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을 만든 사람들⑪헨리 프릭의 '저택 박물관'
뉴욕을 만든 사람들⑪헨리 프릭의 '저택 박물관'
  • econotelling(이코노텔링)
  • 승인 2019.03.28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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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네기 돕다가 독립한 평생의 '철강 라이벌'… 여생보내려 지은 저택은 예술품 박물관으로 변신… 유럽서 타이타닉호 타는 귀국표 샀다가 승선직전에 취소해 극적 생환
사업 절정기의 헨리 클레어 프릭. 그는 카네와 동업을 하다가 평생을 철강라이벌로 지냈다. 그가 모은 값진 예술품은 자신이 살던 맨해튼의 저택에 전시돼 일반에게 공개되고 있다.
사업 절정기의 헨리 클레어 프릭. 그는 카네와 동업을 하다가 평생을 철강라이벌로 지냈다. 그가 모은 값진 예술품은 자신이 살던 맨해튼의 저택에 전시돼 일반에게 공개되고 있다./미 의회 보관사진

맨해튼 센트럴파크에는 단아한 주택이 하나 있다. 동쪽지역 어퍼이스트 70번가에 공원을 조망할 수 있는 곳에 3층짜리 대리석 건축물이다. 100년전쯤 맨해튼 조용한 고급주택가에서 남은 여생을 여유롭게 보내고자 공간을 마련한 기업가의 집이다. 그 기업인은 헨리 클레어 프릭. 그는 1800년대후반 미국경제의 붐을 업고 철강과 석탄사업으로 큰 돈을 벌었다. 한때 앤드류 카네기와도 동업했던 철강업계의 양대산맥이다.

1913년 그 저택이 완공된 후 5년만에 그는 세상을 떴다. 여유로운 삶은 희망사항에 불과했다. 5년 살 집이라면 그렇게 으리으리하게 짓지도 않았을 것이고 예술품을 모으지도 않았을런지 모른다.

그는 조각, 그림등 미술품들을 유독 좋아했다. 화랑계의 큰 손 컬럭터였다. 특히 16세기 네델란드의 천재 작가 렘브란트, 페르메르 등의 작품을 주로 수집했다. 12세기의 중동 아라비아의 금박그림과 조각도 그의 손에 들어갔다.

맨해튼 저택의 그넓은 회랑과 사랑방은 이들 값비싼 예술품들로 가득차 있다.박물관이 됐다. 정작 본인은 오래 살지 못했지만 걸작들의 안식처로는 그만이다.

부인과 함께 식사하던 식당과 손님 접대방, 회의실, 계단, 복도, 중정 그리고 화장실까지도 가득하게 걸려있는 보물들이 오늘날 전세계인들의 발걸음을 붙잡고 있다. 그는 1849년 펜실베니아에서 태어났다. 석탄과 철강 그리고 철도사업으로 돈방석에 앉았다.

일요일 오후 무료 입장을 위해 줄 서 있는 관람객과 뉴욕 프릭 박물관 앞 /ⓒ곽용석
일요일 오후 무료 입장을 위해 줄 서 있는 관람객과 뉴욕 프릭 박물관 앞 (뉴욕=곽용석 이코노텔링 기자)

당초 카네기 강철회사에 입사, 대표까지 올랐다. 카네기 회사의 기반을 마련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그러나 카네기는 그의 공로를 높게 평가하지 않았다. 결국 그는 카네기회사에서 나와 US 스틸회사를 차려 독립한다. 어제의 동지가 오늘은 적이 됐다. 경영계는 그의 수완을 높게 샀다. 카네기보다 프릭에 후한 점수를 더 주기도 했다. 카네기와 어깨를 겨룰만큼 기업을 크게 키웠다. 냉혈한 적인 면모도 보였다.그는 노동자의 파업이나 요구사항에 무자비하게 탄압한다. 그 와중에 노동자로부터 권총 저격을 당하기도 했다. 노동자 저격수는 두 발이나 그를 향해 쐈으나 다행이 귀 쪽과 목 부근을 스쳤다. 하지만 중상을 입었고 천신만고 끝에 살아남았다. 그 사건 이후 파업은 사회적 지탄을 받았고 그의 사업구조 조정은 탄력을 받는다. 경쟁사 회사 인수합병도 적대적으로 했다. 미국역사상 가장 악명높은 CEO 랭킹에는 그가 항상 상위권에 오른다. 대통령이나 의원들을 대상으로 한 워싱턴 로비 반경을 넓혀 그의 사업은 말로 커졌다.

1912년 유럽방문중에 그는 타이타닉호에 탈 뻔했다. 이탈리아에서 부인과 함께 뉴욕으로 들어가는 표를 구매해놓았다. 승선 직전에 부인이 다리를 다치는 바람에 취소해 위기를 넘겼다. 암살과 타이타닉이라는 두 차례의 죽음의 문턱을 피했다. 1919년 69세에 숨졌다. 오묘하게도 그의 평생 라이벌 카네기와 같은 해에 세상을 등졌다. 미술박물관이 된 그의 저택은 일요일 오후 무료로 개방되고 뮤직 공연이 열린다. 그의 부인은 1931년 사망하면서 뉴욕시에 이 건물을 기증했고 1935년 박물관으로 재단장됐다. 일반인들은 평일에 20여달러의 입장료를 내야 들어갈수 있다. 일반 박물관과 다르게 그가 생활하던 집을 고스란히 박물관으로 만든 점이 참신하다. 이는 프릭의 살아 생전 생각과 행동들을 조금이라도 반추하게 만든다. 한 거부의 집안 모습을 생생하게 느낄수 있다. 박물관 회랑에 걸려진 명작은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라는 격언을 떠올리게 한다. 렘브란트가 돈이 없어 값싼 고동색 물감으로만 그렸다는 명작이 이를 웅변하고 있다. 화가와 그림주인은 갔고, 그림과 집만 남았다. <뉴욕= 곽용석 이코노텔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