거했다. 부패와 구악을 일소한다는 셋째 공약에 따라 4200명의 폭력배를 포함한 2만 7000명의 범법자를 잡아들이고, 4만 명의 부패 공무원(전체 공무원의 18%)을 내보냈다. 당시 한국 사회가 얼마나 느슨했나를 짐작할 수 있는 사실 중 하나는 상류층의 5%가 첩을 거느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 수치는 급하게 추정된 것일 뿐, 축첩은 이보다 훨씬 더 만연해 있었다고 보는 게 옳다.

지금 세대도 들으면 아는 대부분의 정치·경제 거물들이 첩을 두고 있었다. 재산이든 권세든 '가진 자'의 일반적인 일탈이었던 것이다. 정경유착의 부패를 저지른 기업가 15명을 구속하고, 재벌들이 소유한 일반은행 주식을 몰수했다. 전후 복구와 더불어 수년에 걸쳐 진행되었던 은행 민영화는 하루아침에 되돌려졌다. 정치와 더불어 경제도 급정거했다. 네 번째 공약, '민생고 해결과 경제 재건의 실현'은 갈수록 멀어지고 있었다. (그나마 수년 만의 풍년으로 경제성장률은 6%로 본전치기는 했으나, 투자 등 민간 경제활동은 군사정권의 위압적 분위기 속에 극심한 눈치 보기로 위축될 대로 위축되었다.)

만일 쓰루가 몇 달 더 사세국장 자리를 지켰다면, 그의 인생은 급전직하로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그가 아무리 세무 개혁과 부정부패 일소에 기여했다 하더라도, 5·16 쿠데타로 들어선 군사정권의 숙청의 칼을 피해갈 수 없었을 것이다. 사세국장 때의 발병과 수술 그리고 요양은 그의 관운이자 전화위복의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5·16 쿠데타 후 며칠 되지 않아 군사정권하에서 재무부 차관이 된 이한빈 씨로부터 연락이 왔다. 이 차관은 위궤양 수술 후 집에서 요양 중인 쓰루에게 "새 정권이 경제기획원이라는 부처를 만들고 있는데, 거기에 재무부 예산국을 이끌고 가지 않겠느냐?"라고 했다.

당시는 군사정권이 얼마나 갈지 불투명한 때였다. 미국이 쿠데타로 들어선 군사정권을 대놓고 멀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은 미국대로 개도국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고 소련과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었는데, 그때 여타 개도국에 '봐라, 미국 편이 되면 이렇게 경제발전도 정치 민주화도 잘될 수 있다.'고 내세워온 게 한국이었다.

그런 미국 지원의 대표적 성공 사례를, 그것도 선거를 통해 들어선 '민주정권'을 쿠데타로 무너뜨렸으니 미국의 도움은커녕 해코지를 당하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미국 정부는 원조 중단, 조속한 민정 이양 요구 등으로 군사정권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고 있었다.

이 차관이 그토록 앞날이 불투명한 부처에 자기가 믿고 인정하며 아끼는 쓰루를 예산국과 함께 보내려고 하는 데는 그 나름의 절실한 이유가 있었다. 이 차관은 평소 '예산은 경제개발 부처와 통합해야 경제개발이 가능하다'는 게 소신이었다. 재무부도, 부흥부도, 또 새로 들어선 군사정권도 모두 그 점에 동의하고 있었다.

새로 만드는 부처의 경제개발 업무는 종래의 부흥부를 동원하면 되었다. 예산 업무도 재무부의 예산 파트를 옮겨 오면 되는데, 문제는 누구를 예산국장으로 보내느냐였다. 웬만해서는 군부에 휘둘리기 십상일 게 뻔했기 때문이다.

최각규 전 부총리가 전하는, 예산국장 인사를 둘러싼 내부 토론은 이랬다.

"예산국을 기획원으로 시집보낼 수 있으려면 특별한 사람이 필요합니다. 새로운 조직에 가서 예산국을 이끌려면 예산 문제도 전문가여야 하지만, 자질과 배짱, 카리스마, 역량을 갖춘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지금 사세국장인 김학렬 국장이 어떻습니까? 기 싸움에서는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을 사람이잖아요."

"그건 정말 그렇죠. 김학렬 국장이라면 어디를 보내도 주도권을 놓치지 않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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