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8-15 10:55 (토)
윤백호 동방특송 대표 “저가 수주? 회사 더 커졌어요”
윤백호 동방특송 대표 “저가 수주? 회사 더 커졌어요”
  • 이코노텔링 고윤희 기자
  • yunheelife2@naver.com
  • 승인 2020.07.02 13:3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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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주와 차주 모두 만족시키는 '물류 방정식' 고안 … 독립 주선업체중 선두달려
화물위치와 운송경로 등을 조합해 운송비용 아끼고 운송차량 배차 효율 극대화
운송 데이터 기반 개선 아이디어 수시 점검 … "물류혁신 멈추면 회사도 멈춘다"
올400억원 들여 물류센터 건설착수…철인 3종경기와 사이클로 스트레스 날려

'물류의 혁신가인가. 이단아인가.' 동방특송㈜의 윤백호(60)대표는 화물운송 주선업계가 주목하는 경영자다. 치열한 운송 입찰 현장에서 늘 그는 경쟁업체보다 한 푼이라도 낮게 입찰가격을 써 낸다. 그럼에도 물건을 실어 나르는 차주들에겐 한 푼이라도 더 주려고 애쓴다. 그러니 화주와 차주들의 만족도가 높은 편이다. 동방특송이 9000여 업체가 몰려있는 운송 주선업계서 눈에 띄는 이유다.

윤백호 동방특송 대표는 독특하고 차별화된 운송전략으로 전국 운송 주선업체중 가장 큰 규모의 회사를 일궜다. 그는 경쟁업체보다 낮은 가격에 운송위탁을 받고 차주들에겐 한 푼이라도 더 주면서도 이익을 내는 방법을 고안했다. 사진=이코노텔링 고윤희 기자.
윤백호 동방특송 대표는 독특하고 차별화된 운송전략으로 전국 운송 주선업체중 가장 큰 규모의 회사를 일궜다. 그는 경쟁업체보다 낮은 가격에 운송위탁을 받고 차주들에겐 한 푼이라도 더 주면서도 이익을 내는 방법을 고안했다. 사진=이코노텔링 고윤희 기자.

그런데 낮은 가격에 화물을 수주하고 운송비는 더 주고 있으니 영 타산이 맞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경영성적표는 우등생이다. 동방특송은 지난해 300억원규모의 매출을 올렸다. 거기에 매년 15억원의 영업이익을 낸다.

모기업이 없는 독립 운송 주선업체론 규모가 가장 크고 튼실한 업체로 꼽힌다. 하루 700대가 넘는 화물차가 전국을 누빈다.

올핸 한 걸음 더 나아가 물류창고업에도 도전했다. 한 해 매출을  웃도는 400억원을 들여 경기도 여주에 연건평 1만2천평 규모의 물류센터 건설에 착수했다. 회삿 돈 100억원을 투자하고 나머지 300억원은 은행에서 선뜻 빌려줬다.

경쟁업체들은 동방특송의 낮은 운송단가에 혀를 내두른다. 실제로 몇몇 업체는 손을 들어 동방특송에 흡수합병됐다. 1992년 설립된 동방특송은 창업 10년째인 2002년부터 영남의 화물운송업체 3곳을 연거푸 인수했다.

또 2011년에 온라인 화물장터인 '짐콜'이란 플랫폼을 내놔 선풍을 일으켰다. 20억원을 들여 배차솔류션을 내놓은 것이다. 언제 어디서나 휴대전화로 화물운송 주문을 하고 차주들은 실시간에 운송정보를 살필수 있도록 했다

2015년 짐콜은 화물운송 연합 콜센터인 '원콜'과 힘을 합쳤다. 원콜의 지분을 갖고 있어 매달 '배당금' 을 받는다.

이런 동방특송의 힘은 어디서 나올까. 비밀 열쇠는 다름이 아니라 윤백호 회장의 머리에 차곡차곡 쌓여있는 운송 노하우에 있었다. 지금은 물류업체의 경영자지만 그는 바닥부터 누볐다. 물건을 실어나르는 화물운송 기사로 출발했다. 고교졸업후 바로 군에 입대했던 윤 대표는 80년대 중반 사회에 나오자마자 친구가 화물운송 트럭을 운행하는 모습을 보고 트럭운전 면허를 따 두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가 쉬는 날 집 주변 공터 등에서 운전연습을 하다가 그가 화물운송을 할 때는 조수석에 앉아 따라다녔다. 그런데 돈 벌이가 좋아 보였다. 당시 정부는 200만호 아파트 건설에 착수 한데다 김치공장이 막 생겨날 무렵이어서 건설자재와 농산물 운송 물량이 넘쳐났다.

첫 저축목표액으로 '4000만원'을 설정했다. 당시 8t트럭 한 대값이다. 윤대표는 "그 당시 서울 강남 개포동 아파트 한 채를 살 돈이었다"고 말했다. 그 돈이 모이자 87년 차 한대를 구입해 물류 현장 속으로 깊게 들어갔다. 그 때 동방특송의 사훈이 된 '정직'이 힘을 발휘했다.

갈 수 없으면 갈 수 없다고 말했고 약속한 시간에는 어김없이 자신이 달려가거나 차를 보냈다. 그렇게 신뢰가 쌓이자 배송 주문이 밀물처럼 들어왔다. 화물차서 쪽잠을 자더라도 화물 주인과의 약조는 천금처럼 지켰다.

수중에 돈이 모이면서 매년 한 대씩 더 사들였고 89년에는 트럭 세 대를 굴리는 개인 운송사업자가 됐다.

윤 대표는 "그 때 농산물 유통과정을 속속들이 알게됐고 한 때 유통분야로 전업을 진지하게 생각했다"고 말했다.

동방특송은 화물주인 기업에게 물류비용을 줄이는 길을 일러 주고 차주들에겐 쉼없이 차를 굴릴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줬다. ▲화물의 위치▲배송 시각과 경로 등을 조합하고 서로 다른 물건을 함께 운송 하는 등 동방특송의 배차 '경우의 수'는 무궁무진하다. 동방특송의 고객사에는 현대중공업등 대기업이 즐비하다/이코노텔링 그래픽팀.

"농산물 유통을 하려면 농업의 생리는 물론 작황 체크를 잘 해야합니다. 바나나 익히는 기술도 살펴야 해요. 다 일일히 메모했죠. 윤달이 있는 해엔 겨울이 길다고 해요. 그 때 저장 무우나 배추가 금값이 됩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까. 이게 도박입니다. 떼 돈 벌었다가 하루 아침에 빈털털이 되는 사람도 적잖았죠. 또 도매 상인간 물량확보 싸움도 치열합디다. 속살을 더 들여다 본 후론 유통 곁눈질은 안하기로 했죠."

농산물 유통으로의 외도가 불발된 배경을 셜명한 윤 대표는 그러나 "그 경험은 다 보약이 됐어요. 저는 지금 사무실에 앉아 있어도 어떤 농산물이 어디로 가는지 머리속에서 다 그려져요. 열정을 갖고 일하다보면 판이 크게 보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니까 윤 대표의 경영 노하우는 현장에서 익힌 '유통정보'를 바탕으로 화주와 차주의 의중를 꿰뚫은 통찰력에서 나온 것이다. 윤 대표는 남들이 다 어렵게 지냈다던 IMF외환위기(1997년)와 금융위기(2008년), 심지어 그 당시 잇따른 화물연대의 파업사태(2008~,2009년,2012년)가 발생했을 때 사세를 더 키웠다고 한다.

화물운송에는 세가지 방법이 있다. 단선적으로 물건을 실어 보내는 것(유형1)은 가장 초보적인 운송시스템이다. 동방특송의 강점은 (유형2)에서 나온다. 운송경로와 화물위치를 조합해 최적의 물류설계를 한다. 나머지는 온라인 화물장터(유형3)를 활용하는 방법이다.
화물운송에는 세가지 방법이 있다. 단선적으로 물건을 실어 보내는 것(유형1)은 가장 초보적인 운송시스템이다. 동방특송의 강점은 (유형2)에서 나온다. 운송경로와 화물위치를 조합해 최적의 물류설계를 한다. 나머지는 온라인 화물장터(유형3)를 활용하는 방법이다.

화물주인 기업에겐 물류비용을 줄이는 길을 일러주고 차주에겐 쉼없이 차를 굴릴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줬다. 자연스럽게 동방특송의 문을 두드리는 업체와 차주들이 늘었다.

윤 대표는 ▲화물의 위치▲배송 시각과 경로 등을  조합했고 더 나아가 서로 다른 물건을 같이 운송 하는 등 그가 만드는 '운송 설계도' 경우의 수는 무궁무진하다.

그러니 지방에 내려갔던 기사들이 상경할 때 빈차로 올라오는 법이 없다. 그는 " '코로나 사태'가 자신에겐 또 다른 기회가 될 것"이라고 점쳤다. 윤 대표는 하나의 사례를 꼽아 설명을 이어갔다. "이를테면 판지 회사의 물건을 나를 때 단순히 그 물건만 배달하면 손익 맞추기가 땀이 나지요. 그런데 그 판지로 박스를 만드는 회사도 그 박스를 어디론가 보내야 할 것 아닙니까. 저는 그 회사로 바로 찾아 갑니다. 그 다음 그 박스에 물건을 담는 회사도 있잖아요. 우리 고객으로 만들어야죠. 이런 식입니다. 그런데 그게 말처럼 쉽지 않아요. 국정교과서 같은 곳은 10년 공을 들여 고객업체가 됐지요."

그러니까 낮은 값에 화물 수주를 하더라도 다양한 배달조합을 통해 운송의 부가가치를 높여 수익을 창출하는 구조를 만든 것이다. 영업사원들이 '사장님 우리 망해요'라며 말릴때 그는 다 계획이 있었던 것이다.

화물수주 경쟁이 날이 갈수록 치열해지자 한 때 '연봉 1억원'의 세일즈맨을 기용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별 재미를 못봤다. 윤 대표는 "운송영업을 하려면 탁월한 공감각 능력도 필요하죠. 저는 한 달 전 골프장에서 동반라운딩한 사람들의  타수를 홀마다 다 복기할 수 있어요. 물론 바둑복기도 가능합니다.  매일 저는 우리 운송 데이터를 복기합니다. 거기서 혁신 포인트를 찾습니다. 고객업체가 만족을 하지 못하면 다 헛일이 됩니다. "

윤 대표는 요즘 공을 들이는 회사가 하나 있다. 아직 정식 계약을 맺지 못한 상태지만 최근 다섯차례나 그 회사에 들렀다. 그 회사의 경영환경을 '탐사취재'한 후 자신이 직접 작성한 브리핑용 '물류 혁신의 설계도'를 들고 간다.

동방특송의 주요 거래처인 DHL은  명품이나 값비싼 물건을 많이 나르는 편이다. 자연히 운송 기사들은 백화점 출입이 잦다. 윤 대표는 "젊고 말쑥한 기사를 골라 DHL운송을 맡겨요. 그런 세심한 전략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윤 대표는 유가와 환율 등 세계의 거시경제 흐름도 꿰똟고 있었다. 또 인공지능(AI)에 의한 물류혁신에도 관심이 적잖다. 자신이 머리속에만 갖고 있던 물류혁신 경우의 수에 물류 빅데이터를 접목하는 일이다. 시대흐름에 맞게 남보다 한 발 빨리 변신하면 시장을 한 발 앞서 선점할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자라는 지식은 자문 교수에게 익힌다.

인터뷰가 진행된 서울 양재동 동방특송의 사무실엔 30여명이 일을 한다. 그런데 분위기가 절간 같다. 너무 조용해 발자욱 소리가 소음처럼 들릴 정도다. 시시각각 탁송주문과 배차를 하는 회사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윤 대표는 "합리적으로 배차를 하니 차주의 탁한 소리가 나올리 없지요. 또 고객 업체엔 주문내용에 하나 더붙여 서비스를 해주니 볼멘소리가 안나오는 편입니다. 소리가 나면 그건 뭔가 잘못된 것입니다. 아직까지 그런일이 없는데 진짜 그런 일이 생기면 비상을 걸아야죠"라고 말했다.

동방특송은 최근 지오영의 공적마스크를 하루에 500만장씩 날랐다. 그런데 단 한 장의 미스크가 분실되거나 훼손된 일이 없었다. 윤 대표는 "운송기사에게 마스크를 싣고 내릴때 전부 동영상 촬영해 보내라고 했어요. 그리곤 인수증을 받아오니 사고가 나지 않지요. 고객만족은 신뢰에서부터 나옵니다"라고 덧붙였다.

그래서 '영업의 설계도'를 그리는 일은 여전히 윤대표 자신의 몫이라고 한다.

사진2
윤백호 대표는 스포츠를 즐긴다. 그 중 가장 힘들다는 철인3종경과 사이클링에 빠져있다. 송도와 독도,제주에서 열린 철인 3종경기에 참여했고 국토종단 사이클링을 했다. 그는 구자열 LS회장의 권유로 서울사이클연맹 회장를 맡고 있고 장애인 사이클 연맹 부회장으로 있을때 어려운 이웃들과 함께 하는 생활방식을 익혔다고 한다. 이따금씩 골프라운딩도 한다.

하지만 임직원들의 일상 업무는 가급적 자율에 맡긴다. 서비스업에서 이래라 저래라 하다보면 분위기가 영 살아나지 않는다고 한다. 열정을 갖고 있을 하다보면 창업의 길도 보인다며 독립도 권장한다. 그의 집무실엔 공기청정기가 없지만 사무실 곳곳에는 청정기가 있었다.

윤 대표는 "회사에 돈을 벌어주는 사람들을 제대로 대우해야지요. 급료도 굴지의 대기업만치 주지는 못하지만 제법 제몫을 하는 사원들은 그들이 생각하는 것 못잖게 주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대면접촉이 많은 서비스 산업에서 스트레스는 어떻게 푸는지 궁금했다. 윤 대표는 1년에 공·사적인 업무로 60여일을 해외로 나간다. 최근엔 러시아 캄차카 반도에 다녀왔다. 거기서 트레킹하면서 회사 안팎의 걱정거리를 녹였다고 한다. 그런데 직업병이 발동했는지 바로 사업 이야기로 말 머리를 돌렸다.

"저는 캄차카에서 많이 나는 킹크랩이 거기선 쌀 줄 알았어요. 그런데 영 딴판이었습니다. 비쌌어요. 정부가 대부분 사가고 땅덩어리에 비해 인구가 적어 수요가 그만큼 없다는 겁니다. 물류가 다 그런겁니다. 운송 거리가 길면 시간이 더 들고 이게 다 원가에 반영되죠. 그래서 보관 창고와 거점 물류센터가 필요한 것입니다."

이런 말을 주고 받다가 그는 사이클과 철인3종 경기에 흠뻑 빠진 매니아란 점을 알수 있었다. 송도와 독도,제주에서 열린 철인 3종경기에 참여했고 국토종단 사이클링을 했다. 운송업 차제가 전국을 누비는 것 처럼 그와 딱 어울리는 운동처럽 보였다.

그는 구자열 LS회장의 권유로 서울사이클연맹 회장도 맡고 있고 장애인 사이클 연맹 부회장을 했다. 그 때 사람들이 어려운 이웃을 돌보면서 보람을 느끼는체험을 했다고 한다.

"극한 운동의 고통에서 묘한 희열을 느낄수 있어요. 그럼 바로 중독된다"며 "사이클링과 철인 3종경기에서 땀을 흠뻑 빼면 사업과 집 안팎에서 쌓인 스트레스가 어디론간 사라져요."

인터뷰 예정시간을 넘겨 점심때가 되자 사무실 지하에 있는 식당에서 국밥을 먹으면서 문답을 이어갔다.

사업을 하다보면 겪었던 좌절이나 고비가 있을법해서 물었다. 그런데 웬걸. "실패와 좌절은 없었다"는  '단호한 대답'이 돌아왔다. 창업초기야 다들 고생하는 것이고 모르는 시업에 한 눈을 안팔으니 실패할 일도 없었다고 했다.

화물운송 주선업이 그의 천직이 된 것이다. 그런데 자신은 하마터면 공무원이 될 뻔 했다고 한다. 7남 1녀 중 꼭 가운데인 4남으로 태어난 그는 윗 형님 세 분이 다 공무원이었다.  행정·교육·세무 각 분야에서 일을 해서 아버지가 은근히 검찰이나 법원 행정직 공무원이 되 길 권유했다고 한다.

그랬던 아버지가 군제대 무렵 돌아가셨는데 아마 하늘나라에서 섭섭했을 거란다. 윤 대표는 강직했던 세분 형님들이 공무원 월급으로 빠듯하게 생계를 이어가는 모습을 보고 나는 돈을 벌어야 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가 사업을 하면서 나머지 동생 둘도 사업의 길을 갔으나 '반관반민'(半官半民)집안이 됐다고 말했다. 그런데 큰 형님이 9급공무원으로 시작해 부이사관(3급)까지 승차했는데 그 과정을 지켜보면서 '도전과 인내'의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마무리 질문을 던졌다. "왜 사업 하세요." 그는 어느 사업을 해도 경영자가 지향하는 가치가 있고 성취의 목표가 있다고 전제한 뒤 말을 이었다. 자신이 거미줄 처럼 설계한 화물운송을 제대로하면 교통량은 줄고 그에 따라 배기가스가 감소하면 그만큼 공기가 맑아진다며 그것도 회사를 경영하면서 사회이바지 하는 길의 하나라고 말했다. 또 장애인과 어려운 이웃과 함께 하는 일도 좀 더 해볼 생각이라고 했다.

 윤 대표는 지금 동방특송의 한계를 뛰어 넘기위해 또 씨름을 할 것이라고 했다. 더 혁신할 여지가 많다고 했다. 혁신을 멈추는 순간 회사도 멈춘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지금도 그는 화주와 차주가 모두 만족하는 고난도의 '물류 방정식'을 풀고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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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훈 2020-07-09 15:43:01
기가차네...차주들 고혈빨아서 잘먹고 잘사는구만.에라이 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