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0-22 10:25 (목)
세계의 명품 핸드백 제조업체의 '명품 박물관'
세계의 명품 핸드백 제조업체의 '명품 박물관'
  • 이코노텔링 고윤희 기자
  • yunheelife2@naver.com
  • 승인 2020.08.18 08: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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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몬느 핸드백 박물관 ◆

도나카란뉴욕(DKNY) 등 명품 핸드백 전문 생산업체인 시몬느가 '역사속 가방' 한자리에 모아
英에드워드 8세가 왕위를 박차고 결혼한 이혼녀 심프슨 여인의 화장품 가방 등 350여점 전시
허브향 담았던 중세 천 주머니, 다이얼백, 경매가 1억원에 구입한 에르메스 '버킨백' 눈길 끌어
뉴욕타임즈도 명소로 꼽아 … 박은관 시몬느 회장이 창립 25주년 맞아 '가방제조 자부심' 건립

'진정 사랑을 택해 왕위를 버린 것인가.' 1936년 12월 11일 밤 대영제국의 왕 에드워드 8세는 BBC 라디오 방송을 통해 충격적인 발표를 했다. 사랑하는 여인과 결혼하기 위해 국왕의 자리에서 물러나겠다고 했다.

국왕 자리에 오른지 11개월만이다. 미국인 이혼녀 심프슨과의 결혼을 위해 왕관을 버렸다. 에드워드 8세(현 엘리자베스 여왕의 큰 아버지)는 자신을 사로잡은 평민과의 결혼을 원했지만 영국 왕실과 국민들의 반대에 부딪혀 결국 왕실을 떠나 사랑을 선택했다.

핸드백에는 세계 역사의 숨결도 살아있다. 시몬느는 박물관에 전시된 핸드백 300 여점을 세계 여러 나라에서 모았다. 전시공간의 디자인은 영국 빅토리아앤드앨버트박물관 수석 큐레이터인 주디스 클락과 협업했다. 또 핸드백과 의상디자인을 결합해 입체적 전시를 하고자 유명 의상디자이너까지 동원했다/이코노텔링그래픽팀.
핸드백에는 세계 역사의 숨결도 살아있다. 시몬느는 박물관에 전시된 핸드백 350 여점을 세계 여러 나라에서 모았다. 전시공간의 디자인은 영국 빅토리아앤드앨버트박물관 전 수석 큐레이터인 주디스 클락과 협업했다. 또 핸드백과 의상디자인을 결합해 입체적 전시를 하고자 유명 의상디자이너까지 동원했다/이코노텔링그래픽팀.

이 심프슨 여인이 실제로 들고 다녔던 화장품케이스 가방이 국내에 있다. 세계 최초의 핸드백 박물관이자 뉴욕타임즈가 꼽은 명소. 바로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에 있는 시몬느 핸드백 박물관이다.

가로수길 입구에서 조금 내려가다가 왼쪽으로 눈을 돌리면 지붕이 핸드백 손잡이 모양으로 지어진 건물이 보인다. 이곳은 코치·마크제이콥스·도나카란뉴욕(DKNY) 등 내로라하는 세계 명품 핸드백을 생산하는 시몬느 박은관(65) 회장이 2012년 창립 25주년을 맞아 건립했다. 그의 '핸드백 경영' 자부심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곳이다.

이 박물관을 한 번 돌아보면 '세계 핸드백의 역사'를 한 눈에 공부할 수 있다. 16세기부터 약 500년 동안의 핸드백 디자인의 변천사는 물론 근대 서양 여인들의 생활상도 엿보인다. 패션과 핸드백은 서로 가르치고 배우면서 '성장'(敎學相長·교학상장)한 것 일까.

시몬느3층
핸드백 박물관의 모던관(3층).
시몬느4층
역사관(4층).

뜻밖에도 핸드백의 원조는 조그만 천 주머니였다. 중세기 배와 허리 둘레를 졸라매 각선을 돋보이게 하는 코르셋 속옷을 입으며 미모를 가꿨던 서양 여인들은 늘 주머니를 지니고 다녔다. 향기가 나는 허브를  담은 향낭(香囊· Sweetmeat Purse)을 몸에 지니거나  안주머니를 허

가방모양의 박물관
가방모양의 박물관 건물. 그래서 백스테이지(Bag stage)라고도 불린다. 사진=박영채.

리춤에 달았다. 왜 그랬을까. 14세기 중반 유럽을 휩쓸며 유럽인 셋 중 한 명을 숨지게 한 '천형'(天刑) 흑사병 때문이었다는 설이 있다. 중세 이전에는 유럽의 목욕탕엔 언제나 사람이 넘쳤다. 그러나 흑사병이 잦아진 후 사정이 달라졌다. 여러  의학자가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면 전염병이 쉽게 걸린다고 주장하면서 너도나도 목욕을 꺼렸다.

어떤 프랑스 왕은 13년 동안 목욕을 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목욕을 안하니 몸에서 냄새가 났다. 이를 커버하기위해 허브향이 나는 천 주머니를 몸에 지니고 다녔다는 것이다.

이 때 코르셋에다 엉덩이 부분을 풍만하게 보이게 하는 바구니 모양의 디자인을 한 '파니에'(Panier)가 유행하면서 향낭은 크기도 커졌다. 성(城ㆍcastle) 안주인의 경제권 상징이던 '열쇠 꾸러미' 주머니 등 실용적 지갑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실과 바늘 등의 바느질 도구가 담긴 '반짇고리'(needle bag)는 물론 돈을 넣으면 잘 빠져 나오지 않는 '구두쇠 주머니'가 있었다. 오페라 관람용 망원경을 넣는 지갑도 눈길을 끌었다.

사랑의 언약을 표시한 신부 주머니는 발길을 붙잡았다. 결혼을 코앞에 두고 자신의 얼굴은 물론 사랑하는 이의 얼굴을 반대편에 새겨넣었다. 시몬느가 전시품을 모으는 과정에서 반짇고리에 넣어둔 편지 쪽지가 발견되기도 했다. 어느 유럽의 할머니가 손녀에게 선물 했는지 '할머니의 사랑을 담아서'라는 글의 메모가 실제로 나왔다.  그러니까 그 반짇고리는 실제로 전달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19세기 후반에는 영국에서 귀족 등을 겨냥해 금으로 만든 동전 지갑이 나왔다. 거북이 등껍질로 만든 핸드백이 등장했고 오래된 나무로 만든 정교한 제품도 선보였다.  증기기관차가 대중교통 수단으로 자리를 잡으면서 핸드백의 크기도 점차 커졌다. 이때 가죽 등 튼튼한 소재가 쓰였는데 심지어 카펫트 천까지 사용됐다. 귀중품을 넣고 다니는 핸드백에는 도난 방지용 잠금장치가 붙어있다.

다이얼 가방
1970년대 미국서 나온 가방. 이 가방에는 전화 다이얼이 붙어있어 전화선이 있는 공공장소 등에서 전화 통화를 할 수 있었다고 한다.

세계 전쟁도 핸드백의 역사에 한 자리를 잡았다. 영국정부는 2차세계대전때 독일의 독가스 공격에 대비해 전국민들에게 방독면을 나눠줬는데 이때 이를 담은 핸드백이 생산됐다.

전화 다이얼이 붙은 핸드백(1970년대 미국)은 요즘 같으면 핸드폰 역할을 했다. 외출 중에 전화할 일이 생기면 전화선이 연결된 공중장소나 카페에서 콘센트에 연결해 통화를 했다고 한다.

20세기에 접어들면서 집안에 발이 묶였던 귀족부인들의 외출이 잦아졌다. 드디어 핸드백은 패션 아이콘으로 자리를 잡았다. 플라스틱이 개발되자 핸드백 소재와 디자인 혁신에 불을 붙였다. '명품'가방이 세계 여성들을 사로잡기 시작했다. 시몬느 핸드백 박물관에는 경매를 통해 구입한 한정판 에르메스의 버킨백이 걸려있다. 경매가는 1억원이었다고 한다. 1960년대 바캉스 붐이 일자 '바캉스 핸드백'은 젊은 여성의 로망이 되기도 했다. 

시몬느는 박물관에 전시된 핸드백 350 여점을 세계 여러 곳에서 모았다. 전시공간의 디자인은 영국 빅토리아앤드앨버트박물관 전 수석 큐레이터인 주디스 클락과 협업했다. 또 핸드백과 의상디자인을 결합해 입체적 전시를 하고자 유명 의상디자이너까지 동원했다. 수집품은 대부분 구입했다. 향낭에서 명품 베스트셀러 가방을 일컫는 '잇백'(It Bag)의 흐름을 망라했다.

특별히 제작된 마네킹전시 시리즈를 보면 시대의 변화에 맞춘 여성패션의 발자취도 가늠할 수 있다.

0914사진
시몬느가 2015년에 내놓은 독자브랜드 '0914'. 이 브랜드에는 시몬느 박은관 회장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가 숨어있다. 연인과 헤어졌다가 다시 만난 날이 9월14일이라고 한다. 사진=이코노텔링 고현경기자.

고지나 시몬느 핸드백 박물관 큐레이터는 "핸드백 역사는 여성 생활사의 한 자리를 잡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 핸드백 디자인의 변곡점이 됐던 세계 여러나라의 핸드백 등을 소장하고 있다"며 "박물관은 패션디자인 교육현장으로도 활용되고 있으며 박물관 주최의 디자인 공모전도 연다"고 말했다.

이런 핸드백 박물관을 세운 시몬느에도 애틋한 '사랑 이야기'가 전해진다. 독문학을 전공한 시몬느 박은관 회장은 부인과 사귈때 '시몬느'란 애칭을 사용했다고 한다. 독일어로는 지몬으로 발음되는 시몬느는 '당신' 또는 '이상형'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창업할때 회사명을 시몬느라고 지었다고 한다.  둘은 사귀다가 4년간 헤어졌는데 극적으로 재회했다. 박 회장이 다시 만나는 꿈을 꾼 후 서울 시내를 배회하다가 둘이 자주갔던 커피숍에 들렀다. 그런데 기적처럼 '그녀'가 나타났다고 한다. 시몬느가 5년전에 독자 브랜드로 출시한 '0914' 핸드백은 두 사람이 다시 재회한 날을 브랜드명으로 붙였다고 한다. 그 날에 0914 브랜드 선포식을 했다.

그러니까 영국 에드워드 8세는 사랑을 위해 왕위를 버렸지만 박 회장은 '시몬느'와 재결합하고 회사 '시몬느'는 세계적 핸드백 생산업체로 성장했다. '시몬느'는 박회장에겐 '행운의 여신'이 아니었을까.

박은관 회장
시몬느 박은관 회장은 핸드백 제조업체 경영에 대한 자부심을 시몬느 박물관에 표출했다고 한다. 박물관 3층에 위치한 모던관에 들른 박 회장.

■시몬느 기업 역사 ■ 세계 명품 핸드백 열 개중 하나는 시몬느의 손을 거친 것이다.  미국 시장에선 시장점유율이 30%에 달한다. 20개에 달하는 세계 명품 핸드백 업체와 거래한다. 도나카란뉴욕(DKNY)의 제품은 32년째 만들어 공급하고 있다. 연세대 독어독문학과를  나온 박은관 회장은 국내 가방 제조업체의 수출부장으로 활약하다가 1987년 시몬느를 창업했다. 원양어선 사업을 하는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딱 3년만 세상을 배우겠다며 취직했는데 이탈리아 등지로 해외출장을 다니면서 패션에 눈을 떴다. 그 길로 창업했고  처음부터 넘기가 사실상 불가능해 보였던  장벽과 맞섰다.

내로라하는 가방제조업체들도 명품 생산에 나서기 어려울 때였는데 창업 초기에 그는 DKNY를 직접 찾아갔다. 명품 가방을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면서 가방제조 기술 시험을 자청했다. 자신이 가져간 제품과 실제 판매되는 제품을 섞어 놓고 가방을 골라 달라고 했다고 한다. 그렇게 생산기술을 인정받아 생산 주문을 받기 시작했다. 아시아기업으론 처음으로 명품 가방을 생산한 것이다.

납기는 누가 뭐래도 지켰다. 시간이 없으면 비행기로 보냈고 그것도 어려우면 가방을 들고 갔다. 신뢰가 쌓이자 명품 업체 인사들로부터 가방생산 걱정을 덜어줬다는 말을 들었다. "이제 발 뻗고 잔다"(stretch my legs and good night sleep)고 언급했다는 것이다.

시몬느에는 환갑이 넘은 가방기술 장인이 적잖다. 핸드백 스타일 아카이브에는 20만종이 쌓여있다. 명품 브랜드의 외국 디자이너들이 핸드백 스케치를 보내지만 그중 대부분은 시몬느가 이미 시도했던 스타일과 유사하다 할 정도로 시몬느의 '핸드백 도안' 빅테이터는 무궁무진하다.  그게 시몬느의 자산이자 힘이다. 지난해에 매출액 1조원을 넘겼다. 이 중 10%가량 순익을 남기는 '히든 챔피언'이다. 시몬느는 제조자개발생산( ODM)업체의 한계를 넘어 '0914'를 필두로 독자브랜드 육성에 팔을 걷는 등  또다른 비상을 꿈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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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 림 ■ 이코노텔링은 정부가 코로나예방 방역조치의 하나로 사회적 거리두기 정책을 시행하자 이에 발맞춰 그간 기업규장각 섹션(박물관 취재)편집을 중단해왔으나 지난달 박물관 등의 부분 개방조치가 이뤄짐에 따라 '기업 규장각' 취재를 재개합니다. 하지만 8월 중순들어 또 다시 코로나 재유행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어 상황에 따라 취재 지속여부를 판단할 예정입니다. 이코노텔링 독자여러분의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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