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5 07:05 (목)
[독점 연재] 김학렬 일대기(29)기획원의 '두뇌 싹슬이'
[독점 연재] 김학렬 일대기(29)기획원의 '두뇌 싹슬이'
  • 김정수 전 중앙일보 경제 대기자
  • econopal@hotmail.com
  • 승인 2020.09.21 09: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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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루의 '사람 욕심'대단… 총무처 움직여 고등고시 상위 합격자 뽑아
법제처에서 잘 나가던 전윤철 사무관(전 기획원 장관)도 전격 스카웃
안재도 그대로 두면 썪는다며 '담금질'… 경제 지표 모르면 육두문자
김학렬 부총리의 22년 관료 생활의 여정은 오로지 '5천년 가난'에 경제성장의 씨앗을 뿌리는 역정이었다. 평소 김 부총리는 주변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기록 하기를 꺼려한 까닭에 그의 육필 자료는 거의 없다. 칠순이 된 그의 장남 김정수 경제 대기자는 지난 수년간 그의 발자취를 더듬고 국가기록원 등 정부 자료집과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보관중인 사진 등을 뒤져 그의 일대기를 정리했다.
김학렬 부총리의 22년 관료 생활의 여정은 오로지 '5천년 가난'에 경제성장의 씨앗을 뿌리는 역정이었다. 평소 김 부총리는 주변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기록 하기를 꺼려한 까닭에 그의 육필 자료는 거의 없다. 칠순이 된 그의 장남 김정수 경제 대기자는 지난 수년간 그의 발자취를 더듬고 국가기록원 등 정부 자료집과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보관중인 사진 등을 뒤져 그의 일대기를 정리했다.

쓰루의 기획원은 여느 부처보다 앞서 있고, 많이 알아야 하며, 최고의 행정 능력을 가지고 있어야 했다. 최고 부처 기획원은 최고의 인재를 모아 최강의 담금질로 일궈낸 결과였다.

쓰루의 인재 모으기 욕심은 (재무부) 예산4과장 시절부터 시작되어 신생 부처 경제기획원 예산국장 시절에 본격화되었다. 차관 때에 이르러서는 부처 예산 편성권을 지렛대 삼아 총무처에서 고등고시 상위권자를 뽑아 오는 것으로 인재 욕심이 강화되었다.

부총리가 되면서는 급기야 다른 부처에서 '똑똑한 공무원' 빼앗아 오기로까지 확대되었다. 법제처 '잘나가는 사무관' 전윤철 씨(훗날 부총리 및 감사원장)가 기획원으로 뽑혀 간 사례가 그런 경우다.

최고의 인재를 모아놓았으니 기획원의 관료는 업무 능력으로 보나 행정 능력으로 보나 머리로 보나 무엇으로 보나 최고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아무리 맑은 물이라도 고여 있으면 썩기 마련'이란 걸 쓰루는 잘 알고 있었다.

부총리로 기획원에 컴백하자마자, 쓰루는 간부급 관료들에게 당시 일본을 풍미했던 자기개발서 ‘이런 간부는 사표를 써라’를 사서 돌렸다. 그것은 그후 이어질, 때로는 가혹하리만큼 혹독한 기획원 관료 담금질을 예고하고 있었다
부총리로 기획원에 컴백하자마자, 쓰루는 간부급 관료들에게 당시 일본을 풍미했던 자기개발서 '이런 간부는 사표를 써라'를 사서 돌렸다. 그것은 그후 이어질, 때로는 가혹하리만큼 혹독한 기획원 관료 담금질을 예고하고 있었다

그는 (예산을 빌미로) 총무처의 팔을 비틀어 모은 인재를 최고 최강이 될 때까지 끊임없이 담금질을 했다. 공식 석상에서 경제인들에게 대놓고 '무식한 사람'이라고 질타하는 그가 기획원 관료들을 느슨히 편안하게 내버려뒀을 리가 없다.

그의 생각으로는, 관료로서 최소한 해야 할 일은 자기가 맡은 업무에 관해 철저하게 파악하고 있는 것이었다. 거기에 조금이라도 빈틈이 보이면 그는 야차(夜叉)로 돌변했다. 결재를 할 때 만족하면 깔끔한 "베리 굿!"인데, 성에 차지 않으면 서류를 풀어 헤쳐 집어 던지기 일쑤였다. "부총리인 나도 새벽부터 일어나 서류를 챙기는데, 담당자가 그것도 모르느냐"는 식으로 다그쳤다.

"그가 업무에 임하면서 직원들에게 퍼붓는 욕설, 독설 그리고 기합은 관가에서는 단연 챔피언이었다. …… 촌놈, 바보, 무식한 놈은 점잖은 편이고 병신, 개새끼, 소새끼 소리가 예사로 튀어나왔다. 다른 부처 사람들이 있건 없건 상관없었다."

부총리 쓰루의 '계수 심문'은 매주 월요일 아침 국·과장 회의 때마다 어김없이 되풀이되었다. 한번은 그가 회의실 구석에 애써 몸을 숨기고 있는 과장을 지목했다.

"거기 숨어 있는 과장, 지난해 우리나라 국내 저축이 얼마야?"

"제 업무가 아니라 자세히 모르겠습니다."

"그런 기초적인 것도 모르면서 무슨 기획원의 엘리트 관료야? 다음, 그 옆 사람, 작년 우리나라 자본계수가 얼마야?"

이럴 때 대답을 못 하면 바로 불호령이었다.

"너 나가다가 기획원 돌담에 머리를 콱 부딪쳐봐라. 너같이 머리 나쁜 놈은 혹시 충격으로 머리가 좋아질지 아느냐" 하는 건 상대적으로 기분이 나쁘지 않을 때 내뱉는 힐난이었다.

그가 욕을 한다는 것은 그나마 그가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였다. 그에게 욕을 많이 먹은 사람일수록 승진이 빠르다는 관찰이 꽤 근거가 있었던 모양이다.

"그분한테 가장 야단을 많이 맞은 부하가 가장 잘되곤 했다. 쓰루 사무실에 들어갔다가 나올 때 보면 얼굴이 벌건데, 나중에 승진할 때 보면 다 그 사람들이 승진했다."

기획원 안에서는 직원들을 눈물이 쏙 빠지도록 야단쳤지만, 기획원 밖에서는 "기획원 과장급이면 타 부처 장관을 맡아 할 능력이 있다"고 치켜세웠다. 기획원 차관은 으레 다른 부처 장관으로 승진하였고, 국장이나 과장이 타 부처로 옮겨 갈 때는 한 직급씩 올려서 이동하는 게 기본이었다.

쓰루는 장관회의 등에서 논쟁이 붙으면 100% 기획원 담당자의 편을 들었다. 한번은 다음 날 예정된 경제장관회의를 앞두고 쓰루 주재로 보고 자료를 점검하고 예행연습을 할 때였다. 보고 내용 중에 주장과 논리가 그의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그는 자신의 주장으로 그 보고자를 다그쳤다.

다음 날 '본방' 경제장관회의에서였다. 어느 장관이 전날 그와 같은 주장으로 문제 제기를 했다. 그는 전날 기획원 보고자가 폈던 논리를 가지고 그 장관의 주장을 무너뜨렸다. 자기의 주장을 뒤집으면서까지 남 앞에서 자기 부처 직원의 체면을 세우려고 한 것이다. 그 순간 그 부하 직원은 영원한 '쓰루맨'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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