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5-26 20:23 (화)
[5.18 40주년] 참혹한 현장서 묻어난 '아카시아 꽃'
[5.18 40주년] 참혹한 현장서 묻어난 '아카시아 꽃'
  • 이코노텔링 장재열 기자(청소년보호책임자)
  • kpb11@hanmail.net
  • 승인 2020.05.18 09: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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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습기자 1년 지방근무 회사방침따라 민주혁명 조우
5월 18일부터 열흘간 정신이 몽롱한 채로 취재 몰입
기자는 하루의 역사를 담는 사관(史官)이란 인식절실
언론검열의 칼이 시퍼렇게 살아있어 당시 광주 민주화운동의 현장 보도는 엄격히 규제받고 있었다. 중앙일보가 광주에 다수의 사망자가 나왔다는 내용을 보도한 내용.
언론검열의 칼이 시퍼렇게 살아있어 당시 광주 민주화운동의 현장 보도는 엄격히 규제받고 있었다. 중앙일보가 광주에 다수의 사망자가 나왔다는 내용을 보도한 내용.

올들어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코로나19 감염병과 1980년 5월 광주를 휩쓸었던 야만의 세상을 돌이켜보면 하나의 진실을 깨닫게 된다. 그것은 인간은 결국 한없이 약하고 부족한 존재라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 사회는 이런 충격적인 사건을 통해 새로운 역사를 만드는 계기를 찾아야 할 것이다. 80년 광주 주재기자로서 현장을 누볐던 나는 변곡점이 되는 사건을 성찰하고 세밀히 주시하여 우리 사회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끄는 역사의식이 절실하다고 믿고 있다.

“이제 디지털 작업이 완료되었습니다.”

2018년 5월에 5.18민주화운동기록관에서 연락을 받았다. 지난 37년간 보관했던 광주민주항쟁의 취재 자료를 기록관에 기증한 것이 최종 정리되었다는 알림이었다. 인생의 한 시점 마침표를 찍었다는 기분이었다.

40주년이 되는 올해는 5월 13일부터 10월31일까지 대한민국 역사박물관에서 ‘5월 그날이 다시오면’ 이라는 주제로 80년 그날을 보여주는 전시회가 열려 본인의 취재수첩 등이 일반에 공개되고 있다.

나는 1979년 10월25일 중앙일보 수습기자로 입사했다. 그리고 당시 회사 방침에 따라 광주로 1년간 주재기자 발령을 받았다. 중앙일보는 의무적으로 입사 1년후 전국의 지사로 파견하는 규정이 있었다.

광주항쟁이 끝난 80년 5월말 발밑을 보니 아카시 꽃이 누렇게 떨어져 수북이 쌓여있는 것이 아닌가? 어! 언제 이 꽃이 피었다 지었나? 5월 18일부터 한 열흘간 나는 사건 이외는 아무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것이다.

40년이 지나 여기저기서 전화가 온다. 혹시 헬기 난사에 대해 정확한 기록이 있느냐는 것이다. 내 취재수첩에는 헬기난사가 있었다는 소문을 기록한 내용은 있는데 언제, 어디서 누가 관련 있는지 취재가 인되어 증빙으로는 미흡하다는 것이었다.지금 생각하면 당시 기자로서 회한이 나는 사안의 하나다.

사진설명
80년 5월 광주현장에서 당시 중앙일보 취재팀이 모여 그날의 계획을 논의하는 장면. 오른쪽 맨 앞이 이코노텔링 기자(청소년보호책임자).

충분한 경험과 역사의식, 치열한 기자정신이 있었다면 보다 정확하고 의미있는 기록을 수첩에 담을 수 있었을 것이다. 후회막급이다. 그저 젊은 나이(28세)에 다람쥐처럼 돌아 다녔지 역사의 기록자라는 의식도, 다음 시대에 대한 성찰도 부족했던 것이다.

오늘날 현장에서 뛰는 기자들은 문제의식과 후일 평가를 받는다는 명제를 잊지 말고 취재에 임하기를 바란다. 하루의 역사를 담는 사관(史官)이라는 인식이 중요하다. 그래야 불의의 이면을 들여다 볼 수 있고 권력자에 놀아나지 않는 살아있는 글이 나올 것이다. 계엄 등 제약을 기자의 한계로만 여겨서는 안될 것이다. 나는 취재기자로서의 부족했던 점을 이렇게 회고했다.

“ 나는 보고도 말하지 못하고 알고도 쓰지 못했다. 죽음으로 항거한 젊은이들에게 무슨 할 말이 있을 것인가!. 제대로 사실을 알리지 못한 기자의 한사람으로 광주의 민주시민에게 사과의 말을 드린다. 17년이 지난 지금 취재수첩은 누렇게 변해 버렸다. 그러나 그 안에 담긴 현장 기자들의 땀은 오늘도 따듯하게 숨쉬고 있다고 믿는다.” (5·18특파원리포트,1997, 한국기자협회, 무등일보, 시민연대모임)

1980년 광주 · 전남지역은 당시로서는 엄청난 사건이 이어지는 참혹의 지역이었다.

6월 지하카페에서 33명이 타죽은 사건, 영산강 범람, 콜레라 · 뇌염발생 등 대형 사건이 이어졌다. 산천도 노했는지 한 여름에도 벼가 패지 않는 냉해가 발생했다. 그러나 한 가지 광주 시민은 의연했고 차분한 삶을 이어갔다. 오늘날 코로나 세상에서 우리나라가 세계의 모범을 보여주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큰 시련을 통해 변화하고 성장한다. 사회 속의 경제도 마찬가지이다. 광주민주화운동이 우리의 민주의식을 일깨웠듯 세계적 감염병의 극복으로 이후 보다 인간적이고 서로를 배려하는 경제민주화가 내면적으로, 제도적으로 자리잡기를 기대해 본다. 이제 세계의 경제를 이끌어가고 보는 시각이 전과 같을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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