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21:20 (금)
[독점 연재] 김학렬 일대기(37)남덕우 재무장관의 내공
[독점 연재] 김학렬 일대기(37)남덕우 재무장관의 내공
  • 김정수 전 중앙일보 경제 대기자
  • econopal@hotmail.com
  • 승인 2020.11.16 09: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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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부처 손아귀에 넣었지만 南재무 등장이후 '기획원-재무부'상하 관계에 틈 생겨
교수출신이라 평가절하했지만 정책 추진력과 남다른 정치력에 '이 친구 봐라' 경계
찾아올땐 딴청 부리며 '홀대'…남 재무는정면대결대신 우회하면서 '자기 영역' 고수
김학렬 부총리의 22년 관료 생활의 여정은 오로지 '5천년 가난'에 경제성장의 씨앗을 뿌리는 역정이었다. 평소 김 부총리는 주변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기록 하기를 꺼려한 까닭에 그의 육필 자료는 거의 없다. 칠순이 된 그의 장남 김정수 경제 대기자는 지난 수년간 그의 발자취를 더듬고 국가기록원 등 정부 자료집과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보관중인 사진 등을 뒤져 그의 일대기를 정리했다.
김학렬 부총리의 22년 관료 생활의 여정은 오로지 '5천년 가난'에 경제성장의 씨앗을 뿌리는 역정이었다. 평소 김 부총리는 주변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기록 하기를 꺼려한 까닭에 그의 육필 자료는 거의 없다. 칠순이 된 그의 장남 김정수 경제 대기자는 지난 수년간 그의 발자취를 더듬고 국가기록원 등 정부 자료집과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보관중인 사진 등을 뒤져 그의 일대기를 정리했다/이코노텔링 그래픽팀.

쓰루가 함부로 할 수 없는 경제장관이 한 명 있었으니, 바로 남덕우 재무장관이었다.

왕초처럼 쓰루도 부총리 때 대통령에게 건의하여 자신의 경제팀을 구성할 수 있을 정도로 대통령의 신임을 받았다. 그러나 재무장관만큼은 그가 골라 쓸 수 없었다. (그가 1969년 10월 '쓰루 팀'을 구성하는 개각 때 대통령에게 재무장관감으로 천거한 사람은 경과심 위원인 이기준 국민대 교수와 조익순 고려대 교수 두 명이었다.)

"처음엔 교수 출신이라 쉽게 보았으나 보통이 넘는 정치력과 내공을 보이자 '이 친구 봐라' 하며 놀라워했다. …… 그래서 김 부총리는 남장관을 테스트하기 위해 잽을 자주 넣었다. 남 장관이 부총리실로 찾아오면 일부러 엉뚱한 전화를 걸거나 모른 체하는 등의 수법을 쓰기도 했다. …… 더러 신문지상을 통해 기획원과 재무부가 공방전을 벌이기도 했다. 성질 급한 김 부총리가 정면으로 나서 반박을 하려는 것을 참모들이 겨우 말려 기획원 예산국장이 대신 싸우게 했다."(최우석 증언)

1971년 양대 선거를 치른 후 물가상승세가 확연히 고개를 들기 시작하자, 쓰루는 다시 합동기자회견 등으로 정부의 물가안정에 대한 정부의 일치된 강한 의지를 보이려고 애썼다. (매일경제 71.6.28) 공동기자회견에 참석한 이 상공과 남 재무의 맥빠진 태도와 특히 김성환 먼 산을 쳐다보는 듯한 김성환 한국은행총재의 모습이 당시 쓰루와 경제상황에 대한 경제부처의 인식을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1971년 양대 선거를 치른 후 물가상승세가 확연히 고개를 들기 시작하자, 쓰루는 다시 합동기자회견 등으로 정부의 물가안정에 대한 정부의 일치된 강한 의지를 보이려고 애썼다. (매일경제 71.6.28) 공동기자회견에 참석한 이낙선 상공장관과 남덕우 재무장관의 맥빠진 태도와 특히 김성환 먼 산을 쳐다보는 듯한 김성환 한국은행총재의 모습이 당시 쓰루와 경제상황에 대한 경제부처의 인식을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쓰루와 남 재무 간의 껄끄러움이 주로 그의 급한 성격에서 연유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남 재무에 대한 그의 '급한 성격'의 뿌리가 그의 강한 현실주의에 있었다는 점을 꿰뚫어 보는 이는 많지 않다.

그가 부담스럽거나 껄끄럽게 생각하고 성질까지 부린 것은 남 재무의 학식이 아니라 '학자연(然)'하는 업무 태도였을 가능성이 높다. 정책 결정을 하고 집행 단계에 들어가기 위해 한시가 바쁜 때에, 남 재무가 서로 잘 아는 정책 사안에 관해 귀에 잘 들리지도 않는 조용조용한 목소리로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다'며 장광설을 늘어놓는다는 것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을 것이다.

관련해 시중에 돌아다니던 이야기 하나가 있다. 어느 날 남 재무가 그에게 '산업 합리화' 자금 배분과 관련해 설명하고 있었다. 도중에 그가 남 재무에게 뭔가 말려들어 가고 있다고 느꼈다. 그때부터 그는 책상 위에 발을 올려놓는 등 불손한 태도로 일관했다. 30분 정도의 장광설을 펴던 남 재무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카펫 위에 서류를 집어 던지며 "이따위 식으로 국가 시책을 다뤄서 되겠소?" 하고 소리치고 나가버렸다. 잠시 후 남 재무가 부총리실에 와서 사과하는 것으로 사안은 마무리되었다는 게 얘기의 줄거리다.

그런데 이 일이 벌어지는 자리에 있었다는 정인용 전 부총리의 기억은 다르다. 화를 버럭 낸 것도, 제풀에 화가 풀려 사과를 한 것도, 남 재무가 아니라 쓰루였다는 것이다. 어느 설이 사실이든, 두 사람 사이가 그다지 부드럽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었던 모양이다.

"김 부총리가 다소 무리하게 몰아붙여도 남 재무는 정면으로 맞서지 않았다. 그러면서 끈질기게 자기 할 일은 했다. 남 재무는 박 대통령의 신임도 두터웠고 또 개인적 약점이 없었다. 나중에는 김 부총리도 남 장관의 실력을 인정하고 조심스러운 긴장관계를 유지했다."

부총리 재임 기간이 늘면서 쓰루의 장악력은 날로 강해져갔다. 업무 지식, 행정 능력, 열성 등 쓰루 개인의 능력에 대통령의 무한 신임이 결합한 결과였다. 쓰루가 발의한 사항은 국무회의 무(無)수정 통과율이 90% 수준까지 치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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