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7-02 08:45 (수)
‘기간 시설의 포청천’ 고갑수 회장의 ‘건설기술인 40년’
‘기간 시설의 포청천’ 고갑수 회장의 ‘건설기술인 40년’
  • 고윤희 이코노텔링 기자
  • yunheelife2@naver.com
  • 승인 2019.06.10 12: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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댐, 철교 등 안전 시스템 구축 외길… 기술사 자격 4개, 박사 학위 소지한 ‘현장 경영인’
"나라는 군인이 지키지만 국가기간 시설을 튼튼하게 짓고 관리하는건 건설기술인의 몫"
공부 잘했지만 가세 기울어져 한 때 방황 …레코드 가게 점원, 다방 DJ하며 대학 졸업
고갑수 회장은 평생 건설현장을 누볐다. 감사원의 공직에 있을때고 건설기술인 회원으로 등록해 현장과 교감했고 이후 SK건설 부사장, 삼보기술단 회장, SQ엔지니어링 회장으로 있으면서 지하철 철로, 터널,댐 공사 현장 등에서 안전진단의 첨병 역할을 했다.  그래서 그는
고갑수 회장은 평생 건설현장을 누볐다. 감사원의 공직에 있을때도 건설기술인 회원으로 등록해 현장과 교감했고 이후 SK건설 부사장, 삼보기술단 회장, SQ엔지니어링 회장으로 있으면서 지하철 철로, 터널,댐 공사 현장 등에서 안전진단의 첨병 역할을 했다. 그래서 그는 "나라를 지키는 것은 군인이지만 튼튼하고 안전한 국가 기간 시설을 후손들에게 물려주는 것은 건설기술인들의 몫"이라고 강조한다. 그래서 건설기술인들은 '공인'이라는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3년 2월 취임하자마자 다급한 국정과제(내셔널 아젠다)부터 점검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 다듬어서 올린 국정 우선 순위와 관련한 보고서를 읽고 한가지 눈에 띄는 대목을 발견했다. 나라가 기상이변에 의한 ‘자연재해’에 거의 무방비 상태에 놓여있다는 내용이다. 감사원의 감사결과다.

한 해전 2002년에는 한일 월드컵축구대회가 있었고 그 해 12월에 대통령 선거를 치렀다. ‘월드컵 4강’의 열기가 식을 무렵, 강력한 태풍이 한반도를 덮쳤다. 바로 태풍 ‘루사’다. 순간 풍속은 초당 40m에 이르렀다. 강릉에는 1년에 내릴 비가 하루 만에 쏟아졌다. 동막 저수지가 무너졌다. 이 태풍으로 전국에서 124명이 사망하고 60명이 실종됐다. 5조원이 넘는 피해를 남겼다. 예상치 못한 기상이변의 파괴력에 모두가 놀랐다. 지금까지의 태풍피해 대책 메뉴얼을 모두 바꿔야 했다.

노 대통령은 댐 안전 문제 등을 국무회의 주요 의제로 삼아 논의하자고 지시하면서 한가지 단서를 붙였다. “모든 댐의 안전상태를 점검하려면 장관보다는 그 사안에 대해 가장 정통한 사람에게 듣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이 때 나선 인물이 당시 감사원 국책사업감사단장을 맡고 있던 고갑수 (高甲洙·71) SQ엔지니어링 대표다. 그는 대통령과 국무총리.국무위원들이 참여하는 국무회의 현장에서 한 시간 가량 전국의 댐 현장의 안전진단과 기상예보의 선진화 작업이 시급하다고 건의했다. 회의 예정시간을 넘기며 장관들의 난상토론이 이어졌다. 심지어 기상청 예산은 편성됐다가 국회만 가면 반영이 안 된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고갑수 회장(오른쪽)이 서울 신규 지하철 건설 현장에 나가 터널의 안전도를 진단하는 모습이다. 그는 요즘도 늦은 밤과 심야에 주요 기간 시설 현장을 찾아가 일을 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천생 '건설기술인'이었다.
고갑수 회장(오른쪽)이 서울 신규 지하철 건설 현장에 나가 터널의 안전도를 진단하는 모습이다. 그는 요즘도 늦은 밤과 심야에 주요 기간 시설 현장을 찾아가 일을 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천생 '건설기술인'이다.

노 대통령은 “(동막)저수지가 무너져 대한민국이 들썩거렸지만 다목적댐이 붕괴하면 세계가 놀랄 것”이라며 대책 마련을 지시했다. 고건 국무총리가 “국무총리실 산하에 TF(타스크포스)팀을 만들어 진행 상황을 정기적으로 보고하겠다”며 상황을 정리하지 않았더라면 국무회의가 더 길어질 수도 있었다.

고갑수 회장은 ‘재해대책 본부장’ 역할을 맡았다. 댐과 저수지, 도로와 철도,비행장, 해양수산 시설 등 전국의 모든 사회기반시설에 대한 대대적인 안전 점검이 이뤄졌다. 결과는 참담했다. 거의 모든 댐들의 보강작업이 절실했다. 그래서 전국의 주요 댐에 보조 수문 설치공사가 이뤄졌고 기상청의 기상예보 분석시스템이 고도화되는 전기가 마련됐다. 2002년 4월에 감사원이 발간한 ‘자연재해대비실태’의 감사결과 보고서를 토대로 ‘전국 자연재해 비상네크워크’가 구축됐다.

고갑수 회장은 “나라를 지키는 것은 군인이고 나라의 주요 시설을 지키고 유지보수하는 것은 건설기술인들의 몫”이라며 “감사원에서 30년간 봉직하면서 주요 시설의 설계와 시공이 안전하고 적절하게 이뤄지도록 노력한 것이 가장 큰 보람”이라고 말했다.

그는 감사원 퇴직 직전에 ‘국책사업 감사단장’으로 일했다. 하도 깐깐하게 안전을 강조하고 족집게처럼 설계의 허점을 지적하는 바람에 건설업계에선 ‘건설현장의 포청전’이 떴다는 말이 돌았다.

2조원 이상의 예산이 들어가는 국책사업은 그의 ‘그물망 감사’를 비켜 가지 못했다. 그렇다고 건설현장을 일방적으로 압박하지 않았다. ‘사후 감사’보다는 ‘예방 감사’에 치중했다. 특히 철로 만드는 다리나 철로 등 ‘철강구조물’이 주먹구구식으로 만들어지는 현실에 놀란 그는 제도적으로 이를 막아야 한다고 마음 먹었다. ‘균열과 붕괴’의 원인은 현장의 들쭉날쭉한 생산시스템에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철강 구조물 공장마다 등급을 매겨 인증해주는 제도를 도입했다. 또 “제값을 주고 합리적인 공사 기간을 보장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건설예산의 현실화에 노력했다. 그랬더니 철강 구조물의 질이 높아졌고 부실공사가 크게 줄었다. 고 회장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를 법으로 묶어놨다. ‘건설기술진흥법령’ 58조에는 ‘철강구조물 공장인증’제도가 명시됐다.

고갑수 회장이 전주고등학교에 다니던 시절의 사진. 그는 이 때 가세가 기울어져 급우와 담임 선생님의 도움으로 학업을 마칠수 있었다. 하지만 대학진학을 할 형편이 안되자 서울 이화여자대학교 인근의 레코드가게 점원으로 3년동안 일하며 향학열을 붙태웠다고 한다.
고갑수 회장이 전주고등학교에 다니던 시절의 사진. 그는 이 때 가세가 기울어져 급우와 담임 선생님의 도움으로 학업을 마칠수 있었다. 하지만 대학진학을 할 형편이 안되자 서울 이화여자대학교 인근의 레코드가게 점원으로 3년동안 일하며 향학열을 붙태웠다고 한다.

고 회장의 꿈은 원래 물리학자였다. 고교시절 수학과 물리 분야에 두각을 나타냈다. 하지만 가세가 기울어지는 바람에 앞길이 어두워졌다. 전주고에 합격했지만 가족은 뿔뿔히 헤어졌고 학업을 이어갈 형편이 못됐다. 학비를 내지 못해 학교에 나오지 말라는 통보를 받았다. 그때 급우들이 십시일반으로 도와 그는 학업을 이어갈수 있었다. 영어를 가르치던 담임 선생님이 건넨 ‘영어사전과 영어참고서’ 두 권은 그의 학구열에 불을 지폈다. 어렵사리 우수한 성적으로 고교를 졸업했다. 그러나 대학진학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4남2녀의 장남으로서 가장이 돼야 했다. 서울 서대문구 영천시장 인근의 달동네 단칸방이 식구 8명의 안식처가 됐다. 고 회장이 “어려울수록 가족은 한곳에 같이 살아야 한다”며 부모님을 설득했다. 지그재그로 살을 부딪히면서 희망의 싹을 틔울려고 했지만 사정은 영 나아지지 않았다.

자신도 모르게 그의 발걸음은 제2한강대교로 옮기고 있었다. 다리밑에서 무심코 흘러가는 강물을 보면서 “이렇게 살아야 하나”라는 생각이 떠 올랐다. 무기력했다. 그 때 등을 툭 치는 사람이 있었다. 서울대에 진학한 고교 단짝이었다. 자신의 인척이 운영하는 가게에서 일을 하면서 학업의 기회를 엿보자고 제안했다.

그래서 3년가량 레코드가게에서 점원 생활을 했다. 그 때 가게에 있던 레코드판 노래와 가사를 모두 외웠다. 인기 있는 팝송 노래가 담긴 레코드판을 골라서 진열했고 손님들이 원하는 레코드판을 눈을 감아도 골라냈다. 이를 지켜본 어느 노래다방 주인이 퇴근 후에 두 시간동안 노래를 틀어달라는 제안을 했다. 고 회장은 “뜻하지 않게 디스크자키(DJ)도 해봤다"며 웃었다.

 성실하게 일하는 고 회장의 자세를 지켜본 레코드가게 주인은 적어도 입학금은 대 줄테니 대학의 꿈을 포기하지 말라고 격려했다. 도전의 기회는 그렇게 찾아왔다. 독서실에 파묻혀 벼락치기 공부를 했고 1969년 대학입시를 봤다. 자신의 꿈에 맞춰 서울대 물리학과에 응시했다. 하지만 ‘학업 공백’의 벽은 예상보다 높았다. 당시 명문 공대로 꼽히던 한양대학교 토목학과로 선회했다. 1학년 학과성적도 좋았고 장학금도 받았다. 하지만 대학 생활을 이어가기 어려웠다. 심지어 주거가 일정치 못하다보니 신검통지를 제대로 받지 못해 ‘군 기피자’가 되기도 했다. 바로 파출소로 달려가 자수해 군에 입대했다. 2학년에 복학해 ‘6년후배’들과 경쟁했다. 3년 내내 전과목 올 A학점을 받아 전액 장학금을 받았다. 1976년 대기업과 조달청에 나란히 합격해 진로를 놓고 고민하다 조달청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거기서 눈에 들어 감사원으로 스카웃됐다. 하도 감사업무를 잘하다보니 상도 많이 받았다. 그의 책상에는 부상으로 받은 ‘감사원 시계’가 수북이 쌓였고 정부 훈장도 여럿 받았다. 그 때 일을 하면서도 학업을 이어갔다. 모교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건설기술진흥법령 제 59조에는 고갑수 회장이 숨결이 묻어있다. 그는 철강구조물의 안전도를 높이기위해  각 철 구조물 공장에 등급을 매겨 인증제도를 도입했다. 이를 통해 생산 현장의 표준화 작업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은 것이 바로 이 법령의 개정이었다.
건설기술진흥법령 제 58조에는 고갑수 회장이 숨결이 묻어있다. 그는 철강구조물의 안전도를 높이기위해 각 철 구조물 공장에 등급을 매겨 인증제도를 도입했다. 이를 통해 생산 현장의 표준화 작업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은 것이 바로 이 법령의 개정이었다.

고갑수 회장은 우리나라가 ‘세계의 10년이 우리의 1년’이라며 단기간에 압축성장을 하는 바람에 기초를 다지는데 소홀한 측면이 있었다고 꼬집었다. 태풍 루사의 기습이 우리의 건설현장을 돌아보는 전화위복의 기회가 됐다고 강조했다. 2003년 감사원이 총동원 돼 감사에 나섰고 그 때 우리나라 주요 기간시설에 대한 전반적인 안전진단이 이뤄졌다고 한다. 고 회장은 감사원 퇴임 후 SK건설부사장, 삼보기술단 회장을 거쳐 현재 대형SOC 안전진단 선두 업체인 SQ엔지니어링을 이끌고 있다.

그는 “인류가 움막과 토굴을 지으면서 건설의 역사는 시작됐다. 건설은 인류에게 부단히 안락한 안식처를 제공하기 위한 일이다. 그래서 건설기술인은 ‘공인’이다”는 그의 말속에 평생을 건설 현장을 누빈 자부심이 묻어났다. 그는 건축과 토목관련 기술사 자격증 4개를 갖고 있다. 공직에 있을때 부터 건설기술인 협회에 가입했고 한양대 등에선 현장 경험을 접목한 강의를 하기도 했다.

최근엔 건설관련 법령개정 등에 앞장서고 있다. 발주처 입장에서 만들어진 제도와 법령을 건설 현장과 건설 기술인의 눈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건설기술인들이 제대로 일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야 후손들에게 물려줘도 부끄럽지 않은 국가기간시설을 지을수 있고 그에 합당한 책임을 지는 시스템이 정착된다고 덧붙였다.

 요즘도 안전모를 쓰고 늦은 밤과 새벽에 서울 지하철 철로와 대형 철교 다리를 살피러 다닐때가 가장 가장 행복하다는 그는 천생 건설기술인으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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