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창모, 송명기, 김영규등 20대 투수들 양의지 만나 만개해
두산 타자 장단점 꿰뚫어 '간판 김재환' 6경기 1안타로 묶어
2020년 11월24일, NC 소프트의 김택진 대표는 NC 다이노스가 창단 9년 만에 프로야구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하는 순간을 목도하면서 '내가 정말 돈을 보람 있게 잘 썼다'며 스스로를 칭찬했을 것이다.
김 대표는 2019년 FA(자유계약선수)로 풀린 두산 포수 양의지를 4년 125억 원에 영입한 것을 자신의 투자 중 손꼽는 성공사례로 기억할 것이다.
양의지가 국내 최고의 포수라는 사실에 의문을 갖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선수 한 명이 팀 전체를 바꿀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양의지는 '그 어려운 것'을 해냈다.
NC는 2018년 꼴찌를 했다. 감독도 바꾸고, 양의지도 영입하면서 팀 재건에 나섰다. 2018년 당시는 FA에 대한 평가가 박할 때였다. 워낙 '먹튀'를 한 선수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양의지가 뛰어난 선수라고 해도 4년 125억 원은 '과하다'는 말이 많았다.
팀을 옮긴 첫 해인 2019년 NC는 5위를 기록하며 가을야구 시동을 걸었다. 양의지는 타격왕에 오르면서 예열을 했다. 그리고 2년째에 팀을 정규시즌 1위와 한국시리즈 우승에 올려놓으며 '돈 값' 이상을 한 선수임을 증명했다. '돈을 쓰려면 이렇게 써야 한다'는 모범 사례가 됐다.
양의지 혼자 NC를 바꿔놓았다는 말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물론 과장이다. 하지만 충분히 이유 있는 과장이다.
양의지는 두산 시절 '곰의 탈을 쓴 여우'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영리하게 팀을 이끌었다. NC에 와서는 여기에 더해 특히 젊은 투수들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구창모, 송명기, 김영규 등 20대 초반 젊은 투수들은 양의지라는 포수를 만나 만개를 해버렸다. '포수를 믿고 던지는' 영건들의 파워는 상대 타자들을 압도했다. 루친스키와 라이트 등 외국인 투수들도 빨리 적응했다.
한국시리즈에서 두산 타자들은 맥없이 물러났다. 친정 팀인 두산 타자들의 장단점을 속속들이 꿰고 있는 양의지에 속수무책이었다. 두산은 25이닝 무득점이라는 불명예 신기록을 썼고, 특히 4번 타자 김재환은 23타수 1안타(0.043)로 꽁꽁 묶였다.
양의지는 기자단 투표를 통해 한국시리즈 MVP가 됐다. 물론 타율 0.318에 1홈런, 3타점이라는 기록이 좋았지만 예년 같았으면 2승1세이브를 올린 루친스키가 당연히 MVP에 뽑혔을 것이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기록, 특히 포수로서 전체를 리드한 점에 기자들도 많은 점수를 준 것이다.
양의지는 어렸을 때부터 두각을 드러낸 천재가 아니다. 대표적인 대기만성이다. 광주 진흥고 출신인 양의지는 2006년 드래프트에서 전체 59번으로 두산에 지명됐다. 포수 왕국인 두산에서 평범한 고졸 신인의 자리는 없었고, 2008년 일찌감치 군대를 간다. 경찰청 야구단에서 주전 포수로 활약하더니 두산에 복귀한 다음부터 서서히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양의지에 대한 투자 성공사례가 앞으로 다른 투자자들의 올바른 선택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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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1986년 중앙일보 입사. 사회부-경제부 거쳐 93년 3월부터 체육부 기자 시작. 축구-야구-농구-배구 등 주요 종목 취재를 했으며 93년 미국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96년 애틀랜타 올림픽, 98년 프랑스 월드컵, 2000년 시드니 올림픽,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과 한일 월드컵,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등을 현장 취재했다. 중앙일보 체육부장 시절 '이길용 체육기자상'을 수상했으며Jtbc 초대 문화스포츠부장을 거쳐 2013년 중앙북스 상무로 퇴직했다. 현재 1인 출판사 'LiSa' 대표이며 저서로 부부에세이 '느림보 토끼와 함께 살기'와 소설 '파랑'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