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7 01:45 (토)
◇김수종의 취재여록⑰남과 달랐던 '민들레꽃의 길'
◇김수종의 취재여록⑰남과 달랐던 '민들레꽃의 길'
  • 김수종 이코노텔링 편집고문(전 한국일보 주필)
  • diamond1516@hanmail.net
  • 승인 2020.12.11 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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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 이민 온 교포들은 대부분 봉제와 섬유업에 종사하는 모습에 '이건 아니다'
우수아이아에선 '상추가 금값'…농업 투신 결심한 후 스위스서 채소농법 익혀
여러차례 실패 불구 "민들레꽃 피는 곳은 나물 잘된다"는 할머니 말 굳게 믿어
사진=청와대.
문명근 씨의 미망인 조옥심씨(오른쪽에서 둘째). 2018년 G20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의 초대를 받고 교민 모임에 참석했다. 사진=청와대.

문명근씨는 1969년 브라질로 이민했다. 거의 모든 브라질 이민자들이 봉제업과 섬유업 장사에 매달렸다. 문 씨는 그러려고 신세계를 찾아온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새로운 것을 개척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2년 동안 방황하다시피 남미 전역을 돌아다니다가 어느 봄에 이곳 최남단 도시 우수아이아까지 왔다.

너무 아름다운 곳이었다. 정착하고 싶은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고 각종 정보를 수집했다. 목축 국가로서 쇠고기가 주식인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상추 등 야채를 많이 먹는다. 상추를 비행기로 4시간 걸리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사다 먹어야 하니 값이 배나 비쌌다.

상추 재배에 성공하면 기회가 있겠다고 생각했다. 더구나 남극에 주둔하는 아르헨티나 군 3000명이 먹을 상추를 공급하는 게 아르헨티나 군으로서는 큰일이었다. 문 씨는 이것을 기회로 보았다. 그러나 하루에 사계절이 다 있는 척박한 조건 때문에 야채 재배가 불가능하다는 게 현지인들의 철석같은 생각이었다.

문 씨는 어느 날 바닷가를 걸으며 고민에 빠져 있었다. 그런데 양지바른 해변가에 민들레꽃이 노랗게 핀 것을 보았다. 상추 생각만 하던 문 씨의 뇌리에 갑자기 어릴 때 할머니가 무심코 했던 말이 떠올랐다. "민들레꽃이 피는 곳에는 나물이 잘 된단다." 그는 할머니의 말이 그의 귓전을 떠나지 않았다.

문 씨는 군 부대를 설득해서 땅을 얻고 부에노스아이레스 종자상에서 상추씨앗을 구해다 심었다. 싹이 나다가 죽어버렸다. 그는 한국, 일본. 미국 등 여러 곳에서 종자를 구해서 심었지만 또 실패였다. 그는 생각했다. 가장 추운 곳에서 상추를 재배하는 곳이 어디일까.

스위스 농가를 찾아가 상추 종자를 구입하고 그들의 농법을 도입했다. 몇 번의 실험 끝에 그의 농장에는 탐스럽게 상추가 자랐다. 주민들에게 값싼 상추를 제공했을 뿐 아니라 남극 주둔 아르헨티나 군대에 상추를 공급하면서 파블로 문(Pablo Moon)은 우수아이아의 유명 인사가 되었다. 아르헨티나 대통령이 그에게 수송기를 내주어 닭을 실어 나르게 배려해 준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문명근씨가 상추등 야채를 심었던 농장은 문 씨의 며느리가 사업을 물려받아 'Vivero los Coreano'(한국인 농원)란 이름을 가진 꽃 농장으로 변신했다.
문명근씨가 상추등 야채를 심었던 농장은 문 씨의 며느리가 사업을 물려받아 'Vivero los Coreano'(한국인 농원)란 이름을 가진 꽃 농장으로 변신했다.

오래전 문명근씨가 타계했다는 소식을 신문기사를 통해 접했을 때 내 머리에 떠올랐던 이미지는 비글 해협에 노랗게 핀 민들레꽃이었다. 내가 36년 전 비글 해협 바닷가에서 보았던 것은 민들레꽃이 아니라 하얗게 쌓인 눈과 자갈밭에 묻힌 인디언의 돌칼뿐이지만.

이 글을 쓰면서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문 씨의 유가족 얘기를 언론과 여행 블로그에서 발견했다. 문 씨의 미망인 조옥심씨가 2018년 G20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의 초대를 받고 교민 모임에 참석한 사진을 보았다. 또 문 씨가 야채를 심었던 농장은 문 씨의 며느리가 사업을 물려받아 'Vivero los Coreano'(한국인 농원)란 이름을 가진 꽃 농장으로 변신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적잖은 사람들이 우수아이아를 여행하고 멋진 사진과 함께 블로그에 여행기를 남겼다. 그 블로그에서 37년 전 나를 열심히 안내해줬던 그 30세의 청년 문병경씨가 타계했다는 내용이 있었다. 여행자들의 '블로그 부음'을 보고 강한 아쉬움이 가슴을 찔렀다.

문명근씨는 지구 반대편 먼 나라에서 불굴의 의지로 땅을 파고 야채를 재배했던 개척자였지만, 포도주 한잔을 마시고는 '이별의 부산 정거장'을 들으며 향수를 달래고 '사상계'의 애독자였음을 자랑하는 한국 혼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가 들려준 개척자 생활을 지금 반추해서 생각해보니 그는 산업화 시대의 세일즈맨이나 공장주 같은 사람이 아니라 심훈의 소설 '상록수'에 더 어울리는 계몽주의적 농업 개척자였다. <'잊지못할 남미의 두 한국인 연재'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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