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지금보증도 까다롭게… 외국인투자 유치위해 '원스톱서비스'창구 개설
쓰루가 기획원으로 컴백한 1969년은 왕초 부총리 시절부터 '다다익선'이라며 마구잡이로 들여온 외자의 후유증이 두드러지기 시작한 해였다.
1965년에 GNP의 10%에 불과하던 외채는 4년 만에 30% 수준을 넘어섰고, 차관 업체(외자를 들여와 설립하거나 외자를 주요 경영 재원으로 하는 기업)의 절반이 부실화되고 있었다. 자본과 기술의 원천으로 '만병통치'라던 외자는 '만병의 근원'이 되고 있었다.
이렇듯 곳곳에 적신호가 켜지고 있는데도 외자의 물결은 잦아들지 않았다. 오히려 '외자 업체 부실화로 언제 외자 도입의 문이 닫힐지 모른다'는 막차 불안심리가 외자 유입의 급피치를 부채질하고 있었다. 1969년도 한 해 외자 도입액은 5억 5000만 달러로, 전년보다 57%가 늘어난 수준이었다.
쓰루는 부총리 취임 직후에는 외자 문제에 관해 별말이 없었다. 그가 외자정책에 메스를 가하기 시작한 것은 포철 건설이 어느 정도 가닥을 잡아가던 9월 말이 되어서였다.
1969년 9월 하순, 그는 전격적으로 민간의 현금차관 도입을 금지하는 조치를 취했다. 대신 공기업이 민간기업보다 유리한 조건으로 들여오는 저금리의 현금차관은 허용하고, 특히 외국 정부나 국제금융기구로부터의 현금차관을 적극 유치하기로 했다.
쓰루는 급격한 외자 도입과 그에 따른 외채, 그리고 차관 업체 부실이라는 단기적 부실 문제의 치유와 고도성장세를 유지하는 가운데 중공업화를 추진한다는 중장기 지상 목표 사이에 끼어 있었다. 그는 외자 도입 확대라는 전체의 틀은 유지하되, 외자의 내부 구조를 유리한 방향으로 뜯어고쳐 가기로 정책 방향을 정했다.
그래서 첫째, (성장세 유지를 위해) 외자 도입을 늘려가는 기조는 유지하면서, 둘째 (금리와 상환 기간 등 차관 조건이 불리한) 상업차관은 억제하고 (차관 조건이 유리한) 공공차관과 (외채 상환 부담이 없는) 외국인 투자를 늘려감으로써 외자 구조를 개선해나가려고 했다. 이 외자정책 기조는 그가 부총리인 동안 줄곧 지켜졌다.
민간 현금차관 금지 조치를 취하고 2주 후 쓰루는 차관에 대한 지급보증(빚보증) 제도를 강화하도록 조치했다.
첫째, 전력·조선·철강 등 기간산업을 위한 차관, 둘째, 지방자치단체와 정부 투자기관의 차관, 셋째, 1000만 달러 이상의 거액 차관, 넷째, 상환 기간이 10년을 초과하는 장기 차관의 경우에만 산업은행(사실상 정부)이 지급보증하기로 했다.
공공성을 가진 차관 외에는 정부(산업은행)가 지급보증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민간이 들여오는 차관에 꼭 지급보증이 필요하면 일반은행이 자기 책임하에 판단해서 지급보증을 하라는 것이었다.
무분별한 민간의 차관은 원천적으로 근절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1971년 1월 9일 외국인 투자 유치정책이 발표되었다. 그중 눈길을 끈 것은 외국인 투자 취급기관의 일원화, 소위 원스톱 서비스(one-stop service)였다. 당시의 외국인 투자 인허가 절차는 걸핏하면 중도 포기할 정도로 그 절차가 여러 기관에 걸쳐 있고 복잡했다.
그래서 외국인 투자와 관련한 각 행정기관의 공무원을 경제기획원 한곳에 근무하게 했다. 원스톱 서비스의 위력은 절차의 간소화 자체보다 투명성에서 발휘되었다. 다른 부처 사람들이 다 보고 있는 사무실에서 의도적으로 인허가 업무를 질질 끌거나 신청을 받지 않는 등의 행위로 뇌물을 유도하는 짓을 할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당시 쓰루를 가장 흥분시키는 주제가 외채 망국론(1997년 외환위기 때처럼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들여온 외채를 갚지 못해 나라경제가 무너지는 상황을 일컫는다)이었다. 더구나 그런 의견이 업계에서 나오면 그 흥분은 최고조에 달했다. 그의 눈에는 고금리의 상업차관을 들여와 외채를 쌓이게 하는 것도 기업이고, 부실 경영으로 외채를 못 갚아 나라경제에 어려움을 더하는 것도 기업이었다.
업계와의 간담회에서 외채 얘기가 나오면, 쓰루는 "과학적 근거도 없이 외채 망국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무식한 사람들이다"라며, "무식한 사람이 유식한 체하고 차관 때문에 나라가 망한다고 무책임한 발언을 하는 것을 볼 때 구토가 나올 것 같은 심정이다"는 말까지 덧붙이기도 했다. 그런 분위기에서 누구도 입을 열려고 하지 않았다. 만일 누가 쓰루에게 반박하고자 나선다면 그게 이상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런 막말로도 성이 차지 않으면, 그는 "외채 망국론은 사실무근이라는 나의 주장에 반론을 제기할 사람은 질문하라"고 으름장까지 놓았다. 참석자들은 "이의 없다, 동감이다"라고 소리를 높이기 마련이었다. 신문은 이를 두고 "마치 어느 회사의 주주총회나 단합대회 같은 인상을 풍기기도 했다"고 힐난했으나, 외채 망국론에 대한 그의 과잉 반응은 수그러들지 않았다.