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을 만든 사람들⑩세계의 경제수도 일군 '라과디아'시장
뉴욕을 만든 사람들⑩세계의 경제수도 일군 '라과디아'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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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3.11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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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마약·부패' 3악(惡)맞서 마피아 척결…공화당원이면서 '루즈벨트' 지지… 초선의원땐 참전 조종사로 활약… 그의 사망에 뉴욕 공공건물 30일간 조기 게양하고 그의 기념우표도 발행

 미국은 1900년대 들어 세계 최강의 국가로 올라선다. 영국의 산업자본이 쇠퇴하자 세계의 돈과 물질이 '기회의 땅' 미국으로 몰려든다. 뉴욕은 이 여세를 업고 세계경제의 콘트롤타워로 떠 오른다. 1800년대의 뉴욕은 유럽 너머의 변방 그저 그런 도시였다. 그러나 가능성이 있는 도시였다.

 석유, 철강, 전기 등 신문명이 새로운 시장을 찾아 이 곳으로 몰리고 그 관련 산업들이 이 곳을 통해서 꽃을 피운다. 뉴욕은 하루가 다르게 변모했다. 경제규모는 단숨에 유럽의 도시들을 뛰어 넘었다. 1차 세계대전을 거치고 2차 세계대전을 치르는 사이 뉴욕은 명실상부한 세계의 경제수도로 재탄생한다.

라과디아 뉴욕시장은 당은 달랐으나 프랭클린 루즈벨트와 죽이 잘 맞았다. 부패와의 전쟁과 저소득층 지원에 공동전선을 폈다. 공화당원이면서도 민주당 출신의 대통령을 도왔고 그 대통령은 뉴욕의 재건에 연방정부의 막대한 예산을 지원했다. 160cm가량의 단구인 라과디아 시장(왼쪽)이 루즈벨트 대통령과 담소하는 장면. (미국립기록보존소)
라과디아 뉴욕시장은 당은 달랐으나 프랭클린 루즈벨트와 죽이 잘 맞았다. 부패와의 전쟁과 저소득층 지원에 공동전선을 폈다. 공화당원이면서도 민주당 출신의 대통령을 도왔고 그 대통령은 뉴욕의 재건에 연방정부의 막대한 예산을 지원했다. 160cm가량의 단구인 라과디아 시장(왼쪽)이 루즈벨트 대통령과 담소하는 장면. (미국립기록보존소)

이런 뉴욕의 초석을 놓은 사람은 이탈리안 작은 사나이였다. 그의 이름은 라과디아. 뉴욕시장을 세번이나 연속 당선돼 12년간 시정을 이끈다. 그것은 뉴욕의 축복이고 미국의 행운이었다. 라과디아는 뉴욕 맨해튼 전통적인 동네인 그리니치 빌리에서 1882년에 태어났다. 어린시절은 잠시 애리조나에 자랐다. 아버지는 이탈리안, 어머니는 유대인계 이탈리안이었다. 그런데 아버지가 젊은 나이에 사망한다. 미 육군에서 밴드마스터로 일했던 아버지는 군에 납품한 불량 식품을 먹고 사망한 것이다.

 이 비극은 그에게 정신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굳은 결심을 갖게 한다. 훗날 그의 공직부패 척결에 누구 보다 앞장서는 기폭제로 작용한 것이다.

 아버지의 죽음 후 라과디아는 유럽지역 미국대사관 영사관에서 근무한다. 그 덕에 유대인어, 이탈리아어, 독일어, 프랑스어, 헝가리어, 크로아티이아어에 능통했다. 귀국후 뉴욕대학에서 법학을 전공, 1910년 뉴욕대 졸업 후 뉴욕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다.  이민노동자 등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무료 법률서비스와 변론을 맡는다. 이를 발판으로 그는 정치에 입문, 당시 가장 문제지역중 한 곳인 이스트 슬럼가에서 1916년 공화당 후보로 하원의원에 당선된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그는 의원직을 사임하고 전쟁터로 나간다. 미군장교로 임관하여 폭격기 조종사로 이탈리아 전선에 참전한다.

 1차대전 종전 후 귀국, 1919년에 하원의원에 재선된다. 열정적인 의원으로서 여성참정권 옹호, 미성년자 노동 금지, 근로자들의 복지입법 등에 앞장섰다. 공화당의원이면서 공화당 정책에 반하는 진보적인 성향을 보였던 그는 민주당 아성인 뉴욕에서 공화당 후보로 시장직에 도전한다. 이미 시장직에 도전했다가 쓴잔을 맛본 이후다. 절치 부심하던 끝에 당내 라이벌이 스캔들로 인해 후보사퇴하는등 선거전은 혼전였다. 한마디로 진흙탕 싸움였다. 난타전끝에 중산층인 독일계 이민자들의 지지에 힘입어 현직 민주당 후보를 누르고 당선된다.

 1930년대 뉴욕은 대공황으로 경제파탄에 빠진다. 사람들은 헐벗고 굶주렸다. 도시의 밤은 물론 낮까지도 마피아들이 주름잡았다. 살인, 매춘, 도박이 판치는 암흑의 도시였다. 그 시절에 시장직을 맡았다. 1934년 그는 시장에 취임하자마자 마피아에 선전포고를 한다. 곧바로 부패한 경찰조직도 개편한다. 마피아의 주수입원이었던 슬롯머신 도박장 소탕에 들어갔고, 뉴욕마피아조직의 두목인 찰스 루치아노(Charles Luciano)를 전격 체포한다.

 결국 마피아 조직을 와해시킨다. 뉴욕 감옥에서 복역 중이던 루치아노는 1946년 이탈리아로 영구 추방된다. 그는 공직부패와 특권 척결을 위해 누구보다 앞장서 강하게 맞부딪쳐 싸웠고, 평생을 통해 빈곤층과 억압받는 사람들을 위해 발벗고 나섰다. 시장 재임기간내내 뉴욕시의 행정업무를 그림자처럼 조종, 지배하던 민주당 지지 정치세력인  태머니 홀(Tammany Hall)과도 맞섰다. 그의 순수한 열정과 노력에 뉴욕시민들은 물론 그의 정적들마저 신뢰를 보였다.

공화당원인 라과디아는 1932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나선 프랭클린 루즈벨트의 '뉴딜(New Deal) 정책'에 적극 찬성한다. 국가는 자유방임주의 원칙을 포기하고 경제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했다. 실업자 구제와 경제 구조와 관행을 철저하게 변혁해야 한다는 주장에 동조했다. 그의 이런 소신을 눈여겨 본 연방정부는 뉴욕의 공공사업에 소요되는 막대한 예산을 지원한다. 공항, 지하철, 공원, 교량, 주택, 의료시설 등을 대폭 확충했다.

 라과디아는 다혈질 성격에다 지나치게 노동자 편에 선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는 또한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히틀러를 세계평화를 위협하는 광신자로 공개적으로 몰아세우며 해외파병 근무를 희망했다.하지만 루즈벨트 대통령과 의회는 군인으로서 보다는 뉴욕시장으로서 뉴욕시와 미국을 위해 더 큰 봉사하라며 그의 고집을 꺾느라 곤혹을 치르기도 했다.

1947년 9월 21일 뉴욕타임즈(New York Times)지는 한 정치인의 죽음을 애도하는 이런 기사를 게재한다.

“열정적이고 적극적이었던 그는 때로는 화재 현장에 달려 나가고 때로는 비행기를 타고 전국을 날아다니는 등 모든 문제의 현장들을 누비고 다녔다. 타고난 투사, 그의 상대가 히틀러든 길가의 시정잡배였든 상대를 가리지 않고 맞섰다. 뉴욕의 수많은 공공건물들 만큼이나 많은 역할을 했던 이 작은 거인이 숨을 거뒀다."

미국은 라과디아 시장의 업적을 기리기위해 1972년에 그의 얼굴사진을 넣은 우표를 발행했다. 라과디아는 한 사람의 열정이 어떻게 세상을 바꾸지는 몸소 실천한 정치인이자 법조인이었다.
미국은 라과디아 시장의 업적을 기리기위해 1972년에 그의 얼굴사진을 넣은 우표를 발행했다. 라과디아는 한 사람의 열정이 어떻게 세상을 바꾸지는 몸소 실천한 정치인이자 법조인이었다.

당시 뉴욕은 미국의 48개 주 가운데 가장 위험한 도시였다. 마피아를 몰아냈던 인물이 64세로 세상을 떠난 것이다. 췌장암으로 눈을 감을 때까지 온몸을 던져 뉴욕시의 부패와 폭력에 맞서 싸운 그는 법조인이자 정치가이자 행정가이다. 그의 사망 후 뉴욕시는 모든 공공건물에 30일간 조기를 게양했다.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1953년 뉴욕의 3대 국제공항 중 하나를 라과디아 공항(LaGuardia Airport)으로 명명했다. 1993년 미국 역사학자들과 사회과학자들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미국 역대 시장 중 1위로 뽑히기도 했다.

공직기간 중 수많은 일화를 남겼던 라과디아가 뉴욕시 법정에서 주재했던 빵을 훔친 노인에 대한 경범죄 재판 일화는 유명하다.

뉴욕법정은 배고픔을 못 견뎌 빵을 훔친 노인에게 유죄를 인정, 10달러 벌금을 선고한다. 그러면서 법정 안에 앉아 있는 모든 사람들을 향해 "이 노인이 빵 한 덩어리를 훔친 것은 이 노인만의 잘못이 아니다. 이 도시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도 책임이 있다. 그래서 나는 나에게도 10달러의 벌금형을 선고한다. 이 자리에 앉아 있는 여러분에게도 각각 50센트의 벌금형을 선고한다."라고 판결한 것이다. 그 노인은 벌금 10달러를 내고도 남은 47달러 50센트나 되는 큰 돈을 가지고 귀가했다. <곽용석 이코노텔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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