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9 22:35 (금)
◇김수종의 취재여록⑭우수아이아의 '상추 아버지'
◇김수종의 취재여록⑭우수아이아의 '상추 아버지'
  • 김수종 이코노텔링 편집고문(전 한국일보 주필)
  • diamond1516@hanmail.net
  • 승인 2020.12.01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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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의 최남단 동토에 농장 개척한 문명근씨의 인생파노라마 감명
그의 '남미해설은 명강의'… 아르헨티나 '페로니즘'번져 나라 거덜
100여년전 영국에 빚진 부에노스아이레스 도로 건설비도 못 갚아
고속 인플레로 대졸 초봉은 '억 단위'…포클랜드전 지자 군부 퇴진

남미 최남단 도시 우수아이아에서 농장을 개척한 문명근씨를 만나기 위해 5월 하순 상파울루에서 비행기를 타고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날아갔다. 문 씨가 볼 일이 있어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왔던 차에 며칠 늦춰 나와 함께 우수아이아 행 비행기를 타기로 일정을 조정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늦가을답게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날씨는 선선했다. 택시를 타고 공항 출구를 지나가는데 대형 영문 빌보드가 확 눈에 들어왔다. "Malvinas is ours." 'Malvinas'는 포클랜드 섬의 아르헨티 식 이름이니, "포클랜드섬은 우리 것이다."라는 뜻이다. 포클랜드는 영국의 지배아래 있던 섬인데, 1982년 아르헨티나 군사정부의 갈티에리 대통령이 전격적으로 이 섬을 점령함으로서 아르헨티나와 영국 사이에 전쟁이 벌어졌다. 영국은 원정함대를 파견하여 전쟁에 승리함으로써 포클랜드섬을 탈환했고, 패배한 아르헨티나의 군사정권이 몰락했다. 아르헨티나 사람들에겐 '천추의 한'이 맺힌 섬이니 그런 빌보드가 등장할 만했다.

우수아이아 행 비행기를 탄 4시간 동안 문명근씨(오른쪽에서 둘째)는 아르헨티나와 우수아이아가 위치한 티에라델후에고(Tierra del Fuego)섬에 대해 열심히 설명해줬다. 한마디로 명강의였다. 아르헨티나의 곡창 지대 팜파(평원)를 내려다보니 농장이 바둑판같이 구획정리가 되어 있었다. 문 씨가 창밖을 가리키며
우수아이아 행 비행기를 탄 4시간 동안 문명근씨(오른쪽에서 둘째)는 아르헨티나와 우수아이아가 위치한 티에라델후에고(Tierra del Fuego)섬에 대해 열심히 설명해줬다. 한마디로 명강의였다. 아르헨티나의 곡창 지대 팜파(평원)를 내려다보니 농장이 바둑판같이 구획정리가 되어 있었다. 문 씨가 창밖을 가리키며 "저 바둑판 같은 구획 하나 면적이 얼마인지 아시오? 3000헥타르, 900만 평이라고 말해줬다. 필자는 아르헨티나 취재기간동안 문명근씨 가족과 격의없이 지냈다고 한다. 사진=이코노텔링 김수종 고문.

당시 아르헨티나는 국민의 인기를 얻으려는 페로니즘 경제정책과 전쟁패배로 악성 인플레이션이 심했다. 연간 물가가 400%씩 올랐다. 택시를 탔더니 운전사 좌석 뒷면에 10만 단위 페소화를 붙여놓고 0 몇 개를 빨간 사인펜으로 지워놓고 있었다.

돈 가치가 급락하기 때문에 기존의 지폐에 택시기사들이 절하 표시를 해서 사용하는 방식이었다.

문명근 씨가 묵은 호텔에 방을 잡았다. 그는 저녁을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사는 한인들과 같이 하자며 밤 8시에 강가에 있는 식당으로 안내했다. 한인회 간부 등 서너 명이 있었다. 그런데 배 위에 만든 식당엔 사람이 텅텅 비어있었다. 이상해서 물었더니 초저녁이라서 사람들이 저녁식사하러 오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10시쯤 식당에 나타나서 새벽 2시까지 먹고 마시는 게 아르헨티나 사람들의 저녁회식 습성이라고 말했다.

그날 한국인들은 문명근씨를 오래 만에 보는지 반갑게 환담하며 안부를 주고받았다. 나도 끼어들어 이 얘기 저 얘기 하다가 인플레이션 얘기를 꺼냈더니 잘 만났다는 듯이 아르헨티나 경제를 설명했다.

한 사람이 아들이 취업했다면서 "월급이 1억5천만 원밖에 안 된다."고 말했다. 이 말을 받아 또 다른 사람이 "재작년에 취직한 우리 아들 월급은 2억 원도 안 돼.'"라고 맞장구쳤다. 물론 한국 돈 얘기가 아니었다. 미국에서 교포들은 미국 달러로 거래할 때도 원 단위를 썼다. 예를 들어 물건 값이 3달러50센트라면 "3원50전"이라고 말했다. 아르헨티나도 마찬가지 셈법을 썼다. 아르헨티나는 세계 최대 인플레국가였으니 초봉도 억 단위가 되는 모양이었다.

이튿날 문 씨와 함께 부에노스아이레스를 구경하고 다니며 아르헨티나 강의를 계속 들었다. 19세기에 파리를 모델로 건설한 부에노스아이레스는 방사선 도로 등 파리를 연상케 했다. 분위기가 우중충한 것만 달랐다. 아스팔트가 아니라 돌로 깔아놓은 거리를 걸으면서 문 씨가 말했다. "100년 전 이 도로를 깔 때 영국에서 차관(빚)을 도입해 만든 거요. 그런데 말이야. 100년이 지난 지금도 그 빚을 못 갚아단 말이야. 그런 주제에 영국과 전쟁해서 이길 수 있겠어요? 아르헨티나가 18세기에 정말 부자나라였어. 땅만 보면 못 살 이유가 하나도 없어요."

그 다음날 우수아이아 행 비행기를 탄 4시간 동안 문 씨는 아르헨티나와 우수아이아가 위치한 티에라델후에고(Tierra del Fuego)섬에 대해 열심히 설명해줬다. 한마디로 명강의였다. 아르헨티나의 곡창 지대 팜파(평원)를 내려다보니 농장이 바둑판같이 구획정리가 되어 있었다. 문 씨가 창밖을 가리키며 "저 바둑판 같은 구획 하나 면적이 얼마인지 아시오? 3000헥타르, 900만 평이오. 저게 농지 단위입니다. 저거 분할하여 거래하지 않아요. 농지 사려면 900만평 사야해요. 저런 계획을 누가 했는가 하면 영국인들이오. 아르헨티나는 인디언이 없는 나라요. 누가 그렇게 만들었느냐 하면 영국인들이오."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주로 스페인사람 후손인 줄 알았는데 의외의 얘기를 들었다. 그는 "아르헨티나는 미국보다 더 백인 사회"라고 말하며 스페인과 이태리인 이민이 가장 많았다고 말했다. 그의 얘기가 사실인지 아닌지 모르지만 그의 말이 재미있어 쏙 빨려 들어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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