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상황, 팀 상황에 맞는 연봉 책정 필요…성과와 미래가치 사이 적정 연봉체계 시급
프로야구 팬이라면 '용규 놀이'라는 용어에 익숙하다. 한화 이용규 선수가 투 스트라이크 이후에 끈질기게 공을 커트해내며 상대 투수를 괴롭히는 모습을 이렇게 표현했다.
응원하는 입장에서는 재미있고 통쾌하지만 상대 팀 입장에서는 짜증나고 화가 나는 장면이다. 특히 태극마크를 달고 나간 국제대회에서 '용규 놀이'를 보고 있으면 자연스레 환호하게 된다.
이용규는 올 시즌이 끝난 뒤 한화에서 방출됐다. 만 35세로 나이가 아주 많은 것도 아니고, 실적이 아주 나쁜 것도 아니다.(122경기 출전, 타율 0.286, 32타점, 60득점, 17도루)
한화는 지난해 이용규와 2+1년 총액 26억 원에 계약했다. 그리고 올해 꼴찌를 했다. 팀을 재건해야 하는 입장에서 비교적 노장에다 고액 연봉선수인 이용규를 계속 놔두기 어려웠을 것이다. 따라서 1년 연장 옵션 포기는 물론 트레이드도 하지 않고 방출해 버렸다.
이용규는 키움과 연봉 1억+옵션 최대 5000만 원에 계약했다. 자존심도 상하고 연봉도 엄청 깎였지만 선수 생활을 계속하고 싶다는 의욕이 더 강했다.
한화의 처사가 심한 것 같고, 이용규가 억울하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냉정히 보면 이게 프로의 세계다. 키움 입장에서는 최대 1억5000만 원이라는 '헐값'에 쓸 만한 선수를 잡은 셈이다.
실적이 좋으면 연봉은 올라가고, 실적이 나쁘면 깎이는 게 당연하다. 미래가치가 떨어지면 연봉도 떨어져야 한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아직도 '정'이 존재하고, '체면'을 중시한다.
한국의 프로스포츠는 진정한 프로가 아니다. 야구, 축구, 농구, 배구 모두 명색은 프로지만 흑자를 내는 구단이 거의 없다. 대부분이 모기업이나 지자체의 지원으로 적자를 보충한다.
그래서 롯데 이대호의 행보가 더 궁금해진다. 이대호는 4년 150억 원 계약이 올해로 끝난다. 국내 최고 연봉선수인 이대호는 내년에 만 39세가 된다. 동갑내기인 김태균과 정근우가 올해 은퇴 선언을 했다. 물론 이대호는 아직 쓸 만하다. 그러나 미래가치는 어떤가. 롯데는 올해 100억 원의 적자가 예상된다.
야구해설가 김소식 씨가 1990년대 중반쯤에 이런 말을 했다. "삼성 라이온즈가 우승을 해야 한국 프로야구가 발전한다."
듣기에 따라서는 큰 오해를 할 수 있는 말이다. 그 속뜻은 이러했다. 엄청난 투자를 하는 삼성은 우승을 못하고, 거의 투자를 하지 않는 해태가 계속 우승하니 어떤 기업이 야구에 투자를 하겠느냐는 말이었다. 모기업을 기반으로 하는 한국프로야구의 특성을 잘 드러낸 표현이었다.
올해 월드시리즈에서 맞붙은 LA 다저스와 템파베이 레이스는 선수들의 총 연봉 차이로도 화제가 됐다. 대도시가 연고지인 다저스는 부자 구단답게 총 연봉이 1억792만 달러(약 1,200억 원)로 레이스(2,830만 달러)의 네 배나 된다.
가난한 구단이 부자 구단과 연봉 싸움을 하려고 들면 가랑이가 찢어진다. 부자 구단이 고액 연봉을 주면서 좋은 선수를 데려온다면 가난한 구단은 미래 가치가 뛰어난 유망주를 발굴하는 데 더 신경을 써야한다.
레이스가 이런 팀이다. 미국 언론은 '언더독 경영'이라는 말을 붙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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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1986년 중앙일보 입사. 사회부-경제부 거쳐 93년 3월부터 체육부 기자 시작. 축구-야구-농구-배구 등 주요 종목 취재를 했으며 93년 미국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96년 애틀랜타 올림픽, 98년 프랑스 월드컵, 2000년 시드니 올림픽,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과 한일 월드컵,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등을 현장 취재했다. 중앙일보 체육부장 시절 '이길용 체육기자상'을 수상했으며Jtbc 초대 문화스포츠부장을 거쳐 2013년 중앙북스 상무로 퇴직했다. 현재 1인 출판사 'LiSa' 대표이며 저서로 부부에세이 '느림보 토끼와 함께 살기'와 소설 '파랑'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