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9-26 21:10 (토)
영화로 쓰는 세계경제 위기史(10) '화려한 음모'㊦'롤오버' 의 그림자
영화로 쓰는 세계경제 위기史(10) '화려한 음모'㊦'롤오버' 의 그림자
  • 이코노텔링 이재광 대기자
  • jkrepo@naver.com
  • 승인 2020.09.11 16: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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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부호의 비밀 자산관리와 금융 시장의 커버넌스 난맥상 그려
겉으론 달러수호 파수꾼 행세를 하면서 뒤론 달러하락세 부추겨
현대 금융영화의 시조답게 세계 경제위기의 원인과 해법 등제시

『영화보기와 영화읽기(The Art of Waching Films)』는 영화 분석 입문서의 레전드다. 1978년 초판 발행 이후 40년이 지난 2018년 아홉 번째 판본까지 나왔다. 저자 조셉 M. 보그스(Joseph M. Boggs)는 이 책 한 권만으로도 '영화 분석계의 스타'로 박수 받을 만하다.

그런 그가 자신의 책에서 '좋은 이야기의 요소'를 다루며 '플롯의 일관성'을 첫째로 꼽는다.

그래야 "하나의 사건이 자연스러우면서도 논리적으로 다음 사건을 이끈다"는 것이다. 그밖에 그는 영화의 '핍진성(verisimilitudity)' 즉, 스토리가 진실하다는 믿음을 줘야 하고 흥미적 요소와, 서스펜스, 활극 요소(elements of action)가 가미돼야 한다고 말한다.

지난 글 상ㆍ하편에서 여러 차례 이 영화 <화려한 음모>가 금융영화라는 장르의 시조(始祖)가 돼야 한다고 말해 왔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이유를 알고 싶으면 영화를 직접 봐야 한다. 영화에 대한 접근은 쉽다. 유튜브에서 'Rollover, 1981'을 치면 바로 뜬다. 하지만 아쉬움이 있다. 한글 자막이 없는 '원본'인 탓에 이해도가 많이 떨어진다. 영어를 잘 한다 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어려운 금융 용어에 복잡하게 얽힌 스토리, 다양한 복선 등이 영화읽기에 많은 인내심을 요구한다. 아니 그것만으로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인내심을 갖고 영화를 끝까지 봐도 무슨 얘기인지 모르겠다는 관객이 많을 것이다.

이번 글은 영화 <화려한 음모>의 스토리 라인과 플롯에 대해 얘기할 참이다. 대충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로는 영화를 보지 않은 독자들의 기본적인 이해를 도우려는 것이고 두 번째로는 영화를 본 독자라 해도(거의 없겠지만) 미처 이해하지 못한 내용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보그스가 제시한 몇 가지 기준을 통해 영화가 갖고 있는 '스토리의 좋고 나쁨'을 따져 보고 싶어서다. 영화가 보그스가 지적한 '좋은 스토리의 요소'를 갖추지 못했다면 아무리 금융 영화의 선구자라 해도 '시조'라는 타이틀은 어울리지 않을 것이다.

영화를 살펴보자. 우선 인트로는 버로우 내셔널 은행(Borough National Bank)의 트레이딩 룸에서 시작된다. 시점은 개장 직전의 새벽인 것으로 보인다. 숫자판에 숫자가 반짝거리는 컴컴한 방에 한 청소부가 막 청소를 시작하려 한다. 인트로곡이 묘하다. 경쾌하고 밝은듯하지만 뭔가 불안한 느낌을 준다. 이어 나온 시퀀스는 막 개장한 트레이딩 룸이다. "달러가 폭락 중이야, 바위처럼 굴러 떨어지고 있다고!" 매니저의 외침에 트레이더 모두가 불안한 모습이다. 매니저는 달러가 더 떨어지기 전에 빨리 팔아치우라고 말한다.

다음 시퀀스는 '뉴욕의 꽤나 규모가 크고 잘 나가는 것으로 추정되는' 제일뉴욕은행(First New York bank). 은행장 맥스웰 에머리(흄 크로닌 분)가 부하직원에 지시한다. "달러를 사들여! 파리에도 얘기해. 도움이 필요해. 이제 롤러코스터는 지겨워." 그날 저녁 뉴스에서도 불안한 달러가 화두다. 여성 앵커는 "달러가치가 너무 떨어지고 있다"며 초청된 전문가에게 해설을 부탁한다. 해설을 맡은 전문가는 다름 아닌 에머리 행장. 앵커는 그를 가리켜 "국 금융계의 사자로 불린다"며 그를 소개했다. 그는 회의석상에서와는 달리 차분한 어투로 시청자를 안심시킨다. "불안해 할 필요 없습니다. 우리는 지금 달러의 정상적인 순환을 겪고 있을 뿐입니다." 어떻게든 불안한 달러를 안정시키려는 그의 노력에서 달러를 지키려는 미국 금융계의 파수꾼 냄새가 물씬 풍긴다.

뉴스는 전파를 타고 뉴욕의 한 고층 빌딩 사무실에까지 전달된다. 사무실에서는 한 중년 남성이 책상 앞에 앉아 뭔가 골똘히 생각에 빠졌다. 그런데 누군가가 침입한다. 그리고 칼로 그를 찌른다. 중년의 신사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사망하고 만다. 책상 위에는 그가 마지막으로 보던 서류가 있다.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계좌번호가 적혀 있다. 제일뉴욕은행, 21214. 뭔가 그의 죽음과 깊이 관련이 있는, 뭔가 은밀하고 비밀스러운 숫자임에 틀림없다. 영화는 이제 이 숫자의 비밀을 파헤치기 위해 앞으로 내달린다.

피살자는 미국 굴지의 화학 기업 윈터캠 엔터프라이즈의 회장 찰리 윈터 회장이다. 이유도 원인도 살해범도 알지 못하는 재벌의 피살 사건은 가족은 물론 사회에도 큰 충격을 준다. 이 같은 고통스러운 상황에서도 아내 리 윈터스(제인 폰다 분)는 침착하게 회사를 꾸려 간다. 물론 신참내기는 아니다. 남편이 죽기 전에도 회사 이사진에 참여해 경영을 알고 있다. 하지만 남편이 유고 상태다. 혼자 회사를 이끈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게다가 그는 남편의 살해범도 찾는 중이다. 그의 고통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장면①버로우 내셔널 은행 트레이더룸. 달러가치 하락에 놀란 매니저가 트레이더들에게 달러를 마르크나 엔으로 바꾸라 지시한다.②제일뉴욕은행 맥스웰 에머리 은행장은 달러 폭락을 막아야 한다며 부하 직원에게 외국계 은행에도 협조를 요청해 달러를 사들이라고 지시한다.③ 에머리 은행장은 그날 저녁 TV 뉴스에 출연, “지금의 달러 하락은 일반적인 순환일 뿐이니 걱정하지 말라”며 국민을 안심시킨다.④미국 굴지의 화학기업 윈터캠의 윈터 회장이 피살된다.⑤윈터 회장의 책상 위에는 ‘제일뉴욕은행 21214’라는 비밀계좌가 적힌 서류가 있다.⑥윈터 회장 부인 리는 주거래 은행인 버로우 내셔널 은행의 신임 행장 허벌 스미스와 사업상 만나다 연인 관계로 발전한다. 이들은 윈터 전 회장의 비밀계좌에 대한 정보도 공유한다.⑦허벌과 리는 경영자금을 구하기 위해 중동의 부호들을 만난다. ⑧허벌은 에머리 행장으로부터 “새로 들어온 중동 자금을 롤오버 하지 말라”는 지시를 받고 그를 의심하기 시작한다.⑨허벌은 에머리 행장 사무실에 잠입, 윈터 전 회장의 비밀계좌를 통해 중동의 부호들이 달러를 몰래 팔고 금과 다른 통화를 사들이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또한 에머리 회장이 윈터 전 회장의 비밀계좌를 관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⑩에머리 행장이 부하를 시켜 리를 납치하려다 실패한다.⑪버로우 내셔날 은행 트레이더 룸의 심각한 표정의 트레이더들. 중동 부호들이 에머리 회장의 실패를 알고 달러를 공식적으로 팔자 미국 주식 및 외환시장은 파탄에 이른다. ⑫타레이더 룸 매니저는 아내에게 몰래 전화를 해 빨리 은행에 가서 예금한 돈 전액을 찾아오라 말한다.⑬그날 오후 은행 앞에는 돈을 찾으려는 고객으로 인산인해를 이룬다.⑭CNN 뉴스 앵커가 세계 대공황이 왔음을 알린다.⑮에머리 행장은 결국 자살을 선택한다.
장면①버로우 내셔널 은행 트레이더룸. 달러가치 하락에 놀란 매니저가 트레이더들에게 달러를 마르크나 엔으로 바꾸라 지시한다.②제일뉴욕은행 맥스웰 에머리 은행장은 달러 폭락을 막아야 한다며 부하 직원에게 외국계 은행에도 협조를 요청해 달러를 사들이라고 지시한다.③ 에머리 은행장은 그날 저녁 TV 뉴스에 출연, "지금의 달러 하락은 일반적인 순환일 뿐이니 걱정하지 말라"며 국민을 안심시킨다.④미국 굴지의 화학기업 윈터캠의 윈터 회장이 피살된다.⑤윈터 회장의 책상 위에는 '제일뉴욕은행 21214'라는 비밀계좌가 적힌 서류가 있다.⑥윈터 회장 부인 리는 주거래 은행인 버로우 내셔널 은행의 신임 행장 허벌 스미스와 사업상 만나다 연인 관계로 발전한다. 이들은 윈터 전 회장의 비밀계좌에 대한 정보도 공유한다.⑦허벌과 리는 경영자금을 구하기 위해 중동의 부호들을 만난다. ⑧허벌은 에머리 행장으로부터 "새로 들어온 중동 자금을 롤오버 하지 말라"는 지시를 받고 그를 의심하기 시작한다.⑨허벌은 에머리 행장 사무실에 잠입, 윈터 전 회장의 비밀계좌를 통해 중동의 부호들이 달러를 몰래 팔고 금과 다른 통화를 사들이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또한 에머리은행장이 윈터 전 회장의 비밀계좌를 관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⑩에머리 행장이 부하를 시켜 리를 납치하려다 실패한다.⑪버로우 내셔날 은행 트레이더 룸의 심각한 표정의 트레이더들. 중동 부호들이 에머리 회장의 실패를 알고 달러를 공식적으로 팔자 미국 주식 및 외환시장은 파탄에 이른다. ⑫타레이더 룸 매니저는 아내에게 몰래 전화를 해 빨리 은행에 가서 예금한 돈 전액을 찾아오라 말한다.⑬그날 오후 은행 앞에는 돈을 찾으려는 고객으로 인산인해를 이룬다.⑭CNN 뉴스 앵커가 세계 대공황이 왔음을 알린다.⑮에머리 행장은 결국 자살을 선택한다.

과연 그는 회사 경영과 살해범 찾기 모두에서 성공할 수 있을까? 이 두 가지 모두의 열쇠를 쥐고 있는 인물이 있다. 금융인 허벌 스미스(크리스 크리스토퍼슨 분)는 월가에서 유능하고 성품 좋기로 평가받는 인물. 그는 평소 알고 지내던 제일뉴욕은행장 맥스웰의 요청으로 버로우 내셔널 은행장을 맡게 됐다. 버로우 내셔널 은행은 윈터캠의 주거래 은행이다. 경영과 관련해서는 회사의 운명이 달려 있는 스페인 플랜트 공장 설립에 대출 건이 걸려있고 피살 후 발견된 남편의 비밀계좌는 그가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제일뉴욕은행이다.

리는 회사 경영과 남편 살해 문제로 괴로워하고 있는 차였다. 버로우 내셔널 은행은 대출에 부정적이었고 남편 피살의 단초인 계좌 내용도 알 수 없었다. 당연히 리는 새로 부임한 행장을 만난다. 허벌은 윈터캠의 여러 문제를 해결해 주기 위해 애쓴다.

이 과정에서 둘은 연인사이로 발전한다. 그리고 허벌은 리의 두 가지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한다. 리의 보유 주식을 담보로 아랍 부호들의 대출을 받는 동시에 남편의 비밀계좌의 비밀을 알아보자는 것이었다.

이제 영화는 종국을 향해 치닫는다. 단초는 윈터 회장의 비밀계좌였다. 거액이 들어 있는 이 비밀 계좌의 자금 주인은 사우디아라비아를 중심으로 한 중동의 부호들이다. 이들은 수시로 이 비밀계좌에 돈을 넣어 은밀히 달러를 팔고 금을 사들인다. 오일 달러로 세상의 돈을 싹쓸이 하듯 벌어들인 중동의 부호들에게는 남들이 미처 알 수 없는 고통과 두려움이 있었다. '달러의 폭락'이었다. 닉슨 시절 OPEC은 이미 미국과 모든 원유 결제에서 달러를 쓰기로 약속했었다. 그들이 보유 중인 대부분의 자산은 달러였고 이 돈은 미국으로 다시 모여들었다. 이들에게 달러의 폭락은 원자폭탄보다 더 두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거기에 1971년 닉슨의 '달러의 금태환 금지'가 트라우마로 작동했다. 그로 인한 손실은 10년 가까이 지난 시점에서도 결코 잊을 수 없는 것이었다.

결국 중동의 부호들은 달러로부터의 탈출을 기도한다. 미국의 은행 수뇌부와 짜고 비밀 계좌를 만들어 은밀히, 그리고 조금씩 비자금을 모아가고 있었다. 이 돈은 조금씩 금으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당연히 외부에 알려지면 일을 그르친다. 중동 부호들이 달러를 팔아치우고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 그 순간 달러는 폭락할 테고 대부분의 자산을 달러로 갖고 있던 중동 부호들은 당연히 손실을 막지 못할 것이다.

놀라운 것은 이 계좌의 관리자가 에머리 행장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는 겉으로는 달러를 지키기 파수꾼의 행세를 하면서도 뒤로는 달러 하락으로 돈을 벌기 위한 자기만의 전략을 짜고 있었던 셈이다. 윈터 회장을 살해한 것도 그였다. 윈터 회장이 비밀계좌를 눈치채자 달리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더 큰 문제가 터졌다. 윈터 회장의 부인인 리와 자기 사람이라 생각하고 버로우 내셔널 은행에 심어놓은 허벌까지 비밀계좌의 비밀을 알아낸 것 이다. 그는 어쩔 수 없이 윈터 회장의 부인까지 납치하려 했지만 실패하고 만다. 납치 실패로 중동 부호들은 계획이 틀어졌다 판단한다. 그리고 마침내 '달러로부터의 탈출'을 시작한다.

"우리는 이제 귀 은행에서 모든 자금을 빼려 합니다. 우리 자금으로 매입된 모든 자산을 매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비밀이 탄로났음을 안 중동 부호들은 미국의 거래 은행 모두에 동일한 요청서를 보낸다. 다음날 아침, 미국은 물론 세계경제는 또 다시 격렬하게 요동을 친다. 달러는 폭락하고 금값은 치솟는다. 혼란에 빠진 주요 국가들의 중앙은행들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알 수 없다. TV 뉴스에서는 슬픈 표정의 앵커가 등장해 뉴스를 전한다. "이제 세계는 대공황을 피할 수 없을 것 같다"며 "어쩔 수 없이 미국은 기축통화국의 지위를 잃었다"는 것이다. 영화는 돈을 찾기 위해 은행 앞에 긴 줄을 늘어선 시민과 길거리로 나선 노동자들의 공황상태를 전하며 끝을 맺는다.

영화의 원 제목 <롤오버(Rollover)>는 영화 곳곳에서 핵심 중개자 역할을 톡톡히 해 낸다. 단단히 꼬인 실타래를 단숨에 풀어낸다. 그래서인지 <화려한 음모>라는 한국 제목은 더 뜬금없어 보인다. 영화 전반적으로도 맞지 않고 의미를 찾기도 힘들다. '롤오버'를 일반 사전에서 찾는다면, 명사로는 '차량 등의 전복'이란 의미를 갖고 있으며 동사로는 '뒹굴다'는 의미를 갖는다. 경제용어로서의 용법도 나온다. '채무 등의 만기 연장'과 '복권 등의 당첨자가 없을 때 당첨금을 다음 회로 넘기는 것' 등의 의미가 있다.

그러나 영화 <화려한 음모>에서 등장하는 이 단어를 사전식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특히 경제영화이니 '만기 연장' 등 일반 경제용어로 이해하려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면 오히려 낭패를 보기 쉽다. 영화에서의 '롤오버'는 금융, 특히 외환 관련 용어로 쓰인다. '롤오버'는 한 마디로 은행 간 이뤄지는 통화(currency) 거래 또는 예금을 의미한다. 이를테면 미국의 A은행이 보유 달러를 엔화로 바꿔 일본 B은행의 계좌에 넣어두는 행위다. 물론 그 반대도, 그리고 다른 나라 은행의 계좌를 갖는 것도 가능하다.

이유와 목적은 간단하다. 저금리 통화를 고금리 통화로 바꿔 더 높은 이자를 챙기겠다는 것이다. 미국 금리가 1%인데 일본 금리가 2%라면 미국의 은행들은 보유 달러를 가급적 많이 엔화로 바꿔 일본 은행에 넣어두려 할 것이다. 1% 금리차이면 얼마 아닌 것 같아도 액수가 커지면 이자 규모도 커진다. 100만원의 1%면 1만원이지만 100억원의 1%면 1억이다. 롤오버의 이자 계산은 하루 단위로 이뤄진다. 그야말로 거저먹기 장사나 다름없다. 금리차가 크다면 은행들은 돈이 생길 때마다 롤오버를 하려 할 것이다.

돈에 민감한 금융권에서 이처럼 쉬운 돈벌이를 놓칠 리 없다. 특히 자국의 금리가 낮아 돈을 맡겨둘 곳이 별로 없다면 더 좋은 재테크 수단이 될 수 있다. 1990년대 거품 붕괴 이후 금리가 낮은 일본에서 엔화를 빌려 미국 등 해외 은행에 그 나라 통화로 맡기는 것이 유행했던 때를 생각해 보라. 엔화를 중심으로 이뤄진다 해서 '엔 캐리 트레이드' 또는 일본의 아줌마 부대들이 대거 이 재테크 수단을 사용했다는 점에서 '와타나베 부인 재테크'란 용어가 붙어 있다.

한편으로 아주 간단하고 쉬워 보인다. 하지만 늘 그런 것은 아니다. 무조건 돈벌이가 되는 장사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 외환시장 롤오버도 신경 써야 할 게 적지 않다. 무엇보다 환율 변동이 두렵다. 갑작스러운 환율 변동 시 자칫 큰 손실을 볼 수 있다. 환전 수수료 등 부대비용도 생각해야 한다. 금리 차이가 크지 않다면 앞으로 남고 뒤로 밑지는 장사가 될 수도 있다. 정치ㆍ사회적 혼란도 변수다. 금리가 아무리 높다 해도 정국이 수상하거나 사회혼란이 심한 나라에는 투자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이제 영화 속에서 롤오버가 맡은 역할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앞서 말했듯 영화 속 '롤오버'는 스토리 라인에서 몇 차례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첫 번째 역할. 허벌은 롤오버의 문제로 맥스웰의 금융 음모를 알아낸다. 허벌은 중동에서 들어온 오일 달러 9500만 달러를, 당연한 일이지만, 롤오버하려 했다. 단 하루만 맡겨도 이자가 쏠쏠하니까. 그러나 상급은행 행장인 맥스웰의 지시는 달랐다. "그냥 갖고 있으라"는 것 아닌가. 이상한 낌새를 느낀 허벌은 맥스웰의 뒷조사를 했고 이를 통해 마침내 그가 주도하는 금융 음모을 알게 된다. 맥스웰은 비자금 계좌를 만들어 달러를 금으로 바꿔치기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새로 들어 온 9500만 달러도 비자금에 넣어 둘 요량이었다.

두 번째 역할은 더 결정적이다. 맥스웰은 자기의 비리가 들통나자 허벌에게 롤오버를 허락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돈 일부인 500만 달러는 남겨둔다. 황금 구입을 위한 비자금 운영은 계속하겠다는 의미였다.

윈터 회장 부인 리도 이 사실을 알게 된다. 바로 이 대목에서부터 파국이 찾아온다. 일이 들통날까 두려웠던 맥스웰은 마지막 수단으로 윈터 회장의 부인을 납치하려 한다. 허벌은 어느 정도 타협이 가능하다 판단했으나 윈터 부인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계획도 실패로 끝난다. 그 직후 중동의 부호들은 작전을 바꾼다. 이제 비밀계좌도 은밀한 비자금 운용도 필요 없다. 맥스웰의 계획모두가 들통 났고 실패했다는 사실에 미국 달러를 송두리째 빼내려 한다. '달러 투매'가 이뤄진 것이다. 달러는 폭락하고 세계경제는 다시금 위기로 치닫는다. 이 상황을 견디지 못한 맥스웰의 삶도 결국 자살로 끝을 맺고 만다.

이처럼 영화 속 '롤오버'는 그야말로 영화 전체의 맥을 바꾸는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하게 된 것이다. '롤오버'가 영화의 제목이 된 이유를 알 수 있다. 자, 이제 마지막으로 이 영화가 보여주려는 세계경제 위기의 시나리오에 대해 생각해 볼 차례다. 몇 가지 '꺼리'가 있다. 그에 대한 질문과 답을 해 보자.

첫째, 미국 금융인들의 윤리 문제다. 영화 속 맥스웰 에머리 은행장의 행위는 명백한 불법이다. 거기에 미국 입장에서는 매국 행위다. 돈벌이를 위해 다른 기업의 명의로 엄청난 비자금을 만들었고 이것이 발각되자 기업 회장을 살해하고 그 부인까지 납치를 시도했다. 중동 부호들이 투자자금을 바로 빼겠다고 하자 은행 트레이더들은 다른 고객에게 주식과 채권 등의 자산을 팔아넘긴다. 이것이 가능할까? 가능하다. 인간은 탐욕을 위해 윤리쯤은 휴지처럼 버릴 수 있는 존재다.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로 한창 돈을 벌 때 은행은 죽은 사람이나 개 이름 등으로까지 대출을 해줬던 사례가 있다.

1978~80년 주동은 격변을 겪고 있었다. 1978년 10월 이란은 격렬한 반정부시위(사진⑯)가 있은 뒤 다음해 2월 ‘이란혁명’ 발발로 호메이니가 정권을 잡았다. 그해 11월 테헤란 소재 미국 대사관앞에서 반미 시위를 벌이던 중 흥분한 학생들이 대사관 담을 넘어 직원들을 인질로 삼는 사건이 발생(사진⑰). 다음해인 1980년 9월에는 이라크가 이란을 침공, 이란-이라크 전쟁이 발발했다(사진⑱).
1978~80년 주동은 격변을 겪고 있었다. 1978년 10월 이란은 격렬한 반정부시위(사진⑯)가 있은 뒤 다음해 2월 '이란혁명' 발발로 호메이니가 정권을 잡았다. 그해 11월 테헤란 소재 미국 대사관앞에서 반미 시위를 벌이던 중 흥분한 학생들이 대사관 담을 넘어 직원들을 인질로 삼는 사건이 발생(사진⑰). 다음해인 1980년 9월에는 이라크가 이란을 침공, 이란-이라크 전쟁이 발발했다(사진⑱).

둘째, 과연 중동 부호들은 미국에서 투자 자금을 일순간 빼낼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지금은 불가능하겠지만 1980년을 전후해서는 가능했을 수 있다. 영화에서는 달러의 과다발행과 이로 인한 달러와 가치 하락을 원인으로 제시했다. 하지만 한 가지 간과한 게 있다. '달러의 무기화'다. 1973년 제4차 중동전쟁에서 OPEC은 '석유의 무기화'로 미국 등 서구에 대항했다. 1970년대 말에는 '달러의 무기화'도 먹혀들어갈 수 있었을 것이다.

게다가 당시 중동 정세는 대 혼란기였다. 1979년 2월 호메이니가 혁명으로 이란의 정권을 잡았고 그해 연말에는 혼미한 정세 속에서 이란의 과격파 학생 시위대가 이란 내 미국 대사관을 점거한 일까지 벌어졌다. 이른바 '이란의 미국 대사관 인질 사건'이다. 다음해인 1980년에는 더 큰 일이 터졌다. 이라크가 이란을 침공, 이른바 이란-이라크 전쟁이 벌어졌던 것이다. 얼마든 '달러의 무기화'를 생각할 수 있었을 것 같다. 물론 그에 따른 대가도 무시무시할 것이다.

셋째, 달러 폭락이 두려운 중동 부호들은 과연 달러 자산을 금으로 바꿀 수 있었을까? 이건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달러 가치와 금값은 보통 거꾸로 간다. "금은 인플레의 헤지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은 그래서 가능하다. 달러 가치가 하락이 우려되면 금으로 자산을 옮긴다. 더 중요한 것은 금으로 자산을 옮기려 한다면 달러 가치가 하락한다는 점이다. 그러니 이런 말도 가능하다. 달러 가치가 하락하거나 폭락하는 게 싫은가? 그럼 금값을 잡아라!

앞뒤 논리가 이런 탓에 미국 연준도 금값 상승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어느 수준까지야 괜찮지만 이 수준을 넘어서면, 앞서 말했듯, 달러의 수요처가 준다. 달러 가치는 하락하고 자칫 폭락할 수도 있다. 금값이 지속적으로 상승하면 어느 순간 '패닉'에 도달할 수 있다. 달러에 대한 '패닉 셀(panic sell)'과 금에 대한 '패닉 바잉(panic buying)' 상황이 올 수도 있는 것이다. 이때가 위험하다. 달러의 폭락은 막을 수 없을 테고 급기야 달러는 기축통화로서의 지위를 잃게 될 수도 있다.

이와 관련해 세계 금시장은 아주 놀랄만한 경험을 갖고 있다. 2008년 서브 프라임 모기지 이후의 일이었다. 경제위기를 맞은 연준은 돈을 풀어대기 시작했고 당연히 금값이 올랐다. '양적 완화'라는 이름으로 엄청나게 달러를 풀었으니 또한 금값도 엄청 뛰었다. 2007년 온스 당 700달러 수준이었던 금값은 2011년 8월 1800달러까지 치솟았다. 4년 사이 3배 가까이 뛰었던 것이다. 이때 역시 금값 상승은 연준에게 부담을 줬다. 달러 가치가 하락하고 있었던 탓이다.

연준은 더 이상 금값 상승을 묵과할 수 없었다. 시장 개입이 시작됐다. 2013년 8월 연준은 기습적으로 금시장에서의 증거금을 22%나 올렸다. 하지만 금값은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자 한 차례 더, 그것도 처음보다 더 많은 27%를 올렸다. 그래도 금값은 꿋꿋했다. 연준도 물러서지 않았다. 이번에는 단기 금리를 올렸다. 금 대신 국채를 사라고 유도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도 금값이 떨어지지 않았다. 떨어지기는커녕 더 올랐다.

이후 연준은 한 차례 더 단기금리를 올렸지만 금값은 또 오르고 말았다. 시장은 연준의 정책을 우습게 보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하지만 연준은 시장에 결코 지지 않는다. 연준이 시장과 싸울 무기가 한 두 개가 아니다. 2013년 4월 12일 연준은 마지막 카드를 던졌다. 보유 금을 시중에 한꺼번에 풀어버린 것이었다. 정말 센 카드였다. 이날 하루에만 금시장에 나온 물량은 1100t. 한 해 세계 금 채굴량이 2000t 전후임을 감안하면 연준이 내놓은 물량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온갖 정책에도 고공행진을 거듭하던 금값은 이날 이후 마침내 떨어지기 시작했다. 2016년 들어 금값은 다시 1000~1100달러 수준으로 내려갔다. 금을 둘러싼 시장과의 싸움에서 승리는 연준에게로 돌아갔던 것이다. 시장은 이후 이 날을 '황금 대학살의 날'이라 부르며 패배의 맛을 곱씹고 있다.

영화 <화려한 음모>는, 필자가 보기에, 꽤 괜찮은 영화다. 감독, 배우, 시나리오, 플롯 대부분 크게 문제 삼을 게 없다. '금융'이라는 딱딱한 소재가 메인 디쉬인 탓에 사이드 디쉬도 맛깔스럽다. 로맨스와 스릴, 서스펜스, 액션 등 대중의 기호에 맞는 반찬이 차려졌다. 물론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최소 두 가지를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영화가 어렵다. 그것도 너무 어렵다. 이유는 용어다. 국제통화시장에서 통용되는 '롤오버'의 뜻을 알고 영화를 보는 관객이 몇이나 될까? 같은 금융 영화지만 아담 매케이 감독의 2016년 작 <빅 쇼트>와 비교해 보라. 벌거벗은 마고 로비가 욕조에 앉아 '서브 프라임 모기지'를 설명한다. 관객용 서비스다. 설명해도 어려울 거라고? 잘 모를 거라고? 마고는 이 같은 우려를 한 방에 날려 보낸다. "서브 프라임 모기지요? 그건 다른 거 아니에요, 똥이에요, 똥!" 서브 프라임 모기지라는 어려운 경제 용어를 이보다 더 쉽게 설명할 수 있을까? 확실히 <화려한 음모>의 파큘라 감독은 메케이 감독에 비해 너무 심각하고 진지하다.

둘째는 캐스팅이다. 제인 폰다라는 전설적 배우와 당대 포크계를 리드하던 크리스 크리스토퍼슨이라는 싱어송 라이터가 주연을 맡았다. 인기 가수 크리스를 보고 싶어 영화관을 찾은 관객도 꽤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두 주연 배우의 카리스마가 떨어진다. 확실히 연기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요즘말로 '케미'가 문제라고나 할까. 어쨌거나 두 배우는 서로 어울려 보이지 않는다. 이처럼 주연이 두드러지지 않으니 조연에 묻혀 생기가 떨어져 보이기까지 한다. 올리버 스톤 감독의 1988년 작 <월 스트리트>와 비교해 보라. 뚜렷한 차이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 영화의 주연 마이클 더글러스가 왜 그해 아카데미와 골든 글로브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았는지 이해가 된다.

이 같은 문제가 있지만, 그럼에도 필자는, 이 영화 <화려한 음모>가 여전히 '현대 금융영화의 시조'라는 타이틀을 받아야 한다고 본다. 우리는 이 영화를 통해 1970년대 달러 및 세계경제의 위기와 그 위기의 탈출법, 그리고 위기의 탈출 뒤 발생하는 또 다른 공포를 읽을 수 있다. 영화를 보면서 느낀 또 하나의 사실은, 확실히 경제는 변증법적으로 움직인다는 점이다. 하나의 문제가 해결되는 순간 그 해결 방안은 이미 그 방안 자체를 무너뜨릴만한 심각한 모순을 잉태한다. 하나의 문제가 해결되는 순간 또 하나의 새로운 문제가 출현하는 것이다. 변화에는 끊임이 있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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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광 이코노텔링대기자 ❙ 한양대 미래인재교육원 겸임교수❙전 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 특임교수❙사회학(고려대)ㆍ행정학(경희대)박사❙경기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뉴욕주립대 초빙연구위원, 젊은영화비평집단 고문, 중앙일보 기자 역임❙단편소설 '나카마'로 제36회(2013년) 한국소설가협회 신인문학상 수상❙저서 『영화로 쓰는 세계경제사』, 『영화로 쓰는 20세기 세계경제사』, 『식민과 제국의 길』, 『과잉생산, 불황, 그리고 거버넌스』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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