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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연재] 김학렬 일대기(34)'왕초 리더십'에 '행정수완'접목
[독점 연재] 김학렬 일대기(34)'왕초 리더십'에 '행정수완'접목
  • 김정수 전 중앙일보 경제 대기자
  • econopal@hotmail.com
  • 승인 2020.10.26 10: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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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영 전 부총리처럼 현장중시해 학자의 논리보다 현장 실무자 의견 수용
현안 관련 장관모임 '녹실회의'통해 타부처 장악…장관 패싱해 원성사기도
김학렬 부총리의 22년 관료 생활의 여정은 오로지 '5천년 가난'에 경제성장의 씨앗을 뿌리는 역정이었다. 평소 김 부총리는 주변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기록 하기를 꺼려한 까닭에 그의 육필 자료는 거의 없다. 칠순이 된 그의 장남 김정수 경제 대기자는 지난 수년간 그의 발자취를 더듬고 국가기록원 등 정부 자료집과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보관중인 사진 등을 뒤져 그의 일대기를 정리했다.
김학렬 부총리의 22년 관료 생활의 여정은 오로지 '5천년 가난'에 경제성장의 씨앗을 뿌리는 역정이었다. 평소 김 부총리는 주변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기록 하기를 꺼려한 까닭에 그의 육필 자료는 거의 없다. 칠순이 된 그의 장남 김정수 경제 대기자는 지난 수년간 그의 발자취를 더듬고 국가기록원 등 정부 자료집과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보관중인 사진 등을 뒤져 그의 일대기를 정리했다/이코노텔링 그래픽팀.

쓰루는 '기획원 전성시대'를 일궈냈던 왕초의 리더십 유산을 되살려 이어받았다.

"부총리가 되고 나서는 자신의 장점인 행정 관료적 정확성에 장 부총리의 정치 리더십과 실천적 업무 스타일을 결합했으니 이것이야말로 김 부총리의 뛰어난 능력입니다. 그는 장 부총리라는 사람이 동시대에 있었기에 그렇게 뛰어난 리더가 되는 행운을 잡은 거죠."(황병태 전 중국대사 증언)

허황된 것은 딱 질색으로 여겼던 업무 스타일은 왕초를 빼닮았다. 그는 논리보다 사실과 현장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정책도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전형이었다. 학자들의 얘기보다 현장 실무자의 목소리를 더 우대하여 정책에 반영했다. 경과심을 통해서 익히 알고 있는 조순 서울대 경제과 교수 등도 사람으로는 좋아하는 편이었지만, 그들의 탁상공론을 경원시하고 경제 정책론자로서 그들에게 별다른 도움을 기대하지 않았다.

적확하고 효율적인 일 처리를 위해서는 필요하면 언제든 관료적 위계질서를 뛰어넘을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 행정 절차와 위계질서를 무시하고 실무자에게 직접 지시하고 일을 시키는 것은 왕초가 하던 짓이었는데, 차관 시절 쓰루가 '어두운 방에서 속닥속닥 무슨 일을 벌일지 훤히 보인다'며 가장 욕을 했던 점이었다. 그래서 자신이 부총리가 된 직후에는 남 들으라고 "나는 종합제철소 같은 큰 것만 챙기고, 웬만한 것은 차관에게 맡기겠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1970년 4월에 열린 IECOK 회의는 한편으로는 한국의 외채상환능력에 대한 해외의 의구심을 말끔히 해소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국제개발 커뮤니티로부터 한국의 3차5개년계획에 대한 자금지원을 약속 받는 자리가 되었다. 4월29일 매경 기사가 말해주듯이, 그 회의의 결과는 3차계획의 성공적 추진에 대한 쓰루의 자신감을 더욱 고양시킨 것은 당연했다
1970년 4월에 열린 IECOK 회의는 한편으로는 한국의 외채상환능력에 대한 해외의 의구심을 말끔히 해소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국제개발 커뮤니티로부터 한국의 3차5개년계획에 대한 자금지원을 약속 받는 자리가 되었다. 4월29일 매경 기사가 말해주듯이, 그 회의의 결과는 3차계획의 성공적 추진에 대한 쓰루의 자신감을 더욱 고양시킨 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그 공언은 지켜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천성이 급한 데다가 부총리가 빨리 의사 결정을 해야 하는 일이 늘어났기 때문이었다. 결국 기획원 부하 직원으로도 모자라 다른 부처의 국장에게까지 전화해 업무 지시를 하는, 차관 쓰루가 경멸하던 일 처리 방식으로 일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시어미 욕하면서 시어미 닮는다'는 옛말에서 그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는 어느 부처 담당이든, 누가 하든, 일이 빠르고 정확하게 추진되기만 하면 상관하지 않았다. 4대 핵공장을 추진할 때 이낙선 상공부 장관을 거치지 않고 직접 실무자와 이야기한다거나, 정주영 씨가 현대조선소를 건설할 때 자금 지원 문제를 남덕우 재무부 장관을 안 거치고 바로 실무자를 불러서 지시를 한 것이 그런 경우다.

"장관이든 사무관이든 업무 내용을 가장 잘 파악하고 정확하게 답변할 수 있는 상대라면 지위 고하를 가리지 않고 전화를 했습니다. 격식 파괴형 리더였어요."(엄일영 증언)

말이 좋아 격식 파괴지, 패싱당하는 부처나 사람 입장에서는 인격 무시도 그런 무시가 없었다. 쓰루는 자기가 주도적으로 추진하는 일이 관계 부처 때문에 늦어지면 직접 담당자나 그 부처 장관에게 연락하여 다그치기 일쑤였다. 포철 건설의 경우가 그랬다. 매주 진척 상황을 체크하는데, 항만이든, 교통이든, 행정 허가든, 물자든, 무엇이든 애로가 있다는 얘기만 들으면 바로 그 자리에서 관계 장관이나 담당자에게 전화를 해서 호통을 쳤다.

"천하의 호랑이가 눈을 부릅뜨고 진척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데, 감히 어느 부처 장관이 그것을 거역하겠는가? 쓰루가 이렇게 적극적으로 애로 사항을 해소해주었으니, 어찌 보면 박태준 씨가 일하기가 편했다고 볼 수 있다."(최우석 증언) 

쓰루는 왕초가 즐겨 활용하다가 박충훈 부총리 때는 그다지 활용되지 않았던, 여타 부처 장관을 장악하는 장치들을 되살려 재활용했다.

'녹실회의'가 그런 경우다. 쓰루는 왕초 때부터 악명 높았던 녹실회의를 타 부처를 장악하는 기회로 자주 활용했다. 녹실회의는 그때그때 현안과 관련된 몇 명의 장관들만 모이는 회의였다. 장관실과 붙은 부속실(치장이 녹색으로 되어 있어서 녹실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에서 열린다고 해서 그런 명칭이 붙었다. 비공개이고 극소수의 보좌진만 벽을 따라 배석하는지라, 각 장관 역량밖에 동원할 자원이 없는, 그야말로 실력(업무 파악 능력) 대 실력이 대결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그는 또 부총리가 되면서 목요일 아침마다 뉴코리아호텔에서 한은총재와 은행장, 국영기업체의 장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그 자리에서도 그는 관련 업무에 대해 속사포 같은 질문을 해서 모르거나 어물어물하면 큰 망신을 주었다. 이로 인해 목요일 새벽에는 업무와 관련된 통계를 소리 내어 외우는 사람들 때문에 호텔 로비가 시끄러웠다고 한다. 통계를 자유자재로 인용해 대답한 사람은 서진수, 김성환 등 한은 총재뿐이었다.

그는 기획원 관료뿐 아니라 여타 부처의 관료, 나아가 그 장관들까지 가르치려 들고 담금질을 했다. 그 특유의 자신감을 바탕으로 다른 제부처를 철저하게 장악했다. 숫자에 밝은 부총리에게 타 부처의 장관이 회의 석상에서 제대로 대답을 못 해서 망신을 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경제장관회의에서도 가차 없이 독설을 퍼부었다. 심지어 경제 담당정무장관을 겸직하는 국회의원에게 '고명한 경제통이신 ○ 의원께서 걸 몰라서 그렇게 말씀하실 리가 없고, 우리 실무자 놈이 설명을 잘못 드린 것 같습니다' 하고 비꼬며 옆차기를 날리기도 했다."(책'육성으로 듣는 경제기적')

어느 날 신문 1면에 '세계은행 철도차관 자금 인출 중단'이라고 대문짝만한 기사가 실렸다. (그 차관은 쓰루가 존경과 애정으로 대하는 맥나마라 세계은행 총재가 방한했을 때 체결한 특혜차관이었다!) 그가 화가 나서 조경식 외자관리과장에게 "교통부 장관 불러. 나한테 와서 보고하라고 해!" 하고 지시를 내렸다.

철도청 국장이 급히 차트를 가져와 설명을 하는 동안 교통부 장관이 부총리 옆에 앉아 있었다. 설명인즉, 당시 세계은행이 철도청에 화물기차 장비 등의 도입과 제작을 위해 5500만 달러 규모의 차관을 제공하고 있었는데, 그중 화차 관련 차관 조건은 전량을 (한국)민간기업이 제작도록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건을 낙찰받은 민간 기업이 그 상당 부분을 실수요자인 철도청에 화차 제작 하청을 맡겼다는 것이다. 그것은 차관 조건의 명백한 위반이었다. 그래서 세계은행이 한국이 더 이상 철도차관을 못 쓰게 하겠다'는 사달이 벌어졌다는 얘기였다.

국장 설명이 끝나자마자 쓰루는 옆에 앉은 교통부 장관에게 대놓고 "행정 능력 제로!"라고 소리 질렀다. 그런 소문은 그날로 전 부처에 전해지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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