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회원국의 결집과 중국의 투표 향방 주목
유명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세계무역기구(WTO) 차기 사무총장 자리에 한 걸음 더 다가섰다. 나이지리아 출신 후보와 맞붙는 최종 라운드만 남았다. 한국 출신이 세 번째 도전 끝에 WTO 사무총장을 배출할 수 있을지 기대가 커지고 있다.
8일(현지시간) WTO 사무국의 공식 발표를 앞두고 AFP, 블름버그통신 등은 차기 사무총장을 선출하는 최종 라운드에 유 본부장과 나이지리아 응고지 오콘조-이웰라 후보가 진출했다고 보도했다.
2차 라운드는 진출자가 5명이었는데 사실상 유 본부장과 오콘조-이웰라, 케냐의 아미나 모하메드 등 '여성 3파전'으로 분석됐다. 1995년 WTO 출범 이래 아프리카 대륙 출신과 여성 사무총장을 한 번도 배출하지 않았다는 점에서다.
예상대로 3차 라운드에 진출하는 최종 2인은 모두 여성이고 아프리카 출신 후보가 포함됐다. 누가 되든 WTO 25년 역사상 첫 여성 사무총장이 탄생하게 된다.
유 본부장은 현직 통상 장관으로서의 자질과 전문성을 높이 평가받은 것으로 보인다. 서울대 영문과 출신으로 행정고시 35회에 합격한 유 본부장은 1995년 통상산업부가 선발한 첫 번째 여성 통상 전문가다. 25년간 통상 분야에서 활동하며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코러스(KORUS·한미 자유무역협정),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등 다양한 다자무역 협상에서 경력을 쌓았다.
아울러 한국이 자유무역주의의 최대 수혜국이라는 점, 미·중간, 선진국과 개도국 사이에서 중간자적 위치에 있는 점, 코로나19의 모범적 방역국으로서 국제사회에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이 유 본부장에게 긍정적인 평가 요소로 작용했을 것이란 분석이다.
오콘조-이웰라는 나이지리아에서 두 차례 재무장관과 외무부 장관을 역임했다. 통상 분야 경험은 없지만 정치력이 강점이다. 1970년대 나이지리아에서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하버드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MIT 대학원에서 지역경제 개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세계은행에서 25년간 근무해 국제무대에서 인지도가 꽤 높다. 재무장관 시절인 2012년에는 김용 전 세계은행 총재와 총재직을 놓고 경쟁을 벌이기도 했다. 세계백신면역연합(GAVI) 이사회 의장으로 코로나19 사태 속 활발한 행보로 회원국들에 눈도장을 찍었다.
최종 결선에선 후보자 개인 역량 외에도 아프리카 지역의 표심 결집과 강대국의 입김, 국제정치 논리 등이 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역대 WTO 사무총장 가운데 아프리카 출신이 없었던 만큼 아프리카 표심은 오콘조-이웰라 후보로 결집할 가능성이 있다.
164개 WTO 회원국을 지역별로 보면 아프리카가 40여개국으로 가장 많다. 그 다음이 유럽연합(EU), 아시아, 미주의 순서다.
오히려 이런 상황이 유 본부장에게 유리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개발도상국의 지지를 받는 아프리카 후보로선 상대 진영인 선진국들로부터 지지를 받기 힘들기 때문에 유 본부장이 진영 간 대결에서 중재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다는 능력만 입증하면 승산이 있다는 것이다.
강대국 중 중국은 아프리카에 대한 최대 교역·투자국으로서 나이지리아 후보의 손을 들 가능성이 높다. 미국은 대선 결과에 따라 표심 향방이 달라질 전망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WTO 체제 자체에 노골적으로 반감을 드러내왔지만, 조 바이든 후보는 다자무역주의를 옹호하는 입장으로 WTO 체제를 통한 중국 견제 구도를 형성할 가능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