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5-26 20:23 (화)
영화속'세계 경제위기 역사'(9)'더 포스트'㊤ 미국發 3대쇼크
영화속'세계 경제위기 역사'(9)'더 포스트'㊤ 미국發 3대쇼크
  • 이코노텔링 이재광 대기자
  • jkrepo@naver.com
  • 승인 2020.05.19 16: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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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전 닉슨정부 '통킹만 사건 조작ㆍ키신저의 방중ㆍ물가동결' 에 세계 경악
베트남 전쟁 개입으로 탈진한 美의 '출구전략' 공통점… 세계질서의 재편 단초

무제한 양적 완화, 유로 존(EURO Zone) 위기, 유가 하락과 감산, 그리고 미중 무역 갈등. 2020년 5월 현재 코로나19로 인해 발생된 4가지 경제 관련 핫 이슈다. 미국 연준(연방준비제도, Fed=Federal Reserve System)은 팬데믹의 위협으로부터 경제ㆍ금융위기를 막기 위해 무제한으로 돈을 뿌리겠다고 했다. 여기에는 일반 회사채는 물론 필요할 경우 CLO(대출채권담보부증권, Collateralized Loan Obligation) 등 극도로 위험한 금융파생상품 매입도 포함된다.

 또한 코로나19가 극심한 유럽에서는 각국 재정적자의 급증 및 채권 부실화로 유로 존 자체의 붕괴가 우려되고 있으며, 경지침체에 따른 유가 하락으로 산유국들은 강력한 감산을 추진 중이다. 여기에 팬데믹 책임 문제로 코로나19 이전부터 진행되던 미중 무역 갈등이 한층 심화되고 있다.

문득 이런 의문을 갖게 된다. 현재 의미에서의 양적 완화, 유로 존, 원유 감산 시스템, 미중 무역은 언제부터 어떻게, 그리고 왜 시작 또는 본격화됐던 것일까. 2020년 5월 세계경제를 압박하는 이 4가지 핫 이슈의 기원에 대한 질문이다. 하나하나의 기원에 대한 설명은 매우 복잡하고 어려워 보인다.

게다가 서로 관련도 없어 보인다. 그래서 설명은 더욱 어려울 것 같다. 하지만 단순하게 생각하면 단순할 수 있다. 무한의 우주도 아주 작은 점 하나에서 시작됐다고 하지 않나. 이 어렵고 복잡해 보이는 경제 현상도 아주 짧은 시각 한꺼번에 ‘대폭발’로 시작한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

‘대폭발’의 기점으로 여겨지는 시점은 대략 50년 전. 그 기간은 기껏 두 달에 불과하다. 1971년 6월 13일부터 8월 15일까지의 기간이다. 날짜까지 못 박는 이유는 무엇일까? 특정한 날짜에 특정한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두 달의 기간 동안 미국에서, 미국은 물론 세계를 충격에 빠뜨릴만한 엄청난 대 사건 세 건이 벌어진다.

그것도 약속이나 한 듯 매달 중순 한 건씩. 6월 13일, 7월 15일, 그리고 8월 15일. 역사도 안다. 이들 사건 한 건 한 건이 세계역사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그러나 이 세 건의 역사가 이 짧은 기간 동안 거의 한 달 남짓으로 연달아 터진 것은 잘 이야기하지 않는다. 이유는 두 가지. ①이 세 개 사건의 관련성이 없다고 여겨지는 한편 ②각각의 사건들을 연구하는 학문 분파가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펜타곤 페이퍼’를 폭로한 1971년 6월 13일 자 ‘뉴욕타임스’
‘펜타곤 페이퍼’를 폭로한 1971년 6월 13일 자 ‘뉴욕타임스’

이 세 개 사건은 하나하나가 그야말로 역사의 핵폭탄급이다. 미국과 세계를 겨냥해 매달 하나씩 핵폭탄이 터졌던 셈이다. 보자.

1971년 6월 13일 ‘뉴욕 타임스’ 기사가 첫째다. ‘펜타곤 페이퍼로 본 미국의 군사개입 확대 30년’이라는 제목의 이 기사는 미국 펜타곤에서 작성한 보고서 『미국-베트남 관계, 1945-1967』 내용을 대서특필한 것이다. 당시 국방장관이었던 로버트 S. 맥나마라(Robert S. McNamara)의 지시로 만들어진 이 보고서는 보고서 1945년부터 1967년까지 미국정부의 베트남전쟁 개입 내용을 담고 있다.

보고서 작성자 중 한 명인 대니얼 엘스버그(Daniel Ellsberg)는 이 보고서를 ‘뉴욕 타임스’에 제보, 베트남전쟁에 대한 미국 정부의 비리가 폭로됐다. 특히 미국의 베트남전쟁 참전 계기가 됐던 1964년의 통킹 만 사건이 조작됐다는 사실은 미국은 물론 전 세계에 큰 충격을 줬다.

다음달 15일 미국과 세계는 또 한 번 충격을 받았다. 이번에는 TV였다. 이날 저녁 닉슨 대통령은 캘리포니아주 남서부에 위치한 작은 도시 버뱅크(Burbank)에 있는 NBC 방송 스튜디오를 찾아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했다. “1971년 7월 9일부터 11일까지 국가안보 보좌관 헨리 키신저 박사와 중국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가 베이징에서 회담을 가졌다”며 “중국을 방문해 달라는 초청을 받았다”는 내용이었다. 미국과 중국에서 동시 진행된 이 발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적대 관계와 냉전을 상징했던 양국 간 대립을 풀겠다는 것으로 새로운 세계질서의 수립을 알리는 선언이기도 했다.

그해 4월 있었던 ‘핑퐁외교’로 양국 간 화해무드는 알고 있었지만 이토록 전격적으로 관계가 개선될 것으로 본 사람은 없었다. 특히 미국과 함께 동아시아의 리더로 부상하려 했던 일본은 발표 3분 전에 이 사실을 통보받고 큰 충격에 빠진 것으로 널리 알려졌다.

1971년 7월 15일,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발표하는 닉슨 대통령.
1971년 7월 15일,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발표하는 닉슨 대통령.

이 두 건의 ‘사건’ 만으로도 미국과 세계는 정신을 차리기 어려운 상태였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마지막 펀지 한 방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 펀치는 꼭 한 달 뒤인 8월 15일 작렬했고 마침내 세계는 KO되고 만다. 이번에는 TV와 라디오였다. 일요일이었던 이날 저녁 닉슨은 향후 국내외에 걸쳐 적용될 경제정책을 발표했다.

내용은 다양했고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다.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임금과 물가를 90일간 동결한다”는 정책은 평상시 있기 어려운 강력한 정책이라는 평을 받았다. 그러나 이 정책 안에는 더 충격적인 것이 있었으니 “달러와 금의 교환을 일시적으로 정지한다”는 내용이 그것이었다. 이는 한 마디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경제를 이끌었던 이른바 ‘브레튼우즈 협정’의 폐기를 의미했다. 세계경제는 이날 이후 극심한 침체에 빠지며 파란을 겪는다. 또한 미국은 이로써 ‘금본위의 구속’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달러를 찍어낼 수 있었다. ‘무제한 양적 완화’의 기틀을 마련한 셈이다.

1971년 7월 15일,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발표당시닉슨 대통령의 메모
1971년 7월 15일,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발표당시닉슨 대통령의 메모

앞서 얘기했던 대로 두 달 사이 벌어진 이 세 개의 대 사건들이 하나로 묶여 거론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앞서 말한 대로, 연구하는 학문 분과의 차이가 주요 원인 중 하나일 것이다.

6월의 펜타곤 페이퍼 사건은 주로 커뮤니케이션 분과에서, 7월의 미중 교류 발표는 주로 국제정치 분과에서, 그리고 8월의 신경제정책에 대한 발표는 주로 경제학 분과에서 관심을 갖는다. 그리고 각 분과는 다른 사건에 대해서는 별 관심을 갖지 않는다.

어쨌거나 1971년 6월 13일에서 8월 15일 두 달 동안 미국에서는 세계 정치ㆍ경제에 엄청난 충격을 주는 세 가지 대 사건이 일어났다. 얼마나 충격이 컸던지 이중 두 번째와 세 번째 사건에는 모두 ‘닉슨 쇼크’라는 별칭이 붙어 다닌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세 번째 사건에만 이 별칭을 붙이지만 어떤 이는 두 번째에, 어떤 두 번째와 세 번째 모두에 ‘닉슨 쇼크’라는 별칭을 붙인다. 하지만 경제사를 중시하는 이상, 이 글에서는, 세 번째 신경제정책에 한해서만 ‘닉슨 쇼크’로 부르고자 한다.

1971년 8월 15일. 금에 대한 달러 교환 정지를 선언하는 닉슨 대통령. 이날 이후 25년 간 유지되는 브레튼우즈 체제는 끝나고 세계경제는 큰 혼돈을 겪는다.
1971년 8월 15일. 금에 대한 달러 교환 정지를 선언하는 닉슨 대통령. 이날 이후 25년 간 유지되는 브레튼우즈 체제는 끝나고 세계경제는 큰 혼돈을 겪는다.

이 세 가지 사건과 관련해 부연 설명할 게 몇 가지 있다. 다음 회에서 보다 상세하게 논의할 테니 이번 회에서는 윤곽만 잡고 가자.

첫째, 정말 서로 아무 연관 없는 별개의 사건이냐는 것이다. 필자의 시각이지만, 당연히 그렇지 않다. 이들 세 가지는 매우 중요한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제각각인 것처럼 보이는 이들 세 사건들은 자라난 토양이 같다는 것이다. 하나의 토양에서 세 나무의 뿌리가 내려져 있는 셈이다. 눈치 빠른 사람은 벌써 알아챘겠지만, 이들의 생육을 제공한 공통의 토양은, 다름 아닌 베트남전쟁이다.

펜타곤 페이퍼야 당연히 베트남전쟁과 직결돼 있는 것이고, 미중 관계 개선에 대한 동기는 닉슨 행정부가 베트남전쟁이라는 수렁에서 벗어나려는 의지에서 찾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신경제정책은 전쟁에서 너무 많은 돈을 찍어내고 쓴 결과로 여겨질 수 있다.

둘째, 이들 사건들이 양적 완화, 유로 존(EURO Zone) 위기, 유가 하락과 감산 추진, 그리고 미중 무역 갈등 등 이글 서두에서 꺼낸, 2020년 5월의 화두들과 어떤 연관이 있느냐에 대한 것이다.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미중 무역 갈등이다. 이건 쉽다. 2020년 미중 갈등의 근원은 1971년 미중 교류라 얘기해도 크게 잘못된 것은 아니다.

이는 약 반 년 뒤 양국 간 적대관계의 청산과 정상화를 규정한 ‘상하이공동성명’이 태어난 원동력이었다. 또한 ‘금태환 정지’로 뒤통수를 맞은 유럽과 산유국들은 나름의 전략을 짠다. 유럽은 통합의 길을 재촉하는 계기로 삼았고, 산유국들은 감산 및 유가 인상으로 ‘오일쇼크’를 일으키며 ‘닉슨쇼크’에 맞불을 놨다. 이전까지만 해도 OPEC은 서로 간의 원유 가격을 조율하는 ‘가격카르텔’에 불과했다. 하지만 닉슨쇼크 이후 영향력 제고를 위해 생산을 좌지우지하는 ‘생산카르텔’로의 변모를 시도했고 멋지게 성공했던 것이다.

위 사건들과 관련된 영화는 진짜 많다. 관련 주제도 많고 몇몇 주제에는 관련 영화도 많다.

일단 베트남 전쟁을 보자. 셀 수 없이 많은 영화가 떠오른다. 1979년 같은 해 만들어진 오래된 명작 마이클 치미노(Michael Cimino) 감독의 <디어 헌터>(1979)와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Francis Ford Coppola) 감독의 <지옥의 묵시록>(1979), 1987년 한 해를 다시 한 번 베트남전쟁으로 뜨겁게 달군 올리버 스톤(Oliver Stone) 감독의 <플래툰>(1987)과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풀 메탈 자켓>(1987), 2년 뒤 스톤 감독이 다시 내놓은 베트남 전쟁 영화 <7월4일생> 등이 대표적인 작품이 될 것이다.

'모두 대통령의 사람들'영화포스터.
'모두 대통령의 사람들'영화포스터.

세 사건의 주역인 닉슨 대통령 관련 영화도 꽤 된다. 워터게이트 사건을 심도 있게 그려 이제 전설이 된 알란 파큘라(Alan J. Pakula) 감독의 영화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1976), 닉슨 대통령의 개인적 퍼스낼리티와 열등감을 그려 논란이 됐던 올리버 스톤 감독의 <닉슨>(1995), 재기를 노리는 방송인과 정치인의 한판 논쟁을 그린 론 하워드(Ron Howard) 감독의 <프로스트 vs. 닉슨>(2008), 페니 레인(Penny Lane) 감독의 잘 짜인 다큐 <우리들의 닉슨>(2013), 리자 존슨(Liza Johnson) 감독의 기괴한 코믹 영화 <엘비스와 대통령>(2016)까지. 지난 40년 동안 10년에 한 편씩은 등장한 것 같다.

'닉스'영화 포스터.
'닉스'영화 포스터.

그러나 베트남전이나 닉슨 관련 영화들은, 수적으로는 많아도, 내용면에서는 한계가 있어 보인다. 베트남 전쟁과 관련해서는 전쟁과 전투 자체에 초점을 맞췄다는 게 문제.

전쟁의 비인간적 측면을 드러낸다는 전쟁영화의 특수성을 감안하면 자연스러운 감이 없지 않다. 하지만 베트남전쟁의 복잡한 국제정치ㆍ경제 측면을 다룬 영화가 전혀 없다는 것은 전쟁의 중요성을 고려했을 때 아쉽다. 또 닉슨 관련 영화들은 대부분 ‘워터게이트’라는 정치적 사안에 한정돼 있다. 물론 미국 정치사에서 워터게이트 사건이 차지하는 비중이야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하지만 닉슨에 대한 대중적 어필이 이 사건 하나에 치중한다는 것은 확실히 문제가 있다. 워터게이트라는 스캔들 하나에 매몰되기에는 그가 이룬 업적이 역사적으로 큰 의미를 갖는 것이다.

'프로스트와 닉슨'영화 포스터.'모두 대통령의 사람들', '닉슨', '프로스트와 닉슨' 등 닉슨 관련 영화들은 대부분 워터게이트 추문에 한정돼 있다.
'프로스트와 닉슨'영화 포스터.'모두 대통령의 사람들', '닉슨', '프로스트와 닉슨' 등 닉슨 관련 영화들은 대부분 워터게이트 추문에 한정돼 있다.

하지만 이들 세 개의 역사적 사건과 관련된 영화를 얘기할 때 더 큰 문제가 있다. 베트남전쟁이나 닉슨 대통령과는 달리 관련 영화를 찾는다는 게 매우 힘들다는 점이다. ‘펜타곤 페이퍼’와 관련된 영화로는 이 글에서 다루고 있는 <더 포스트>가 거의 유일하고 미중 수교와 관련해서는 <포레스트 검프>에서만, 그것도 일부를, 볼 수 있을 뿐이다.

게다라 <포레스트 검프>는 이 사건과 관련된 영화로 분류하는 데에 한계가 있다. 이 영화가 미중관계를 정면으로 다룬 것도 아닐 뿐 아니라 영화 전체에서 아주 짧은 에피소드로 삽입돼 있기 때문이다. 닉슨과 검프가 만나는 합성 장면이 화제를 부르기는 했어도 그 역시 어디까지나 화제에 그치고 만다.

‘영화로 20세기 세계경제 위기의 역사를 쓰자’는 게 이 글의 취지다. 그럼 당연히 위 세 가지 사건에 의한 ‘빅뱅’ 중 세 번째 사건, 즉 닉슨쇼크가 가장 중요하다. 세계경제의 근본 패러다임을 바꾸는 엄청난 충격을 준 사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짜 아쉽고 섭섭하게도 이 주제와 관련된 영화는 없다. ‘없을 것이다’ 거나 ‘없는 것으로 보인다’는 등의 표현을 쓸 필요 없다. 이 역사적 사건을 쓰기 위해 그만큼 많은 영화를 검토해 봤다는 얘기다. 필자가 검토한 수많은 영화 중 1971년 8월 15일의 장면이 하나라도 나오는 영화라면 필자는 아마 그 영화를 선택했을 것이다. 앞서 언급했던 레인 감독의 다큐 <우리들의 닉슨>을 기대해 봤지만, 닉슨 관련 수많은 영상을 모아놨음에도, 참으로 아쉽게도, 이날 장면은 빠져 있다. 6월 13일 펜타곤 문서 사건과 7월 15일 중국과의 수교까지만 나온다.

그밖에도 많은 영화를 염두에 뒀다. 하지만 많은 영화들 중 고른 것은 결국 <더 포스트>다. 이유? 이와 관련된 얘기는 다음 회로 미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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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광 이코노텔링대기자❙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 특임교수❙사회학(고려대)ㆍ행정학(경희대)박사❙경기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뉴욕주립대 초빙연구위원, 젊은영화비평집단 고문, 중앙일보 기자 역임❙단편소설 ‘나카마’로 제36회(2013년) 한국소설가협회 신인문학상 수상❙저서 『영화로 쓰는 세계경제사』, 『영화로 쓰는 20세기 세계경제사』, 『식민과 제국의 길』, 『과잉생산, 불황, 그리고 거버넌스』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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