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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희의 역사갈피] 나라 잃은 날 왜 경성은 평온했나
[김성희의 역사갈피] 나라 잃은 날 왜 경성은 평온했나
  • 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 jaejae99@hanmail.net
  • 승인 2020.11.15 19: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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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 교수의 《한국 근대사 산책》 5권 "국치일(8월 29일) 종로 거리는 먹고 마시는 '일상' 지속"
이민족 지배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양반의 지배 끝났다는 후련함등 민중의 절망감과 무력감 투영
예나 지금이나 나라 지키는 것은 영웅호걸, 정치지도자도 아닌 말 없는 '민심'이란 주장 억지일까
사진=중구문화원/이코노텔링그래픽팀.
사진=중구문화원/이코노텔링그래픽팀.

역사는, 특히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교과서의 역사는 실상과 다를 때가 적지 않다. 그 결과 우리는 '역사의 허상'을 간직한 채 고정관념, 선입견, 편견을 가지고 살아가게 된다.

대표적인 것이 이른바 '한일합방'이다. 사실 한일 강제병합이 이뤄진 때는 1910년 8월 22일이다. 이날 어전회의에서 조선과 일본의 강제병합안이 가결됐고, 총리대신 이완용은 오후에 데라우치 통감과 '한일 강제병합안'에 조인했다.

법적으로는 8월 22일 대한제국의 숨통이 끊어진 것이다. 한데 일제는 8월 29일에야 병합조약을 포고했다. 오늘날 우리가 8월 29일을 '경술국치일'이라 해서 절치부심하게 된 까닭이다.

이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다른 데 있다. 한일 강제병합이 알려진 이후 민중의 반응이다. 우리는 금산군수 홍범식, 매천 황현의 자결 사실에 몰입돼 친일 각료 몇몇을 제외한 온 국민이 한마음이 되어 분통해 하고, 민심이 들끓었을 것이라 여긴다. 한데 이건 희망이 투영된 '상상'에 가깝다.

강준만 전북대 교수가 쓴 《한국 근대사 산책》 시리즈(인물과사상사) 5권을 보면 뜻밖의 사실이 나온다. 3·1 만세운동 때 민족대표 중 한 명이었던 최린에 따르면 "그날(8월 29일) 종로거리의 조선인들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흥청거리며 장사를 하고 먹고 마시는 '일상'을 잃지 않았다."

놀랍지 않은가. 요즘으로 치면 조선인들이 광화문 앞에 모여들어 연일 '촛불시위'라도 벌였음직 하지만 경성은 평온했다니 우리가 상상하던 민족적 반응과는 영 딴판이니 말이다. 일본인촌 집집마다 일장기가 걸리고, 시내 도처에 오색등, 아치가 설치되었는가 하면 저녁엔 약 6만 명이 참여하는 등불행렬이 시가를 누볐던 것과는 대조되는 모습이다.

이리 된 데는 다양한 원인이 있겠다. 이미 일제가 10여 년에 걸쳐 야금야금 국권을 침탈한 끝에 대한제국이 시나브로 넘어간 셈이어서 망국에 대한 분노 역시 발화점을 찾기 힘들었다는 점, 이미 외교권· 경찰권을 장악한 일제가 떨쳐 일어날 만한 애국지사들을 사전에 투옥, 감시했다는 점 등등.

그러나 "이민족의 지배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양반계급의 지배가 끝났다"는 후련함, 아니면 나라님이 바뀌어도 내 삶은 나빠질 게 없다는 민중의 절망감 또는 무력감이 가장 큰 이유가 아니었을까. 만일 민심이 대한제국을 아끼고, 자부심을 가졌다면 1910년 8월 29일 경성은 평온했을까. 예나 지금이나 나라를 지키는 것은 영웅호걸도, 정치지도자도 아니고 소리 없는 '민심'이라는 게 영 억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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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커리커처.
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커리커처.

고려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정년퇴직한 후 북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엔 고려대학교 언론학부 초빙교수로 강단에 선 이후 2014년까지 7년 간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겸임교수로 미디어 글쓰기를 강의했다. 네이버, 프레시안, 국민은행 인문학사이트, 아시아경제신문, 중앙일보 온라인판 등에 서평, 칼럼을 연재했다. '맛있는 책 읽기' '취재수첩보다 생생한 신문기사 쓰기'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1884~1945'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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