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에게 돈 떼이자 아내 핀잔 피하려 대출 받을때 창구서 모멸감
1955년 귀국한 쓰루는 일단 재무차관 비서실에서 촉탁으로 일했다. 그다지 좋은 경험은 아니었던 것 같다.
자식들에게 "비서는 높은 위치에서 넓은 사안을 다루는 경험 쌓는 정도까지만 해야 한다. 비서를 오래하다 보면 마치 자신이 윗사람이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질 수 있다"며 경계하게 했다. 이즈음 그가 집안 재정권을 김 여사에게 완전히 빼앗기게 된 사건이 하나 있었다. 어느 날 그가 김 여사에게 그녀도 면식이 있는 어느 친구에게 상당한 금액의 돈을 꿔줘야겠다고 했다.
그런데 그녀는 그 친구란 사람이 뭔가 사기꾼 같다는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그 사람 좀 이상하지 않아? 왜 돈을 꿔줘야 해?"라며 의심을 표했고, 쓰루는 "당신은 매사를 의심만 하냐? 믿을 만한 사람이야!"라는 말로 그녀의 입을 닫아버렸다.
그의 고집대로 돈을 빌려주긴 했는데, 돈을 돌려받아야 할 즈음부터 그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며칠을 보고 있던 그녀가 "당신, 그 사람한테서 돈 받았어?" 하고 지나가듯 물었다. 그는 "응, 며칠 안에 준대"라고 별일 아닌 듯 대답했다.
며칠 후 그가 빳빳한 새 돈을 김 여사에게 내밀었다. 그 친구가 갚은 돈이라며 "거, 사람을 의심하는 당신 버릇은 좀 고쳐야 해"라며 의기양양했다. 그녀에게는 그 돈부터 의심투성이였다. 한국은행에서 그날 찍어낸 듯 너무 새 돈이었던 거다.
그래서 그를 다그친 끝에 "그놈은 연락조차 안 되는데, 당신은 돈 받아 왔냐고 자꾸 나를 윽박지르고……. 사실 오늘 은행에 가서 대출해서 받은 돈이야"라는 실토를 받아내었다. (이때의 은행 대출 경험, 특히 은행원의 갑질에 당한 기억은 그가 죽을 때까지 은행 부문에 대해 부정적인 편견을 갖게 만들었다.)
가슴을 쳐본들 어쩌겠는가. 당시는 개인 간 빚은 떼먹은 자를 탓하기보다 떼인 '바보'를 탓하던 시절이었다. 무주택자가 다수를 차지하고 있던 때라 안 갚고 잠적하면 그만이었다. 미안하다며 뒤에 갚겠다고 말하면 그나마 양반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김 여사가 지프차(남편은 공용차를 탈 수 없는 하급 공무원이었지만, 집수리 장사로 큰돈을 벌고 있던 그녀는 기사 딸린 지프차를 타고 다녔다)를 타고 을지로 어딘가를 지나다가, 문제의 그 인간이 걸어가는 것을 보게 되었다.
휴전 직후 서울 인구가 150만 명으로 늘어나긴 했으나 서울 시내라고 해본들 종로구와 중구가 사실상 전부였다. 그러니 시내에 돌아다니면 웬만하면 길에서 마주치게 되어 있었다. 기사에게 급히 차를 세우게 한 그녀는 기사를 데리고 그 친구 앞에 섰다.
그녀는 당황해하는 그가 입을 떼기도 전에 그의 고개가 돌아가도록 뺨을 후려쳤다. 그녀는 20대 후반이었고, 쓰루와 동년배인 그 사람은 30대 중반이었다. 그녀는 바로 "지프차에 타시오"라고 말했다. 차안에서 그는 "무슨 일이 있어도 내일까지는 갚겠습니다"라고 약속했다.
식구들 앞에서 창피당하는 건 죽어도 싫었던 것이다. 그날 기어이 그의 집까지 확인한 그녀에게 다음 날 그가 현금 뭉치를 싸 들고 왔다. 그녀는 퇴근한 쓰루에게 그 돈뭉치를 내밀었다. 돈이나 사람 문제에 관한 한, 그가 그녀 앞에서 자신의 발언권이나 판단력에 하직을 고한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