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7-13 00:25 (월)
길거리 행상서 전원주택 개발사업자로
길거리 행상서 전원주택 개발사업자로
  • 글ㆍ사진(양평)= 이코노텔링 고윤희 기자
  • yunheelife2@naver.com
  • 승인 2020.06.22 08: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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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인생 ⓘ] 블링하우징 이승현대표

학교앞서 악세사리,떡볶이 등을 팔며 '소시민의 꿈' 놓지 않아
모은 돈 3천만원 털어서 투자한 'PC방 사업' 은 보기좋게 실패
양평서 연 편의점 운영난… 찾아오는 손님마다 "나온 땅 없나"
공인중개사 자격증 따고 임야 개발 등 넘어로 배워 '안정된 삶'
"도전 많이해야 자신이 잘하고 좋아 하는 것 찾을 가능성 크다"
갖은 신고를 겪은 이승현 블링하우징 대표는
이승현 블링하우징 대표는 "자식들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 행복했으면 좋겠다"면서도 "그럴려면 도전과 실패속에서 답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사진(양평)=이코노텔링 고윤희 기자.

이승현(46) 블링하우징 대표는자신이 품었던 '소시민의 꿈'을 차근 차근 이뤄내는 경영자다.

물론 지금도 내로라하는 사업가는 아니지만 그의 꿈은 오늘도 조금씩 영글고 있다. 시작은 초라했고 거듭된 실패에 좌절하기도 했다.

가정형편상 고교졸업후 바로 생활 현장으로 뛰어 들었다.

서울 변두리 학교앞에서 몇 푼 안되는 액세서리 행상부터 했다. 돈이 조금 모이자 떡볶이로 업종을 변경해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그렇게 몇년이 지나자 수중에 3천만원이 모였다.  그때 조금 욕심을 부렸다. 30대초반에 '대규모 투자'를 했다. 빚 7천만원을 끌어들여 '1억원짜리 PC방'을 열었다. 결과적으로 한 발 느린 투자였다. 목좋은 곳에 PC방이 안들어 간 곳이 없었다. 바로 두손을 들어야 했다. 빈털털이가 된 것이다.

사진설명
이승현 대표의 출발은 초라했고 몇차례의 실패로 좌절도 느꼈다. 행상에서 전원주택 개발사업자로 올라서기까지 갖은 고생을 했다/ 이코노텔링 그래픽팀.

하는 수 없이 시골서 상경해 갖은 고생을 하던 부모님이 노년에 둥지를 튼 경기도 양평으로 갔다.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 곳으로 가는 시외버스에서 신고의 나날이 주마등 처럼 스쳐 지나갔다. 초등학교 4학년때 부모님과 함께 서울로 올라왔다. 소록도 인근의 작은섬에서 태어난 그는 부모님이 막노동으로 생계를 꾸려가는 모습을 지켜봤다.

그래도 바른 생활을 하신 부모님의 교육 덕에 비뚤지 않고 자랄 수 있었다고 생각했다. "잘됐지 뭐. 이참에 부모님에게 효도도 하고..."

부모님의 도움을 얻어 양평에 편의점을 열었다. 자금이 없던 때라 임대형식의 운영이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일은 고되고 수입은 보잘 것 없었다.

썩 입지가 좋은 곳이 아니라 손님이 적었다. 일부 손님들은 물건은 안사고 "매물로 나온 땅을 아느냐", "주변에서 유명한 부동산이 어디냐"고 물었다. 2010년 전후로 양평에 전원주택 붐이 한창 불 때였다. 그래서 아버지의 권유로 부동산중개사 자격증을 땄다.

하지만 주변지리에도 익숙하지 않고 부동산 매매경험이 없어 부동산 간판을 내건지 1년이 되도록 한 건 제대로 올리지 못했다. 하지만 땅을 사서 전원주택을 개발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면서 부동산개발에 눈을 떴다.

이참에 한 번 해보자는 의욕이 살아났다. 이번에도 무리수를 뒀다. 5억원짜리 임야 3000평을 계약금 5천만원만을 주고 사고 나머지는 분할 매각한다는 계산을 했다. 그런데 개발예정지 임야와 연결되는 길을 뚫는 일이 지지부진했다. 잔금일은  코 앞으로 다가왔다.

입이 바짝 바짝 말랐다. 땅을 산 사람들에게 책임지고 집도 지어주겠다고 약속을 했다. 가까스로 분할매각도 됐고 길도 뚫렸다. 그때 번 돈으로 난생 처음으로 그 자리에 내집마련을 했다. 그리고 2억원 가량의 수익을 올렸다.

돈도 돈이지만 자신감이 생겼다. 내친김에 집을 담보로 맡겨 은행대출을 받아 임야 4500평을 더 샀다. 그런데 땅을 사려는 사람들이 없어 자금난에 몰렸다. 그 때 귀인이 찾아왔다. 지금도 활동을 하는 연예인이었다. 집을 팔아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이 대표는 그때 "욕심은 꼭 화를 자초하는 구나"라고 생각했다. 땅의 입지를 더 살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그래서 그는 차별화된 전원주택 개발에 나섰다. 계곡이나 개울이 있는 곳을 중점적으로 눈여겨봤다. '테마가 있는 집'을 만들기로 했다.

또 체계적으로 집을 짓기위한 팀도 꾸렸다. 건축관련 주요 협력업체를 엮었다. 자연히 집도 제대로 지을수 있었다. 또 경관이 좋은 자리를 한 발 앞서 확보했다. 몇차례 개발사업이 성공을 거두면서 이젠 사업이 어느정도 자리를 잡았다.

'거칠다'는 건축현장에서 믿음직스럼게 일을 해준 지인이 독립법인을 만들때 사업자금을 지원하기도 했다. 그는 이제 더불어 희망을 꾸는 사람이 됐다. 그러면서 자포자기 하는 젊은이들을 볼 때 가장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

"부딪치면 어려움도 겪겠지만 길도 보인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은 그냥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도전을 두려워 하지 말아야 하며 그 속에서 실패를 통해 얻는 것도 있고 그것을 극복하다보면 자신의 내면에 있는 잠재력이 폭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승현 대표에게 자식들이 어떻게 커줬으면 좋겠냐고 물었다. 그는 "스스로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인생은 자기가 개척하는 범위가 넓을수록 좋아하는 일을 발견할 가능성이 커진다고 덧붙였다. 결국 도전을 멈추지 말라는 이야기로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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