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가 어려워져 나라가 곤경에 처할 때는 역시 기업가 정신이 절실해진다.미국은 20세기에 들어서자 극심한 불황에 빠졌고 이의 돌파구를 연 제이피 모건이라는 걸출한 기업가가 있었다. 진보 성향의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의 등장으로 기업가들은 코너에 몰렸고 자유시장경제는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25대 미국 대통령인 윌리엄 맥킨리가 한 젊은 실업자의 권총에 암살을 당하자 미국정계도 소용돌이에 빠졌다. 부통령이던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얼떨결에 대통령에 올랐다. 하지만 기업가들은 잔뜩 긴장한다. 맥킨리는 친 기업가 성향의 정치인 이었지만, 시어도어는 자본가들을 곱게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노동문제는 사회의 커다란 이슈였다. 제이피 모건이 운영중인 US스틸은 노동조합이 없었다. 경영진은 장기적으론 노조가 생길 것이라고 예상하고 미리 준비를 해야한다고 믿고 있었다. 그런데 경기가 갑자기 얼어붙어 사회적인 불안감이 확산됐다.
1907년 불황의 그림자가 엄습했다. 산업은 가릴것 없이 맥을 못췄다. 자연히 금융권부터 흔들렸다. 미국 역사상 최악의 금융공황에 빠졌다. 그때 모건이 팔을 걷었다. 그해 11월 모건의 뉴욕 자택으로 40~50명의 은행가를 불렀다. 워싱턴에 있던 재무부 장관도 동참했다. 1906년 샌프란시스코 대지진으로 시작된 달러 부족 사태가 일련의 기업 파산으로 이어지자 예금자들은 현금을 찾기 위해 은행 앞에 장사진을 쳤고 은행 간 자금거래도 마비됐다.
정부는 나설 힘이 없었다. 재정투입 여력이 없었던 것이다. 기업들은 각자도생의 길을 걸을수 밖에 없었다. 조금이라도 여유가 있는 기업들은 버텨나갔지만 자생의 길은 험난했다. 그러다보니 대부분의 기업들은 스스로 문을 닫을 수 밖에 없었다. 불황은 부실한 기업은 물론 견실한 사업체도 어렵게 만들었다.
하지만 모건에겐 다른 생각이 있었다. 이미 ‘월스트리트의 황제’였던 그는 나라를 대신해 한가지 아이디어를 냈다. 상대적으로 건전한 은행이 취약한 은행에 대출을 해주자고 말했다. 거래중단 위기에 처한 증시에도 긴급 자금을 지원했다. 모건의 자금력을 십분활용했다. 자기 회사 재건에만 매달리지 않았다. 어려운 주변 기업들은 물론 자신의 회사 US스틸의 강력한 경쟁사인 테네시 석탄철강 회사에도 도움을 준다.
금융시장에 온기가 돌았다. 불황의 그늘은 몇년동안 미국경제를 옥죘지만 숨구멍이 열린 까닭에 극복해보자는 기업가 정신이 살아났다. 경기후퇴의 태풍이 가라앉을 무렵 모건은 자유시장경제의 붕괴를 막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력한 금융지원관리체제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그런 연유로 세계경제의 컨트롤 타워인 연방 준비은행이사회가 1913년 탄생했다. 만약 모건이 안 나섰다면 미국경제는 물론 미국의 세계 지도력에도 엄청난 타격을 입었을 것이다.
미국은 19세기말과 20세기초에 국가의 자본과 힘을 키우기 위해서는 이들 대기업의 역할이 필요했고 그렇게 해서 경제기반을 다졌지만 한편으론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경제의 불확실성이 확대 됐다. 노사 양쪽의 의견을 모두 담아낼수 있는 솔로몬식 해결책은 어디에도 없었다.
모건은 어떻게 돈을 벌었나. 당시 한창 불붙고 있는 남북전쟁의 '베스트 셀러' 카빈소총을 중개 매매해 큰 재미를 봤다. 군인들에게 값싸게 총을 사들여 다시 다른 군인들에게 되팔아 큰 이문을 남겼다. 소위 총을 손에 만지지도 않고 주식투자 같은 개념으로 거래를 해 막대한 자금력을 쌓았다.또 경제가 불안해지자 한 발 앞서 금 투자를 해 억만장자 대열에 합류한다. 남북전쟁 시절 북군이 우세하면 금 가격이 떨어지고 남군이 우세하면 천정부지로 금값이 뛰었다. 모건은 이 시세 차이를 이용하여 16만 달러 (현재 가치로 수백억원)라는 어마어마한 돈을 번다. 정보력을 십분 활용했다.당시 북군의 지휘관과 친밀한 관계를 맺어 전황을 미리 파악했다.
이후, 그는 철도와 철강 사업에 투자한다. 1901년 미국 최고 갑부, 앤드류 카네기가 철강에서 손을 떼자 그 사업체를 인수했다. 바로 US스틸이다. 14억 달러라는 자본금을 갖게 되는 회사로 재탄생한다. 자본금 10억달러가 넘는 세계최초의 회사다.
그는 1913년 이탈리아 로마에서 여행 중 사망한다. 그리고 막대한 재산을 남겼다. 골동품, 미술품을 좋아했던 그는 이의 대부분을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기증했다. 나머지는 그의 개인도서관인 매디슨 에비뉴 36번가 박물관에 남아있다.
그는 벼랑끝에 몰린 나라의 경제를 되살렸다. 어려운 기업에게 돈을 지원했다. 기업과 종업원을 살렸고 나라를 구했다. 한 개인이 그런 엄청난 일을 할수 있을까. 기자가 그의 박물관을 나오면서 든 생각이다.
모건은 뉴욕에서 차로 2시간 거리인 코네티컷 주 하트퍼드에서 1837년 태어났다. 독일 괴팅겐 대학교를 졸업 후 20대 초반에 아버지가 운영하는 은행에 들어갔다. 어릴 적부터 투자에 수완을 발휘했고 그 힘을 나라를 구하는데 활용됐다. 기업인의 '사업보국'은 이런 것이 아닐까. <뉴욕=곽용석 이코노텔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