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루는 박 대통령에 자유분방한 유일한 사람" … 韓銀 ' 경기하강' 보고때 박통 면전서 직접해명
대통령 휴가지도 자주 동행…청와대 독대가 술자리로 이어지고 쓰루의 혜화동집서 마무리 술판
경제수석과 농수산부 장관을 지낸 정소영 씨는 "박 대통령 앞에서 김 부총리만큼 자유롭게 행동한 부하도 드물 것"이라며 이런 일화를 들려주었다.
"왜 당시엔 박 대통령이 직접 주재하던 월간경제 동향 보고회가 있었지 않습니까. 중앙청 1층 홀에서 열리곤 했는데, 박 대통령이 워낙 경제에 열성적이시니 경제관료들에겐 긴장감이 감도는 행사였죠. 한번은 회의에서 한국은행 측이 GNP 추계를 브리핑하면서 '경기가 하강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했어요.
경제팀장인 쓰루에게는 뜨끔한 얘기였죠. 아니나 다를까 김 부총리가 '가만있어' 하면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라고요. 그러더니 박 대통령 앞에 다가가 갑자기 볼펜 하나를 빼들어요. 그리고 '각하, 이게 무엇입니까'라고 물어요. 각하가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는 표정으로 '볼펜 아닌가'라고 답하자 김 부총리는 '각하, 이게 분명히 볼펜인데 이걸 전봇대라고 우기는 사람이 있습니다'라고 하는 거예요. (최우석 증언)
그러고 나선 GNP, 제조업 가동률, 물가, 고용, 수출량 등 각종 경제수치를 대면서 일사천리로 뭔가를 열심히 설명하는 거예요. 그리고 마지막엔 '각하, 절대로 놀라지 마십시오. 볼펜을 볼펜으로 봐야 합니다. 경기 하강이란 건 말도 안 됩니다' 하고 앉더라고요."
"그 표정과 어조가 얼마나 자신감이 넘치고 박진감이 있는지 누구도 이의를 달기 어려웠다. 나중에 식사 때 박 대통령도 '김 부총리 말에 반박하다가는 큰일 나겠어' 하고 웃었다 한다."(최우석 증언)
"(쓰루가 경제수석 때부터) 대통령이 진해 같은 데에 며칠 휴가를 가실 때 쓰루가 자주 동행했다. 부총리 재임 중, 박통과는 수시로 통화하거나 대통령 집무실로 호출당하곤 했다. 점심시간에는 같이 식사하자고 부르고, 오후에는 업무 협의차 수시로 부르곤 했다. 한번 가면 함흥차사라는 게 문제였다. 부총리 비서실이 청와대에 전화해서 알아보면, '아직도 두 분이 말씀 중이다'고 하고. 퇴근시간이 다 되어 다시 전화해보면, 이젠 '두 분이 저녁 드신다'고 했다. 쓰루가 말을 재미있게 하지 않나? 그래서 두 분이 대화를 하다 보면 시간이 길어지고, 저녁도 길어졌다. 술에 곤드레만드레 취하는 일이 잦았다. 2차, 3차 후 혜화동 쓰루 집에까지 술판이 이어지곤 했다. 이런 때는 쓰루 부인 김 여사가 두 사람을 술 접대했고 또 박통, 쓰루, 김 여사 모두 일본 말에 능통해 서로가 통하는 바도 적지 않았다. …… 임기 후반에는 청와대에 불려 가는 일이 더 잦아졌다."(엄일영 증언)
"김 부총리는 몸이 안 좋아 술을 조심해야 했지만 박통과의 술자리는 피하지 않았다. 술자리에서 농담도 잘하고 노래를 잘 불렀다. 박 대통령은 담백하고 재미있는 김 부총리와의 술자리를 좋아했다 한다."(최우석 메모 및 증언)
박통이 쓰루에게 속을 털어놓을 수 있었던 이유 중의 하나는 그가 정치적 야망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김종필이나 왕초 혹은 김성곤처럼 박통 자신의 공개적 신임 표시가 새끼 호랑이를 키울지 모른다는 우려가 없었다는 얘기다. 서로 간에 허물이 없고 정치적 야망이 없음을 세상이 다 알다 보니, 그는 박통으로서는 드물게 진한 농을 던질 수 있는 사람 중의 한 사람이었다.
쓰루가 경제기획원 관리들에게 승진시험을 자주 보게 하자 대통령은 "임자도 대통령 시험 한번 보지 그래"라고 했고 쓰루는 "다른 건 몰라도 시험이라면 대통령도 자신 있습니다"며 받아넘겼다는 일화도 있다.(중앙일보 1991년8월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